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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오피스텔 ‘경희궁의 아침’ 301호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준비 겸 숙소로도 이용하는 곳이다. 문은 왜 닫혀 있는 것일까.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에 내정된 안상근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주중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청문회 준비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 참모진과도 연락을 끊고 모처에서 청문회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제 국정 전반에 관한 보고자료를 다 받았다”며 “부처별 업무와 현안에 대한 보고(16~18일)를 앞두고 국정 전반을 차분히 공부 중”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는 정부가 제출한 자료 외에 추가로 자료를 여럿 요청해 갖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관심을 보인 분야는 일자리 창출 등 경제 관련 자료와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외교·국방 분야라고 한다. 다양한 이슈를 정리·파악하는 한편 청문회에서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청문회 앞둔 김태호 총리 후보자


평소 김 후보자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조간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광화문 오피스텔에 나와 아침 상황을 점검하고 오전 10시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서 업무보고를 받는다. 오후엔 총리실이 파견한 청문회 준비팀과 실무회의를 한다.그는 8일 거창의 집을 떠나와 일주일째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매일 아침 고향 부모에게 문안 전화하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부친 김규성(76)씨는 13일 “오늘 아침에도 태호한테 ‘출근한다’며 전화가 왔다. 아버지·어머니가 제일 걱정이다. 건강 잘 챙기시라고 당부하더라”고 전했다.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이어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돼야 한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의결된다. 한나라당은 절반이 넘는 172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친위부대를 전면에 내세운, 국민을 무시한 역대 최악의 개각”이라며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다.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등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어서 김 후보자가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정치권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의혹뿐 아니라 후보자가 어떤 가정에서,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어떠한 삶을 걸어왔는지를 총체적으로 조명·검증하는 기회다.

경남지사 퇴임 직후인 7월 초 부모와 장모를 모시고 백두산으로 ‘효도관광’을 갔을 때 두만강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 두 사람이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아버지 김규성씨와 어머니 정연조씨. 왼쪽 두 사람은 김 후보자와 부인 신옥임씨.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중앙SUNDAY는 지난 11일 김 후보자의 고향 마을을 찾았다. 부모와 은사, 부인과 친구들을 만나 ‘인간 김태호’의 청소년기를 취재했다. 김 후보자가 태어난 곳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이다. 상산 김씨, 흥해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김 후보자 증조부 때 이곳에 자리 잡은 이래 5대째 살고 있다. 취재진이 김 후보자의 고향집을 찾은 건 11일 오후 1시쯤. 부친 김씨와 모친 정연조(75)씨가 취재진을 맞았다. 김씨는 “총리는 대통령 다음이니까 기분은 좋은데, 제일 말썽 많고 막중한 자리라 걱정”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 가족들이 김 후보자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자 “정치는 남자로 태어나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며 강행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김 후보자가 태어난 집은 마루와 세 칸의 방이 나란히 붙은 안채와 방 하나가 딸린 별채로 이뤄진 한옥이다. 안채 댓돌 옆엔 김 후보자의 지명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온 난 화분 3개가 놓여 있었다. 앞뜰엔 소나무 네 그루가 있는데 네 남매를 위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소장수 아들’ 김태호의 고향, 거창에 가보니
아버지 “우리 애들 4남매 중 태호가 공부 젤로 못했지”
김 후보자는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형(김진호 두산건설 상무)과 누나(김경옥)가 있고, 아래로 동생(김창호 전 국회의장 공보수석)이 있다.김 후보자의 호적상 생일은 1962년 8월 21일(양력). 그러나 실제 생일은 1961년 11월 27일(음력)이다. 우리 나이론 올해 50살이다. 출생신고가 늦어진 데는 사연이 있다. 김규성씨는 “태호 할아버지가 딸을 싫어했어. 딸을 (호적에)올려주지 않아 미뤄지다가 태호를 갖게 되는 바람에 1년 늦게 출생신고를 하게 됐지. 그래서 태호도 1년이 밀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머니 정씨에게 김 후보자가 태어난 날의 기억을 물었다.

-김 후보자 키가 1m86㎝인데요.
“태어날 때부터 컸어요. 동네 어른들이 모두 이렇게 큰 아기는 처음 본다며 깜짝 놀랐었지.”

