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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닷가 아이들에게 ‘시와 음악의 바다’ 선물

제주 애월초등학교에서 진행된 문화활동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인 14일 밤에 열린 밴드 공연이었다. 밴드 동아리 출신 대학생 5명과 애월초 학생 20여 명은 팝송 ‘SWISS BOY’를 함께 연주했다. 공연 하루 전 13일 오후 학생들이 제주시 애월읍 남도리에 모여 악기를 들고 웃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위부터) 비양도에 해양활동 갔을 때, 첫날 자기소개하는 모습, 강당에서 공연 연습하는 장면. 임현욱 기자, 39초아39 제공
막내 세빈이(애월초등 2학년)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세빈이는 심호흡을 한 뒤 나무로 된 북채를 부딪쳐 소리를 냈다.“하나 둘 셋 넷, 딱!”이 소리를 신호로 제주도 애월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주 공연이 시작됐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애월초등교 2층 강당에서 22명의 아이가 연주할 노래는 ‘SWISS BOY’. 먼저 ‘쿵쿵 쾅쾅’ 하는 승무북 소리로 박자를 맞췄다. 원래 운동장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들을 학교 강당으로 끌어들인 건 궂은 날씨였다.

농활 대신 文活, 건국대팀 ‘초아’의 특별한 여름방학

승무북을 맡은 4학년 혜안이와 희진이는 박자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북을 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몸이 따라간다고 했다. 잠시 후 꽹과리와 탬버린, 큰북과 작은북도 합세했다. ‘쿵 짝 쿵 짝짝~’ 하며 박자가 완성되자 실로폰과 키보드, 전자기타가 멜로디를 연주했다. “Time is ticking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애월초등교 가수로 불리는 6학년 영준이와 장주의 노래도 시작됐다.학부모·교사·마을 주민 등 50여 명이 모여 앉은 관람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4학년 장수영 학생의 학부모 강유순(38)씨는 “우리 아이가 날마다 집에 와선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됐다며 좋아했어요. 서울에서 온 형·누나들이랑 그림도 그리고 합주도 한다고 해서 궁금했었는데 오늘 공연을 보니까 참 멋지네요”라고 말했다.

14일 오후 7시30분 제주시 애월읍 애월초등교 강당에서 열린 대학생 ‘문활(문화활동)’ 마지막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렇게 진행된 합주 공연이었다.문활이란 과거 ‘농활(농촌봉사활동)’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바꿔 만든 단어로 문화활동으로 농촌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농림수산식품부의 후원을 받아 여름방학 기간에 대학생 10개 팀이 전국 각지로 문활을 떠났다. 그중 건국대 상경대학 밴드부 1학년 김영준(20)·안지영(19)·정지수(20)·이동하(24) 학생과 2학년 조준형(20) 학생 5명이 모여 만든 ‘초아’팀은 8월 6일부터 15일까지 애월초등교에서 문화봉사활동을 진행했다.

9박10일의 일정 중 마지막 밤에 열린 ‘노래가 피운 이야기 꽃’ 공연은 초아팀의 특징인 음악과 책을 결합한 북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콘서트의 첫 코너는 동화구현 시간이었다. 6학년 권현태와 김장주·고영준·홍진현, 4학년 장수영 학생이 ‘풍선’이란 노래를 모티브로 만든 이야기를 무대 앞에 나와 연극으로 보여 줬다. 학생들이 노래를 듣고 만든 이야기는 추억을 찾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다.이어지는 코너는 자신이 읽은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는 ‘얘들아, 이 책 한 번 읽어 봐’와 ‘창작시 낭송’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밴드 공연이 열렸다.

인기 없어진 80~90년대 농활 대체 실험
애월초등교는 6학급에 전교생이 130여 명인 작은 학교다. 문활 프로그램을 신청한 애월초등교 김금희(51) 교감은 프로그램 진행 기간 내내 학교에 나와 초아팀 학생과 아이들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는 “여기 애월은 우리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힘든 환경이에요.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 문화예술교육을 해 주고 싶었는데 예산도, 선생님도 없어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대학생들이 와서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줬네요”라며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은 우리 아이들의 밑천이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초등학교 시절 문화교육은 정말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초아’는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팀장 정지수 학생은 “저희가 하는 활동이 아이들을 밝혀 주길 바라는 마음에 팀 이름을 초아로 정했다”고 했다. 초아팀은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이틀 전인 4일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약 2주간 애월초등교에서 지내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학교 유치원·교실에서 잠을 자고 숙직실에서 샤워를 했다. 매일 빨래도 하고 밥은 숙직실에서 지어 먹었다. 초아팀 학생들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여기 와서 더 잘 먹고 있어요”라고 했다. “저희들이 밥도 해 먹기도 하지만 매일 저녁엔 교감선생님이 여기저기 제주도 맛집에 데려가 몸보신을 시켜 주세요. 점심때는 영양사 선생님이 밥도 해 주고 간식도 꼬박꼬박 챙겨 주시고요.”

