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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84> 신약, 요람서 무덤까지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등 사회 변화에 따라 약의 소비량도 함께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08년 기준 7731억 달러에 이릅니다. 2020년엔 1조3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합니다. 천문학적인 거래액을 기록하는 약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돼 어떻게 환자들에게 투여될까요. 따져 보면 인생살이와 흡사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약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여행을 떠나 보시죠.



전립선 치료제 털 나는 부작용, 발모제로 다시 태어났죠

황운하 기자



700만 개 후보 물질서 단 1개만 신약으로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약 1억 개의 정자 중 단 한 개만이 난자와 ‘위대한 도킹(결합)’에 성공하며 수정이 이뤄진다. 약도 비슷하다. 암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일명 ‘신약’은 700만 개의 후보 물질 중에서 단 한 개만이 세상의 빛을 본다. 국내 로또복권에서 1위에 당첨될 확률인 800만 분의 1 못지않다.



신약 개발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700만개의 후보물질 중 1~2개만이 약으로 탄생해 환자에게 투여된다. 사진은 신약의 성분을 검사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직원들. [중앙포토]
약의 부모는 제약사다. 제약사 소속 중앙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우선 어떤 치료제를 개발할지 ‘타깃(목표)’을 정한다. 대머리 남성들을 위한 탈모치료제를 개발할지, 아니면 일상생활의 발목을 잡는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를 연구할지 등등 좌표를 설정한다.



이후 지구에 널린 수많은 물질 중에서 목표로 정한 질환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물질들을 ‘탐색’한다. 이 물질들은 연구실에서 화학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식물 등 자연에서 얻기도 한다.



해열진통제로 알려진 111년 된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추출물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인공적(화학적)으로 성분을 만들고 있다. 항암제로 널리 쓰이는 ‘탁솔’의 성분인 파클리탁셀도 처음엔 주목에서 발견됐다.



건강한 남녀가 자연적으로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약 30%(『베이비 플랜』 박문일 지음)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인공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약의 개발도 멀고 험난하다. 특히 신약이라면 그 여정은 10년 이상 이어진다. 개발비용도 5억~10억 달러가 든다. 수백만 개의 후보 물질에서 치료제가 될 만한 재목을 찾는 것은 얼핏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제약사 입장에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세계적으로 유통될 신약을 개발하면 연매출액이 평균 약 45억 달러에 이른다. 순이익이 자동차 300만 대 이상을 판매했을 때와 같다. 그야말로 고부가가치 산업인 셈이다.



쥐·원숭이 등 대상 ‘전임상시험’서 대부분 탈락



피임약 임플라논은 성냥개비 모양의 봉을 위팔 안쪽에 이식하면 효과가 3년 간 지속된다.
후보 물질 수집이 완료되면 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우선 쥐·원숭이 등에 투여해 1차적으로 물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한다. ‘전임상시험’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물질이 짐을 싸 집으로 향한다.



이어 약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큰 일부 물질을 사람에게 투여하는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1~3상까지 3단계를 거친다. 엄마 배 속의 태아가 점차 성장하듯 후보 물질들도 임상시험을 거치며 성장한다.



이 시기부터 태아가 태명을 갖듯 후보 물질에도 ‘프로젝트명’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JoongAng Ilbo) 제약사가 당뇨병(Diabetes) 치료제를 연구한다면 프로젝트명은 ‘JI-D’인 식이다.



임상시험은 병원에서 진행하지만 제약사가 원한다고 다 할 순 없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병원의 생명윤리위원회(IRB)에서 타당성을 판단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이 진행됐다고 모두 신약 개발에 파란불이 켜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암초가 많다. 임상시험 중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치료 효과가 미미하면 천문학적 개발비와 함께 휴지통에 버려진다. 약 3년 전 세계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가 고지혈증 치료제를 개발하다가 기대 이하의 결과가 확인돼 1조원의 개발비만 날린 바 있다.



반면 ‘소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는 격’으로 우연히 또는 역발상을 통해 신약 개발의 행운을 거머쥐기도 한다. ‘피나스테리드’라는 물질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개발하던 중 털이 나는 부작용(side effect)이 확인돼 탈모치료제(프로페시아)로도 출시됐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보통명사 격이 된 ‘비아그라’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다가 효과가 시원찮아 개발 방향을 수정한 결과물이다. 우울증 치료제 개발 실패 후 사정 지연 효과가 관찰돼 조루증 치료제로 방향을 바꿔 탄생했다.



임상시험 통과하면 색깔·형태·이름은 매력적으로



임상시험을 거치면서 앞으로 태어날 약의 제형(劑形)이 결정된다. 약을 사용 목적이나 용도에 맞게 적절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사람에게 인종(人種)이 있는 것처럼 ‘약종’이 정해지는 것이다.



입으로 먹는 정제(알약)·캡슐제·액제부터 흡입제·연고제·주사제 등 약효가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다양한 제형을 검토한다. 파스처럼 붙이는 패치제나 피부에 삽입하는 이식제까지 많게는 120여 개 제형에 이른다.