-무슨 태몽을 꾸셨나요.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아래도(며칠 전에도) 기자님들이 물어싸도 안 가르쳐줬다고예.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줬어요.”

-아무한테도요? 좋은 꿈이었나요?
“좋은 거니까 (김 후보자가)그래 그래 (잘) 되는 거지.”
초등(가조초)·중학(가조중) 시절 김 후보자는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김씨는 “우리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했어. 못해도 3등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지만 태호는 60명 중 15등 정도의 중간이었지. 공부는 태호가 젤로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성격이 활달해서 늘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골목대장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어머니 정씨는 “어릴 적엔 전혀 정치 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동생이 웅변도 잘하고 해서 정치는 동생이 할 줄 알았는데…. 친구들 몰고 와서 밤새 놀고 대장 노릇 하는 건 있었다”고 회고했다.

취재진은 김 후보자가 다녔던 가조초등학교로 가보기로 했다. 방학 중이었지만 방과후 수업 때문에 신원범 교장이 나와 있었다. 신 교장은 “당시 생활기록부를 보니 그야말로 평범한 학생이었다. 별로 특이한 점이 없을 정도였다. 전형적인 농촌 학생으로, 솔직히 공부는 잘 안 했더라”고 했다.김 후보자의 친구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거창읍내 동창회 사무실에서 친구들을 몇 명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도 하나같이 “태호는 개구쟁이였다”고 회상했다. 가조초·가조중을 같이 다닌 옹경수(현대자동차 거창지점 차장)씨는 “학교 갔다 오면 가방 던져놓고 지게를 걸머메곤 꼴을 뜯으러 갔다. 소 타고 놀기도 하다가 해질 무렵 소 몰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부터 거창농고까지 12년을 단짝으로 지낸 이기철(공무원)씨는 “독 없는 뱀을 잡아 들판에서 구워먹곤 했는데 태호는 ‘못 먹으면 남자가 아니다’며 용감하게 먹곤 했다”고 전했다.

이어지는 이씨의 추억담. “개울가에서 발가벗고 수영도 꽤 했죠. 태호는 자무래기(잠수)를 참 잘했어요. 누가 오래 숨 안 쉬고 멀리까지 가는지 시합하곤 했는데 태호는 폐활량이 커서인지 늘 1등을 했어요. 운동회 때 입던 검정 반바지를 입고 놀았는데 나중엔 고무줄이 풀어져 바지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니까요(웃음).”

김 후보자는 ‘서리 대장’이었다. 옹씨의 회상. “중학교 1학년 때 개구멍으로 사과밭에 서리하러 들어갔다가 태호가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려는데 그집 머슴에게 들켰어요. 태호가 급하게 빠져나오려다 러닝셔츠가 다 찢어져 오른쪽 옆구리 부분이 피투성이가 됐죠. 그런데 들키지 않으려고 한동안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 보니 모기들이 몽땅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었더라고요. 다음 날 보니까 옆구리가 온통 피범벅에 퉁퉁 부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장난도 심한 편이었다. “한번은 동네 극장에서 박노식·허장강이 출연한 무협영화를 보고 와서는 액션배우가 되겠다며 친구집 방 한쪽에 쌓아놓은 짚단 위를 신나게 뛰어다녔어요. 집 안이 온통 엉망이 됐죠. 친구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 ‘게 섰거라’며 쫓아오니까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가 동네 밖 변소에 밤늦도록 숨어 있기도 했어요.”(옹씨)

“초등학교 4학년 땐가, 태호 아버지가 소를 팔러 읍내에 나간 사이 태호가 옆집 마루에 매달려 있던 말린 곶감을 몰래 훔쳐먹었어요. 근데 마침 옆집 아저씨가 그걸 보신 거예요. 저녁에 얘기를 전해들은 태호 아버지가 풀 써는 작두를 들고 와 태호 손목 위에 올려놓고는 ‘한 번만 더 그러면 정말 손목을 자르겠다’며 대로하신 적도 있어요.”(이씨)

김 후보자는 자신을 “소장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부친에게서 그 사연을 들어봤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논 6마지기가 전부였어. 농사일을 하면서 소장수를 했어. 장에 가 소를 사서 좋은 값에 넘겨 팔기도 하고 집에서 소 대여섯 마리를 먹였지. 송아지를 사서 차에 싣고 직접 경기도 금촌까지 가서 팔기도 하고 안 가본 데가 없어. 당시 소 한 마리가 15만원 정도였는데 대학 등록금이 14만5000원이야. (소 판 돈으로)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었지. 그래서 4남매를 모두 대학공부 시켰지. 태호 엄마도 고생 많이 했어. 돼지 먹이고 누에 키우고 했으니께.” 김 후보자의 형과 동생은 경북대를, 누나는 경상대 사대를 나왔다.

