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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입양인 편견 깨겠습니다”

신주애씨(오른쪽)와 장지영씨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미혼모와 입양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을 우리가 깨고 싶습니다.”



미혼모 장지영 - 입양인 신주애씨의 ‘신나는 도전’

5일 오후 1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의 한 콘퍼런스룸. 11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장지영(28·여)씨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뒤 미국으로 입양된 신주애(27·여)씨가 청중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리틀제이패밀리’를 청중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 발표회는 ‘2010 세계한인입양인대회’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들이 꾸리는 리틀제이패밀리는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오는 입양인들에게 한국 요리와 문화를 소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리틀제이패밀리의 ‘제이(J)’는 지영과 주애, 그리고 장씨의 아들 이름 앞 글자의 공통 이니셜을 딴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사회적 장애’라는 공통분모 덕분이었다. 장씨는 지난해 1월 임신 2개월의 몸으로 파혼을 결심했다. 서울시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장씨와 남자친구는 2년간 교제 끝에 아이를 갖고 양가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였다. 장씨는 일본에 직장이 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도 그만뒀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나쁜 술버릇이 반복되면서 장씨는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무책임한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장씨는 대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했다. 장씨의 굳은 결심은 부모님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저희 아버지가 ‘생명은 소중한 거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사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미혼모의 길은 험난했다. 관련 기관의 문을 닥치는 대로 두드렸지만 대부분 양육보다는 입양을 권유했다. 출산을 한 달 앞둔 지난해 8월, 도움의 손길을 찾아 헤매던 장씨는 한 미혼모 커뮤니티에서 신씨를 만났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보내진 신씨는 양부모 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한국을 찾았다. 자신의 입양서류가 잘 보존돼 있었던 덕에 신씨는 운 좋게도 일주일 만에 생모를 만날 수 있었다. 23년 만에 다시 만난 딸에게 그의 엄마는 “석 달 반 동안 널 키워 보려 노력했지만 미혼모에게는 입양밖에 길이 없었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이후 신씨는 한국의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살 차이의 장씨를 만나 ‘언니’라고 부르며 한국어도 배웠다. 밝은 성격에 유머 감각까지 통하는 두 사람은 금세 친자매 같은 사이가 됐다. 지난해 11월 장씨가 “애 키우는 미혼모의 롤모델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신씨와 의기투합해 기업체를 만들었다. 리틀제이패밀리는 올 3월 처음으로 입양인을 위한 한국 요리 강좌를 열었다. 입양인 관련 행사에 두 차례 케이터링 서비스도 했다. 재료비·인건비를 제외하면 한 번 행사 때마다 25만~30만원이 수익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100여만원은 명함과 브로셔 인쇄, 각종 행사 등록비 등 회사 운영에 쓰였다. 장씨는 “사업이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미혼모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리틀제이패밀리는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앞으로 ‘재밌고 신나게 일하는 사람들’을 모토로 입양인들의 전시회·콘서트·영어 과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미혼모와 입양인들에게 일할 기회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글=심새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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