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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어깨너머로 의학 배워 개업한 무면허 의사 275명 적발하다

 
  1956년 가톨릭의대 신입생들. 일제 강점기 남한 지역에는 1개의 의과대학, 5개의 의학전문학교가 있었다. 해방 이후 의학전문학교들이 의과대학으로 승격하고 1954년까지 부산대·이화여대·가톨릭대에 의과대학이 신설돼 의과대학은 8곳이 되었고 정원도 많이 늘었다. 의학 교육기관의 확장은 ‘가짜 의사’가 발붙일 곳을 줄였다. [사진 출처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50년사]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니 어떡할까요/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병원놀이’, 장민수 작사) 요즘 유치원생들이 배우고 부르는 노래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간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라고 병원이 질병 치료의 유일한 권위기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세기 전만 해도 질병과 병원은 직결되지 않았다. 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먼저 민간에 전승되어 온 요법에 의존하고, 그래도 안 나으면 점쟁이나 판수를 불렀다. 의사를 부르는 것은 그 다음 순서였고, 의사가 치료할 수 없다고 판정하면 마지막으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의료 행위’였다.

서양 근대 의학이 도입되고 의학적 계몽이 확산되면서, 여러 ‘의료인’ 중에서 의사가 독보적 권위를 행사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접골사·침구사·안마사 등 여러 종류의 유사 의료인이 있었다. 의사도 여러 층이 있어 정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 의학을 독학한 뒤 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 특정 군(郡)에서만 개업할 수 있는 제한적 면허를 받은 한지의(限地醫) 등으로 구분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여기에 한의사 문제까지 더해져 이들 여러 의사의 자격 범위를 정하는 데 무척 애를 먹기도 했다.

의사 자격에 단일 기준이 없었던 탓에 가짜 의사도 많았다. 1954년 8월 12일 보건부는 가짜 의사 275명을 적발해 경찰에 통보했다. 면허 없이 병원 간판을 내건 사람, 또는 남의 면허증을 빌려 진료 행위를 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걸려들었다. 이들 중 다수는 병원에서 조수 노릇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의술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런 식으로 의술을 배우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해방 이후 의과대학이 늘어나고 의사 자격 기준이 강화되자 이들은 정규 의사가 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의사 자격이 엄격한 전문적 통제 아래 놓이자 의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아졌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된 뒤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쉽게 전문 의료인을 접하게 되었으며, 자기 몸의 미세한 변화를 의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성을 키워갔다. 더불어 병원이 개입하는 영역도 넓어졌다. 오늘날 사람들은 생로병사의 모든 계기에 병원을 찾는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무면허 침구 행위 금지가 합헌이라고 재결정했지만, 재판관 다수는 위헌 의견을 냈다. 의학의 지배망이 삶의 전(全)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오히려 의료와 비(非)의료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진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 하겠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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