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농산물 주권 지키는 신토불이 브랜드,세계 시장 뚫는 '신무기'

지리적 표시제. 아직 국내에선 낯설다. “그게 뭐야?” 하는 반응이 더 많다. 그러나 농산물 및 그 가공품에 대한 주권 다툼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지리적 표시제는 상품의 품질과 특성이 해당 상품의 ‘원산지’ 때문에 생겼다면 그 원산지의 이름을 상표권으로 인정해 준다는 제도다. 최초의 지적재산권 협정인 1883년 파리 협약 때 처음 등장해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부속 협정으로 채택된 지적재산권협정(TRIPs)에서 ‘원산지를 오인하게 만들 수 있는 상표는 각국이 등록을 거부하거나 무효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어엿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1999년 1월 개정된 농산물품질관리법에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해 이듬해부터 전면 실시했다. 그러나 등록 대상이 농산물(그 외 가공품)로 제한돼 있고 권리 침해자에 대한 제재 수단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2005년부터는 상표법 하에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도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산모시·춘천막국수 등도 상표로 등록할 수 있게 됐고, 상표를 무단 도용한 자에 대해서는 형사적 처벌도 할 수 있게 됐다.

그간 국내에서 지리적 표시제는 사문화된 제도였다. 지리적 표시제가 힘을 쓸 때는 상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경우다. 지리적 표시제로 보호를 받아야 ‘원조’ 한국산이 ‘짝퉁’ 현지산과 차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지역 특산품 수출이 미미해 별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잠정 체결되면서 지리적 표시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세를 취한 쪽은 물론 EU다. EU는 줄다리기 끝에 162건의 지리적 표시 상표를 인정해 줄 것을 협정에 넣었다. 메도크·보르도·부르고뉴 등 와인 80종을 비롯해 아이리시위스키·코냑 ·카망베르치즈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국내 상품에 이런 말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다.

수세적 입장이라고 해서 지리적 표시제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리적 표시제가 확립되지 않았다면 농산물 주권을 뺏길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 또는 관련 상품을 개발해도 자칫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해외 현지 업체들이 상표를 먼저 등록하고 한국 제품인 양 행세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의 ‘바스마티’ 쌀 분쟁이다. 바스마티 쌀은 향이 진하고 맛이 섬세해 고급 쌀로 통한다. 오랜 옛날부터 파키스탄과 인도의 북부 펀자브 지방에서 재배됐다. 1997년 인도는 바스마티 쌀 50만t을 유럽·미국·중동 등으로 수출해 2500만 달러의 소득을 올렸다. 그런데 그해 9월 미국 곡물회사인 라이스테크(Rice Tec)가 바스마티 쌀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했다. 인도 농업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2000년 4월엔 수천 명의 인도인이 미국 특허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미국과 인도 간에 외교 마찰까지 빚었다. 결국 라이스테크가 일부 상표권 출원을 취소하기는 했지만, 미 법원은

“바스마티라는 이름이 일반명사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인도에서 생산된 ‘진짜’ 바스마티 쌀이나 미국 업체가 생산한 ‘짝퉁’ 바스마티 쌀이나 소비자들이 구분하기 어려워지게 됐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문에 적혀 있는 말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농산물 주권을 뺏길지 모른다. 지리적 표시제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