최근에는 먹는 불편함을 해소한 패치제들이 점차 늘고 있다. 천식치료제(호쿠날린)·치매치료제(엑셀론 패치)·피임약(이브라) 등에까지 적용된다. 제형과 함께 모양·크기·색도 정한다. 모양은 알약의 경우 원형·타원형·마름모형·장방형(가로로 긴) 등 다채롭다. 크기는 주성분의 함량에 따라 결정되는데 50~1200mg까지 있다.



약의 색을 내기 위해선 식용색소를 쓴다. 색을 결정하는 건 ‘제약사 마음’이지만 심리학이나 마케팅 전략이 가미되기도 한다. 액상 진통제(이지엔6)는 심리적으로 통증을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파란색이다. 정신과 약은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녹색이나 연한 색을 많이 쓴다.



약의 외형이 결정되면 사람처럼 ‘작명소’를 거쳐 정식 이름을 갖게 된다. 이름은 제품의 성공적인 시장 출시에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보통 약의 주요 성분명을 살짝 변형해 이름으로 사용한다. 또 감성적 의미를 가미해 홍보 효과를 노리는 제품도 많다. 특히 성(性)과 관련된 치료제가 그렇다.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Zydena)’는 라틴어의 조어로, ‘연인의 해결사’라는 뜻이다. 본뜻에 더해 ‘잘 되나’ ‘자 이제 되나’를 연상케 한다. 다른 발기부전 치료제 ‘시알리스(Cialis)‘는 하늘을 뜻하는 불어 시엘(Ciel)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Alice)의 합성어로, ‘하늘만큼 넓고 자유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는 의미다. 조루증 치료제 ‘프릴리지(Priligy)’는 특권(Prestige)과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인 프리빌리지(Privilege)라는 영어 단어에서 따왔다.



뒤늦게 부작용 발견돼 퇴출되기도



임상 3상 시험을 마치고 제형과 이름·색·모양이 결정된 약은 각 나라의 보건 당국에서 허가를 받아야 환자들에게 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청,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이 있다.



국내에서 허가가 떨어진 약들은 식약청이라는 ‘호적’에 이름을 올린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것과 같다. 이렇게 등록된 약들은 크게 세 개의 ‘생명’을 갖는다. ‘특허기간’으로 보면 약 20년, 유효기간은 2~3년이다. 백신 중에는 1년 미만인 것도 있다.



마지막 생명은 ‘약물 방출시간’이다. 사람의 몸에 들어온 뒤 약 성분이 녹으며 몸에 흡수돼 그 수명을 다하는 시간을 말한다.



최근 첨단 ‘약물 전달 시스템(DDS·Drug Delivery System)’을 적용해 몸속에서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도록 하고 있다. 매일 3개 이상 복용하던 약을 최대 3년에 한 번만 투여하면 되는 초 ‘슬로 약’도 있다.



붙이는 만성통증 치료제(듀로제식 디트렌스)는 72시간 동안 지속된다. 바르는 무좀약 중에선 피막을 형성해 13일간 약효가 이어지는 것(라미실 원스)도 있다. 골다공증약도 1년에 한 번만 주사하면 되는 제품(아클라스타)까지 나왔다. 피임약 ‘임플라논’은 길이 40㎜, 직경 2㎜의 성냥개비 모양의 약을 팔뚝 안쪽에 이식하면 3년간 배란이 억제된다.



어렵게 만들어진 신약이라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면 ‘단명’ 한다. 제품 판매 후 안전성 등을 따지는 ‘시판 후 조사(PMS·Post Marketing Surveillance)’에서 부작용이 발견되면 식약청의 호적에서 삭제된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판매됐던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가 심장마비 등의 위험으로 2004년 퇴출되기도 했다.



도움말 약학정보원 김대업 원장, 대한약사회, 식품의약품안전청, 한국화이자제약 이원식 전무, 한미약품 우종수 전무






서랍 속 오래된 약, 함부로 먹으면 안 돼요



“어! 이게 무슨 약이지?”



대부분 가정에는 여기저기 서랍 속에서 나뒹구는 약이 서너 개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약이 뭐에 쓰려던 건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게 문제다. 이런 약들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복통·두통 등이 생겼을 때 어림짐작으로 복용했다간 큰 탈이 날 수도 있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중증질환 치료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약은 우선 약국으로 가져가서 물어보는 게 최선이다. 보건복지부·환경부·대한약사회 등은 공동으로 ‘가정 내 의약품의 올바른 사용과 폐의약품 회수·처리 시범사업’을 펼치고 있다.



집에서 묵은 약을 약국에 가져가면 복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준다.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고 변질되지 않은 경우 정확한 사용 방법을 알려 준다. 문제가 될 약은 약국에 비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리면 된다. 이렇게 하면 필요 없는 약을 주방 개수대·화장실·쓰레기봉투 등에 버리는 탓에 문제가 됐던 환경 오염도 막을 수 있다. 2007년 국립환경과학원이 4대 강을 조사한 결과 진통해열제에 쓰이는 아세트아미노펜 등 약 성분 7종이 검출됐다. 포장을 잃어버린 약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간단하게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약학정보원 인터넷 홈페이지(www.kdrug.org)에 접속해 약의 모양, 겉에 쓰인 글자, 색 등 정보를 입력하면 어떤 약인지 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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