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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8·15경축사와 신평화구상

금년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다. 일본의 우리나라 병탄이 없었다면 한국전쟁도 일어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건은 서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 있는 해의 남북 관계와 주변 정세가 긴장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대치 관계와 동·서해상에서의 한·미 연합훈련을 놓고 벌이는 미·중 양국의 기 싸움이 만만치 않다. ‘차이메리카’(Chimerica)로 불리는 미·중의 G2 시대를 맞아, 두 나라의 경쟁과 협력관계를 선순환시키면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구상은 무엇일까. 북핵 6자회담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중간국(middle power)으로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소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간국’의 역할에 대해 벤치마킹할 국가가 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전쟁을 마무리한 강화회의가 당시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것은 이 나라 재상 메테르니히의 외교 개가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여 년 전 당시나 지금이나 유럽의 주요 4강은 영국·러시아·독일(프러시아)·프랑스다. 현재 동북아의 4강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라는 사실은, 제5국(중간국)으로서 한국이 오스트리아가 처했던 입지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6자회담이 두 번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으로 완전 실패로 돌아간 것은 일차적으로는 ‘비정상 국가’인 북한의 책임이다. 그러나 전후 유럽의 평화 프로세스에서 볼 때 회담 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양자적’ 다자회담은 실패로 돌아간다는 교훈을 유럽의 ‘헬싱키 프로세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유럽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소련·동유럽 공산권의 해체를 가져온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1995년 OSCE로 개칭)는 비동맹·중립권 국가를 포함, 유럽 대부분 국가가 참여하는 회의체였다. 회담 시작 2년 만에 ‘헬싱키 최종의정서’를 탄생시켰다. 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주축이 된 양자적 다자회담인 동서상호균형감군(MBFR)회담은 1973년 이래 15년 넘게 협상을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변형된 양자적 다자회담인 6자회담(한·미·일 vs. 북·중·러)도 완충장치가 없기 때문에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상업위성 SPOT이 1989년 9월 19일 영변 핵시설 단지를 촬영, 공개해 발생했던 북핵 문제는 20년이 넘도록 별무소득이다.



북핵 문제는 결국 단기적인 물리적 대증요법으로는 치유될 수 없고 중·장기적 차원의 화학적 원인요법이 요구된다. 한 예로 ‘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가 가동돼 역내 평화와 안정을 구현시켜 북한 스스로가 핵이 필요없다고 판단하는 안보환경을 만들어 가는 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대통령 8·15 경축사에서는 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를 강력하게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이 미·중 갈등 관계를 역이용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제고시킬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에서도 그렇다.



김경수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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