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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④

시가 쉬우니 울림은 더 크구나

시 - 마종기 ‘아카시아 꽃’ 외 14편




마종기 시인은 “언어든 주제든 시란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한다는 말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언어실험으로서의 시는 취미가 없다”면서 “그 길이 새로움이 가는 길이고 시가 가야 하는 길일까요”라고 되물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하도 가난해 진흙쿠키를 구워먹는 아이티의 현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60년 전엔 우리가 그랬나 보다. 마종기(72) 시인이 기억하는 1950년은 배고픔이다. 방공호 흙벽을 긁어 ‘작은 진흙덩어리 몇 개씩 삼키고’ 아카시아 꽃을 헛구역질 나도록 씹어먹던 시절. 강산이 여섯 번쯤 바뀐 2009년의 아카시아는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꽃이다.



“지난해 5월 지방을 돌아다니다 엄청난 아카시아를 봤어요. 어린 시절 육체적 허기를 채워준 꽃에게서 정신적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성공한 의사다. 그러나 스스로 떠난 고국이 아니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고초를 당하고 내쫓겼다. 그 이야기조차 30년이 지나서야 ‘섬’이라는 시로 풀어낼 정도로 삼키며 살았지만, 그럴수록 그리움은 더 절절했다. 요즈음에야 이산자 의식에서 조금씩 풀려났다.



‘나는 왜 오래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내가 사는 곳에는 사철 열등감만 차있고/눈이 올 듯 늘 어둡고 흐려야만 안심을 했지./(…)//나는 이제 아무데나 엎드려 잠 잘 수 있다.’(‘북해의 억새’ 중)



시인은 “집착은 빈곤한 정신의 표상”이라며 “고향 생각에 너무 매달려 매너리즘에 빠지기 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시는 쉽다. 시인은 ‘형, 나도 알아듣게, 쉽고 좋은 시 많이 써’(‘동생을 위한 조시’)라고 했던 죽은 동생,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당연히 기린이라 생각하는 동료들을 위해 쉽고 좋은 시를 쓰려 애썼다. 시에서까지 냄새를 쏟아내지 않아도 충분히 썩고 더럽고 추한 세상, 시의 길이란 아름다움을 한층 더 밝히는 데 있다고 믿는다.



문태준 예심위원은 “차분한 숨결 같은 시”라 평하고 “우리 시단에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시를 쓰는 분이 있다는 건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아카시아 꽃



1. 1950년



아, 저 먹이!

저 맛있는 꽃!

굶주림에 지친 나를 살려준 꽃,

헛구역질의 꽃향기도 기억난다.

아, 저 황홀한 먹이!

한국 전쟁의 마르고 긴 낮은

몇 달씩 지치고 배가 고팠다.

시야가 노랗던 초등학교 6학년,

뙤약볕이 어지럽고 무섭게 더워

방공호 땅굴 속의 흙벽을 긁으며

작은 진흙덩어리 몇 개씩 삼키고

흙 묻은 입에 아카시아 꽃송이들

몇 송이채 씹어 먹고 또 먹던

그 여름, 저 흰 향기의 밥.



2. 2009년



5월 말에 만난 무더기의 황홀은

진한 몸 냄새 흔들며 눈 감는 꽃,

충청북도 제천, 진천, 옥천을 돌며

밤낮으로 어지럽게 달리면서 핀다.

온 몸에 감기는 탄성의 감촉으로

나도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요염하고 화사한 저 지천의 먹이!

아직도 어디쯤에 남아있는 내 허기여,

미안하다, 가지고 싶었다.

내 소원은 이 계절만이라도 함께 있는 것,

웃으면서 배고픈 나를 숨겨주는 꽃.

<문학동네 2010년 봄호>



◆마종기=1939년 도쿄 출생.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이산문학상·현대문학상 등 수상. 시집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 뿐이랴』 『하늘의 맨살』 등.  






벗어날 수 없어라, 이 삶의 심연



소설 - 박성원 ‘하루’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박성원씨는 작품과 사람이 불일치하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사람은 희극적이고 헐렁한데 작품은 비극적이고 치밀해서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들은 내가 소설가인줄 꿈에도 모르고, 영업사원이겠거니 짐작한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박성원(41)의 단편 ‘하루’(‘세계의 문학’ 2009년 겨울호)는 말 그대로 하루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느 여자의 하루. 은행 마감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 하필 눈이 내려 길에서 90분간 갇혔고, 간난쟁이는 열이 절절 끓는데, 주차장은 빈 곳이 없다. 골목길에 차를 대고 아이는 놔둔 채 은행으로 달려가지만 줄이 길다. 악재에 악재가 겹치더니, 차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같은 날, 어느 남자의 하루. 인사팀 선배가 점심을 먹으며 해고를 통보했다. 남자는 평소처럼 퇴근해 집으로 가던 길, 술집으로 돌연 발길을 돌린다. 아들에게 장난감 견인차를 선물로 사간다는 전화를 한 게 가족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하루가 묘하게 얽힌다. 그리고 두 개의 비극을 그려낸다. 짧은 이야기에서 두 명이 죽는데도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이전에는 살인마에게 느닷없이 죽임을 당한다거나 하는 식의 재난적 상상력을 펼쳤던 작가이기에, 많이 부드러워진 편이다.



“무밭에서 30층짜리 빌딩을 바라보면 거기에서 오는 기괴함이 있어요. 도시가 정착되기 전에 오는 공포가 예술을 자극하던 시대를 살았죠. 그래서 초현실과 환상에 주목했고요. 하지만 도시가 완전히 정착한 현재엔 도시의 일상이 주는 비극적 요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특히 작가가 주목한 것은 여성의 일상이다. 여주인공은 연극을 그만두고 주부로서 아이를 키운다. 철두철미한 남편으로부터 “살림하는 여자가…”라는 질타를 받으면서다. 자동차 유리를 짙게 선팅하는 게 연극 무대의 암전이 그리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작가는 동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학생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꿈을 포기하는 게 못내 안타까웠단다.



“재능이 남다른 친구들도 많았는데…. 출산하면서 여성의 의무를 완전히 벗어나는 게 아니라 계속 헌신하는 것이 여성의 삶이니까요. 그러면 남성이 하는 일은 모두 전적으로 건강한가에 대한 의문, 어찌 보면 자기 반성이 많이 들어간 소설입니다.”



아기가 타고 있는 차를 끌고 간 견인차 운전수나, 후배에게 해고 소식을 전한 사람이나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남자의 일이다.



“도덕적 책무를 묻는다거나 질타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판타지에 추리기법, 살인이 점철된 예전 소설은 남성들이 극단적으로 좋아했고, 여성은 제 처조차 안 좋아했는데 이젠 여성 팬이 생기고 남성 팬은 거의 떨어져나갔다”며 웃었다. 김미현 예심위원은 “단 하루도 삶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데에서 ‘운명비극’이 탄생했다. 커다랗고 심오한 주제를 다뤘다”고 평가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박성원=1969년 대구 출생. 1994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소설집 『이상 이상 이상』『나를 훔쳐라』『우리는 달려간다』『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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