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지극한 한국문화 사랑, 세계서 통하는 예술로 풀어내

국민 디자이너로 불린 ‘앙드레 김’. 그의 이름에 모든 비밀과 진실이 담겨 있다.
그는 김봉남이라는 순수 토종 느낌의 이름 대신 1962년 ‘앙드레(Andre)’란 이름을 내세웠다. 홍콩 배우 재키 챈(성룡)이나 미셸 여(양자경)처럼 세계인이 쉽게 발음하고 기억하기 좋도록 한, 시대를 앞선 전략이었다. 앙드레란 이름과 부모님이 물려준 김씨 성이 합쳐진 이 ‘제2의 주민등록증’은 전 세계에서 통하는 그의 패스포트가 됐다. 이니셜을 따서 만든 A와 K가 들어간 문양은 귀족적이고 우아한 서양의 바로크적 감성과 한국의 전통 문양을 결합해 만든 ‘동서양 문화의 교감’이다.

15일 오전 서울대병원서 영결식, 앙드레 김의 패션 세계


그는 한국이란 나라가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에 이미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그 후에는 패션이 단순히 상품이라는 개념을 넘어 ‘문화’라는 코드로 포장해 세계 곳곳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민간 외교 사절로서 그의 역할은 한류 열풍의 반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만큼 그의 ‘한국적 문화’에 대한 사랑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했다. 개인적으로는 ‘백의 민족’을 상징하는 흰 옷을 늘 고집했으며, 전통 한복에서 차용한 포와 바지의 대님을 맨 듯한 디테일은 그만의 아이덴티티였다. 그의 패션쇼에서는 항상 하얀 눈(작은 종이 조각으로 만들었다)이 휘날리고, 전통의 판소리가 울려 퍼지며, 첩첩산중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하나씩 드러나듯 겹겹이 입은 의상이 한 벌씩 차례로 자태를 드러낸다. 임금님의 곤룡포 속 용(龍) 문양을 서양의 패치워크 기법으로 완성해 낸 화려한 의상들은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그에게도 어찌 시련이 없었겠는가? 옷 로비사건으로 국회 청문회에까지 출석했는가 하면, 흔들리지 않고 지켜온 그의 고집이 매번 새로운 창작을 보여줘야 하는 패션계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의 본명과 모습과 말투는 단골 개그 소재로 등장했고, 각종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희화화됐다.

하지만 그가 고집스레 지켜온 고유의 이미지는 21세기 디자이너와 기업의 컬래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 시대를 맞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LG 프라다 폰이나 벤츠 아르마니 차처럼, 많은 기업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제품에 사용하고 싶어했다. 주얼리·란제리·선글라스·골프웨어·아동복 같은 패션제품뿐만 아니라 냉장고·신용카드까지 그 분야는 계속 확대됐다. 소수를 위한 고가의 의상을 맞춤 제작했던 그도 많은 대중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상업적 성공 또한 그는 헛되어 흘려보내지 않았다.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행사에 가면 늘 그가 존재했다. 그 많은 행사와 스케줄 속에서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라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자선 패션쇼를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디자이너의 숙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 디자이너는 죽어서 브랜드를 남겨야 한다”고.

앙드레 김은 이제 한국 패션사에 가장 중요한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지만, 그가 남긴 브랜드까지 계속 기억될 수 있을까. 샤넬 같은 역사성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되어 우리 곁에서 계속 살아 숨쉴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