초아팀은 6일 오후 2시 학교 도서관에서 문활에 참가할 애월초등교 4학년에서 6학년 학생 20여 명과 첫 만남을 가졌다. 애월초등 4학년 최희경 학생은 “언니·오빠들을 처음 봤을 때 (피부가) 하얗고 뭔가 우리랑 다른 것 같아 신기했어요. 그래서 쑥스럽기도 했고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가 처음엔 부끄러워하고 낯을 가렸다고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문화활동이 끝나가는 요즘엔 아이들이 아침에 초아팀 학생들을 깨운다고 했다. 프로그램 시작(오후 2시)보다 몇 시간 전부터 학교에 와 교실에서 아직 자고 있는 초아팀 학생들에게 장난을 친다고 했다. 주섬주섬 먹을 것을 싸와서 살며시 손에 쥐어 주는 아이, 미니 홈피 일촌을 맺어 비밀 이야기를 하는 아이도 생겼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날은 활동 둘째 날이었다. 그날은 앞으로 문화활동 하면서 입을 티셔츠를 만들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주제로 하얀 티셔츠에 특수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 얼굴이나 동물, 곤충을 많이 그렸다. “제 이름이 수영이라서 수영장을 그렸어요”라고 말하는 4학년 장수영 학생도 있었다.

티셔츠를 완성한 뒤엔 초아팀과 아이들 모두 손과 팔에 물감을 묻혀 학교 입구에 걸 플래카드도 만들고 운동장에 나가 축구도 했다. 초아팀 조준형 학생은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학교에서 재미난 걸 한다고 마을에 소문이 나서 처음에 신청하지 않았던 애들도 참가하고 싶다고 학교에 왔어요. 집에 있는 4~5세짜리 동생을 데리고 오는 애들도 생겼고요”라고 했다. 북채를 부딪쳐 밴드 공연 시작을 알리는 막내 세빈이도 누나들 따라 구경 왔다가 밴드에 합류했다.

수요일부터는 밴드 연습을 시작했다. 밴드 공연 준비는 초아팀 김영준 학생이 담당했다. 그는 밴드 출신인 초아팀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준비했다. 애월초등교에서 승무북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SWISS BOY’란 노래에 승무북 파트를 많이 넣어 편곡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하나씩 가르치고 보완하면서 합주를 완성해 갔다. 아이들과 함께 소리를 맞추는 것이 즐겁다는 이동하 학생은 “시간도 많지 않고 어린아이들이라 전문적인 악기 연주는 힘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이랑 밴드를 맞추다가 찌릿한 기분을 여러 번 느꼈어요. 우리도 밴드 공연을 할 때 팀원끼리 뭔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찡’ 하고 오는 게 있거든요. 아이들하고 연습하면서도 그걸 느꼈죠”라고 말했다.

취업을 위해 방학이면 영어 공부를 하거나 인턴 등 ‘스펙 쌓기’를 하는데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부담이 없느냐는 질문에 초아팀 안지영 학생은 “솔직히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지금 친구들은 다들 영어학원 다니고 있을 텐데요. 하지만 대학생일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나중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 지금 그걸 하고 있다는 게 참 좋아요”라고 말했다. 정지수 학생 역시 “지금까지 방학은 항상 똑같았던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뭔가 기획하고 만들어 실행하는 경험은 어디서도 못하죠. 제 인생에 진짜 도움이 되는 ‘스펙’을 쌓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문광·농식품부 '문화배달부'10팀 선발
대학생들이 농촌에 문화봉사활동을 떠나는 ‘문화배달부’ 프로그램을 기획한 문화부 문화여가정책과의 이혜림 사무관은 “어떡하면 문화로 농어촌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농활의 필요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농활이 진화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판단해 ‘문활’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1기, 2기 총 20개 팀이 활동 중인 문화배달부 프로그램은 문화부와 농식품부에서 공동 후원하고 인터넷 저작권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는 CC KOREA에서 진행을 맡고 있다.

5월 모집한 1기 10개 팀은 농어촌 지역과 가까운 곳의 대학생들 위주로 선발해 각 팀이 담당하는 마을에 수시로 찾아가 문화봉사활동을 한다. 2기 10팀은 7월 모집해 여름방학 기간 9박10일 동안 강원도부터 통영까지 전국의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간다. 밴드 동아리의 특징을 살려 북 콘서트를 여는 초아팀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나 뮤직 드라마를 만드는 팀,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팀, 미용실을 운영하는 팀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배달부 홈페이지(www.ccmessenger.org)에 가면 문화배달부 대학생들의 활동을 기록한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다.

2기의 경우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4~5명이 한 팀으로, 기획안으로 2배수를 뽑은 다음 프레젠테이션과 면접을 통해 10개 팀을 선발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CC KOREA의 염진영(35)씨는 “기획안이 재미있나, 현실성이 있나, 얼마나 고민했나 등을 주로 봤지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팀워크였다 ”고 말했다. 그는 특히 ‘스펙’만을 쌓기 위해 급조해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 팀들은 선발하지 않았다고 했다.

겨울방학에도 문화배달부 3기를 선발할 예정이라는 문화부 문화여가정책과 문영호 과장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활이 보편화돼 우리(정부)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과거 농활처럼 대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문활을 떠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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