김 후보자는 종종 친구들에게 “난 형제들한테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다른 형제들처럼 공부도 뛰어나지 못한 현실이 그에게 중압감으로 다가온 것일까. 김 후보자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아버지가 동네 어르신들께 깍듯이 인사를 하라고 하셔서, 하굣길에 정자에 모여 앉은 어르신들께 공손히 인사를 했더니 어르신들이 ‘태호 저놈이 많이 변했네’라며 놀라셨다. 그날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칭찬다운 칭찬을 받았다. 이때부터 내 인생관이 바뀌었다. 나도 잘하고 싶다, 잘할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버지를 이어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고교에 진학하게 된 것도 순전히 농사일을 잘하기 위해서였다. 김규성씨는 “태호가 고교를 안 가고 농사를 짓겠다고 해서 내가 ‘농사를 지을라고 해도 농약 병에 쓴 영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살충젠지 살균젠지 알아야지 그것도 모르면 벼 다 죽인다’고 해서 거창농고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인생의 전환점은 거창농고 때였다. 거창읍에 있던 거창농고는 2008년 아림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림은 거창의 옛 지명이다. 부산마을에서 거창읍까지는 30리 길. 걸어서 1시간30분 거리다. 김 후보자는 읍내 방앗간집 방 한 칸을 세내 학교를 다녔는데 이때부터 공부에 푹 빠졌다. 어머니 정씨는 “고교 때부턴 지가 열심히 공부했다. 할머니가 따라가서 밥을 해줬는데,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예배당 종 치면 발딱 일어나서 열심히 공부했다더라”고 했다. 김 후보자의 생활기록부에는 ‘재치가 있고 협동심과 준법성이 강함’이라고 적혀 있다. 고1 때 한 지능검사(IQ)에선 98을 받았다. 한광수 아림고 교장은 “성적은 174명 중 전교 3~4등을 줄곧 유지했다”고 소개했다. 김 후보자는 거창농고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해 서울대 농업교육과에 입학했다.

취재진은 친구들의 소개로 고3 때 영어 선생님이었던 신중신씨를 거창읍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김 후보자를 특별히 아꼈다고 한다. 신씨는 “태호가 월요일만 되면 꾸벅꾸벅 졸았어요. ‘김태호!’ 부르면 졸다가도 ‘예!’ 하며 벌떡 일어나곤 했죠.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토요일 오후에 집에 가서 온갖 집안일, 논일을 다하고 월요일 새벽에 1시간30분 동안 걸어온 거예요.”

김 후보자는 1989년 결혼했다. 김 후보자가 자취하던 방앗간집 주인 딸이 지금의 부인 신옥임(46)씨다. 여러 차례 휴대전화 통화 끝에 거창읍 대경아파트에서 신씨를 만났다. 현관에서 기자를 맞은 신씨는 김 후보자처럼 훤칠했다. 키가 1m72㎝라고 했다. 방학 보충수업을 마친 딸을 학원에 태워다 줘야 한다는 ‘보통 엄마’였다. 두 사람은 결혼 이듬해 아들 범수(19)를, 연년생으로 딸 소연(18)을 낳았다. 아들은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이고 딸은 거창고 3학년이다.

신씨는 김 후보자를 ‘범수 아부지’라고 불렀다. “범수 아부지가 당분간은 바빠서 주말에도 집에 못 올 거래요. 그래도 전화를 자주 하니까. 자상해서 딸한테도 하루에 두 번씩 전화해요. 오늘 이런 일, 저런 일 있었다고 얘기해주고 그래요.” 신씨는 또 올 초 도지사 불출마 선언 때 딸이 “도지사 관두면 백수 되는 거 아니냐. 대학 가야 하는데 등록금은 어떡하냐. 한 번만 더 하고 그만두면 안 되냐”며 걱정했다는 말도 했다.

