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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과 끝없이 이어진 사구,밤이 되면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1낙타를 타고 사막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낙타는 대여섯 마리를 한 줄로 이어 마부가 끌고 간다.

강혜란 기자의 중국 네이멍구 사막 트레킹 7박8일



떠도는 유목민의 삶, 네이멍구

달리던 마차가 멈췄다. 초원 한가운데였다. 여행 사흘째, 우리는 다른 게르(몽골식 전통 이동가옥, ‘파오’라고도 불린다)로 옮기는 중이었다. 마차는 석 대. 두 대엔 일행 15명이, 한 대엔 전체의 배낭이 실려 있었다. “마부들이 짐이 무겁다고 불평하네요.” 인솔하던 오지여행 전문가가 말했다. “웬 짐이 이렇게 많으냐는 거죠. 자기들 평생 살림살이보다 많다고.” 옥신각신하던 마부들이 다시 “추~추~” 하며 말을 재촉했다.시라무런 초원, 몽골어로 ‘노란 강’이라는 뜻이다. 중국어로 ‘자오허(召河)’라고도 불린다. 네이멍구(內蒙古ㆍ내몽고) 자치구의 주도(主都) 후허하오터(呼和浩特ㆍ호화호특) 시에서 100여㎞ 떨어진 곳이다. 해발 1800m에 달하는 이 고원지대는 한여름에도 선선한 기온을 자랑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7ㆍ8월이 관광 성수기인 이유다. 끝없는 지평선 군데군데 자리 잡은 게르 촌락이, 이곳이 무인지대가 아님을 알려줬다.





▲2맑은 하늘 아래 늘어선 몽골식 전통 이동가옥 게르.



숙소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달려나왔다. 손님에게 각각 파란 천(몽골에서 파란색은 존경의 의미다)을 둘러주고 술잔을 권한다. 환영 풍습이다. 손님은 오른손 약지를 술에 담가 하늘에 한 번, 땅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튕긴 뒤 술잔을 ‘원샷’한다. 환대하는 주인과 예를 갖추는 객(客)의 관계는 어디서나 예외 없다. 서로가 언제든 ‘주객전도’할 수 있는 유목민의 삶이 낳은 전통이다.삶에서 떠도는 자, 죽음이라고 다를 리 없다. 정도상의 자전적 소설 『낙타』(문학동네, 2010)는 첫머리에서 3000년 전 초원의 죽음을 그려 보인다. 흉노족 화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 화가는 아들을 묻은 자리에 새끼 낙타의 목을 쳐서 함께 묻는다. “풀이 우거져도 어미 낙타는 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3초원을 이동하는 짐마차에 푸르렀던 옛날 풍경사진이 걸려 있다.4 몽골 문화권의 서낭당이라고 할 ‘어워’. 정령이 산다고 여겨지는 돌무더기다.소원을 비는 제전 구실과 함께 광활한 초원에서 이정표 노릇도 한다.



이 이야기는 몽골의 장례 풍습을 묘사한다.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은 영구 묘를 기대할 수 없다. 대신, 사람이 죽은 자리에 새끼 낙타를 함께 묻는다. 이정표 없이 광활한 평원에서, 이들은 죽은 이가 그리울 때 어미 낙타를 앞세워 찾아간다.그러나 현대화된 네이멍구에서 유목민은 대부분 정착민으로 전환했다. 1947년 중국 첫 민족자치구로 지정된 네이멍구는 북쪽으로는 독립국가 몽골, 러시아와 경계를 짓는다. 몽골족을 포함한 소수민족과 한족의 비율이 2대8 정도로 한족이 훨씬 많다. 가장 번화한 도시 후허하오터나 어얼둬쓰(鄂爾多斯)에서 몽골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건 거리 간판 정도다. 모든 간판과 공식 안내판엔 세로로 길쭉하게 쓰는 몽골문자가 한자 앞에 병기돼 있다. 대륙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이 “문자를 연약하게 눕히지 말고 세워 쓰라”고 명해서 이런 모양이 됐다고 한다.



초원에서 양떼를 찾는 법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짙푸른 초원에 양떼가 뛰놀고, 나는 그 양떼를 따라 에헤라데야 달리고…. 서울에서 출발 전 그려본 그림은 그랬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한 이곳, 양떼는커녕 ‘과연 초원인가’ 싶었다. 가장 푸를 7월에도 버석버석하고 황량하고 누르스름한 들판. 조선족 현지가이드는 “무분별한 방목과 자연 파괴 탓에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떼도 방목하지 않고 목장을 지정해 사육한다고 한다. 네이멍구가 한국의 4월을 매캐하게 물들이는 황사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게르의 조그만 창문이 덜컹댔다. 금세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거친 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내리쳤다. 오랜 갈수기를 해소해줄 소나기다. 지평선 여기저기서 번개가 번쩍였다. 몽골에는 천둥 번개가 치는 날 게르 문을 닫고 화로의 굴뚝을 내리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집이 벼락을 맞는다는 거다. 일종의 터부(금기)인데, 평원의 천둥 번개를 보자니 이해가 갔다. 자칫하면 벼락의 표적이 될 것 같았다. 하늘이 쪼개지기라도 할 듯 번쩍이다가 지척을 삼킬 듯한 굉음이 울렸다.





▲초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마부들. 6 사막 놀이의 정수인 미끄럼 타기. 7 해질 녘 사막 입구. 어린 왕자는 이 풍경을 보고 싶어 하루에 의자를 마흔네 번 뒤로 물렸다고 했던가.