두 사람은 집안 할아버지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신씨는 “광주에서 군 복무 중인 김 후보자를 면회 다니면서 2년 연애했어요. 결혼하고 박사 공부 마쳤으니까, 경제력 같은 건 생각도 안 했고요. 좋은 느낌이었고 인연인 거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친구들 사이엔 다른 버전의 ‘러브 스토리’가 퍼져 있다. 한 친구는 “제수씨(신씨)가 무남독녀인데 태호가 자취할 때부터 장인이 눈여겨 봤다더라. 키 크고 인물 좋고 나중에 서울대도 가고 했으니”라고 전했다.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 후보자를 ‘친화력의 사나이’라고 말한다. ‘형님이 800명, 아버님이 1000명’이란 얘기도 있다. 초·중학교 동기인 오웅택(사업)씨는 “두루두루 친화력 하나는 끝내줬다. 주변이 다 아버님이고 형님이었다. 태호랑 있으면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고 회상했다.그는 ‘지남철’이란 별명으로도 불렸다. 거창엔 1974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문 모임인 ‘7·4 동우회’란 게 있다. 이 모임의 회장을 지낸 정갑석(회사원)씨는 “손을 잡으면 완전 지남철이다. 꼭 두 손으로 악수를 하는데 쫘악 빨려드는 게 참 희한하다 싶을 정도”라며 “기억력도 비상해 한 번 본 사람의 이름과 만난 장소까지 다 기억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자는 경남지사 임기를 마친 지난 7월 초 부산마을의 고향집을 찾았다. 부모와 장모를 모시고 백두산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머니 정씨는 “다 컸어도 지금도 집에 오면 무릎 베고 누워서 그렇게 따스하게 할 수가 없다. 그날도 내 무릎을 베고 마룻바닥에 누워 ‘옛날 누에 키울 때 엄마 고생 많이 했지요? 내가 엄마 이 젖 먹고 컸지요?’ 하면서 옛날 얘기를 나눴다. 세 아이들과는 별달랐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에서 석·박사(교육학) 학위를 받았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으로 있다 경남도의원 선거에 출마(1998년)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거창군수(2002~2004년), 경남도지사(2004~2010년)를 지냈다. 그리고 도지사 3선을 앞둔 올해 초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국회의원 출마를 권했을 때 도의원에 출마했고, 도지사 3선 연임이 무난해 보였을 때 불출마의 길을 택했다. 이런 기질은 어디서 온 걸까.

그는 어릴 적부터 가까이서 정치를 보고 자랐다. 아버지가 김동영 전 의원(1991년 작고)의 거창 조직책을 맡아 20년 이상 지역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일찌감치 현실 정치를 터득할 수 있었다. 김 전 의원과 거창농고 동기인 아버지는 김 후보자가 서울대에 진학하자 “과외선생 해주고 밥이나 얻어 먹으라”며 아예 김 전 의원 집에 그를 맡겼다. 김 전 의원은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실세 중의 실세였다. 거창이란 지방 출신이지만 김 후보자는 일찍이 중앙정치의 힘과 매력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김 전 의원이 별세하자 바통은 김씨의 친구인 이강두 전 의원(국민생활체육회장)으로 넘어갔다. 김 후보자는 이 전 의원 밑에서 보좌관을 하면서 정치를 익혔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정치를 결심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했다. 또 누구보다 현실정치를 잘 아는 아버지는 청문회 걱정이 앞선다. “(김)동영이 하능거 보니께로 힘들든데, 머할라꼬 정치 할라카나 했더니, 남자가 한번 해볼 만하다 이카데. 그러면서 아버지가 닦아논 거 내가 좀 거둬야겠다 카데. 내 조직을 태호가 다 갖고 갔지. 도의원·군수 할 때까진 내가 많이 도왔어. 도지사 할 땐 (지역이)넓고 도울 길도 없어서 크게 몬 도왔지. …24, 25일이 지나야 진짜 국무총리 되는 거지. (청문회 때)뭐라고 답할랑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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