비가 그치니 한결 선선했다. 말 타기 좋은 날씨다. 제주도 조랑말보다 몸집이 약간 큰 말이었다. 관광객을 태우는 데 익숙한 듯, 일정한 속도로 종종걸음을 쳤다. 초원 길을 따라 30분여를 파고드니 제법 푸른 풀숲이 펼쳐졌다. 허벅지까지 자라난 수풀 너머 해가 졌다. 그래도 끝내 양떼를 보지 못했다는 실망감 속에 발길을 돌리는데, 그때 보았다. 탐스러운 양떼구름이 하늘 가득 흘러가고 있었다. 양떼를 지상에서만 찾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막의 출입구에선 입장료 받아

여행 닷새째. 바오터우(包頭ㆍ포두) 시에서 30㎞ 정도 떨어진 샹사완 사막에 도착했다. 고비 사막의 동쪽 끝 부분에 해당하는 쿠부치 사막의 일부다. 쿠부치는 동서 길이 400㎞, 남북 길이 50㎞에 이르는, 중국에서 7번째,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사막이다. 가이드 말이, 여길 횡단하려면 낙타 두 마리가 필요하단다. 한 마리엔 짐을 싣고, 다른 한 마리를 타고 가다가 죽어버리면 남은 낙타로 갈아타는 식이란다. 그런데 이런 사막에서 마라톤을 한 한국인이 있다. 영화 프로듀서 김효정씨는 사하라ㆍ고비ㆍ남극 등 세계 4대 사막에서 마라톤 레이스를 했다. 여성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 남녀를 통틀어도 47명뿐이라는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래머’다. 이 경험을 담은 책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일리, 2010)도 냈다.



그에 비해 나는 대양(大洋)에 발만 담그고 돌아온 격이다. 처음엔 낙타를 타고 휘영청 걸었지만, 곧 맨발로 모래를 밟아 보았다. 의외로 서늘했고, 부드러웠다. 놀랍게도 사막엔 출입구가 있었고 입장료를 받았다. 이틀째 새벽, 나를 포함한 몇몇은 사막의 일출을 보기 위해 다시 들어갔는데, 그땐 수금요원이 없었다. 입장료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만 적용된다고 한다.



소설 ‘어린 왕자’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나 보던 사막! 3~4층 건물 높이는 될 법한 모래언덕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깎아지른 듯한 언덕을 보자, 초등학교 6학년인 ‘사막대장’(동호회의 닉네임)이 한달음에 꼭대기로 내달렸다. 따라가 내려다보니 경사가 70~80도는 될 법한 절벽이다. 나는 아찔한데 녀석은 언제 챙겨왔는지 슈퍼마켓 비닐봉지를 꺼냈다. 반듯하게 펴고 올라탔다. “밀어욧!” 등 떠밀린 녀석이 순식간에 미끄러져 갔다. 모래언덕에 길쭉한 가르마가 파였다.



사막의 밤은 서늘하다. 낮에 40도까지 치솟았던 기온은 밤이 되니 뚝 떨어졌다. 우리가 묵은 게르는 침대와 화장실까지 갖춘 현대식 숙소다. 안내인은 별 네 개짜리 호텔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호텔의 별 개수를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다. 맑은 밤하늘에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흩뿌려져 있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별 100만 개짜리 호텔’이었다.



에필로그- 저지르는 것이 젊음

여름휴가를 맞아 이모저모 계획을 세웠지만, 모조리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취소됐다. 다른 방법을 찾아 서핑과 클릭을 거듭한 끝에 이게 걸렸다. 여행카페 ‘샹그릴라’의 네이멍구 7박8일 트레킹. 그러나 신청 기한(6월 30일)이 한참 지난 뒤였다. 아쉬운 대로 카페 담당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같이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답장이 왔다. “오늘 오전이 마감 기한이에요. 지금 입금하시면 같이 갈 수 있어요!”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보다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이런 꼬드김은 뭔가. “가입하고 몇 년 동안 눈팅만 하는 분도 있고요, 이렇게 닥쳐서 저지르는 분도 있어요. 인연이라 생각하고 같이 갑시다.”



고백하건대 바로 직전 주철환 선생의 말이 아니었다면, 입금하지 않았을 거다. 선생은 에세이집 『청춘』 출간에 맞춘 인터뷰에서 “젊음은 ‘저지르다’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말했다. ‘마흔 전엔 사막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내게, ‘샹그릴라’의 손짓은 운명이었다. 같이 가는 이가 누군지, 정확히 어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입금을 저지른 건 그 때문이다.



초원과 사막을 거쳐 베이징으로 돌아온 날, 마지막으로 만리장성에 올랐다. 남은 힘을 짜내 두 시간여 동안 장성 트레킹을 하고 자금성까지 둘러보니 벌써 정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스물네 살짜리 가이드는 영 지리 감각이 없었다. 땀에 젖은 15명을 끌고 천안문(天安門) 광장을 이리저리 헤맸다. 스모그에 싸여 보이지도 않는 정오의 태양이 인내심을 갉아먹었다. 가이드가 또 한 번 길을 잘못 틀었을 때,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아이쒸!” 짜증을 뱉었다. 서로의 얼굴에서 다시 사막을 보았다.



네이멍구 글ㆍ사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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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베이징공항에서 후허하오터 바이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하루 4~6편이 뜬다. 1시간10분 소요. 보다 일반적인 방법은 베이징역이나 베이징서역에서 야간열차를 타는 것이다. 쾌속 기준으로 밤 9시에 출발하면 오전 8시 후허하오터역에 도착한다. 7ㆍ8월 여름 성수기 기간엔 인천공항에서 후허하오터로 대한항공 전세기 직항편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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