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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②

크고 거창해야만 위대한 것인가

시 - 김경미 ‘흑앵’ 외 22편




김경미 시인은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미숙해 쩔쩔 매는 편인데도 시에서는 과감하게 속내를 드러내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내 시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반드시 이성(異性)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강정호 인턴 기자]
김경미(51) 시인의 1983년 등단작 ‘비망록’은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고,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를 낳고 싶다는 화자의 고백에서 독자들은 여성 내면의 은밀하고도 도발적인 욕망을 엿보는 짜릿함을 느꼈나 보다. 김씨의 89년 첫 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에 실렸던 시는 세 번째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의 2006년 개정판에 재수록된다. 그만큼 ‘비망록’을 원하는 이들이 많았던 게다.



이런 내력 때문인지 김씨의 시는 사랑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올해 김씨의 후보작 가운데 하나인 ‘웅크리다’만 해도 그렇다. 시의 화자는 ‘파란 물감 옅게 바다처럼 번져가는 저녁 창 앞에서’ 자신의 몸을 ‘옛날식 검은 레코드판’처럼 동그랗게 만 후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하나, 둘, 셋 사랑의 상처의 노래를 듣는다.



예심 위원들도 비슷하게 본다. “김씨의 시가 시상을 역전시켜 반짝반짝 하는 느낌을 주는 힘이 있지만 끝내 사랑을 두둔한다”는 평가다. 정작 김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자신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쌍둥이처럼 자신과 잘 맞은 사람일 뿐 반드시 이성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김씨가 감상용으로 추천한 ‘흑앵(버찌)’도 얼핏 사랑시로 독해가 가능할 듯 하다. 하지만 김씨는 “작은 것이 위대한 것이고 반대로 큰 것도 별것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표현한 시”라고 설명했다. 또 사소한 것의 고유성을 얘기하는 시라고 말한다. 시에는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김씨는 “노란무늬 붓꽃은 노랑 붓꽃과 다른 종류”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천남성은 별 이름이 아니라 풀 이름이다. 미세한 말의 차이가 현격한 느낌의 차이를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김씨는 “시는 똑바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추상화처럼 즐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열린 감각으로 감상하라는 주문이다.  신준봉 기자



◆김경미=1959년 경기도 부천 출생. 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 『고통을 달래는 순서』 등.



사진=강정호 인턴 기자



흑앵



크고 위대한 일을 해낼듯한 하루이므로

 

화분에 물 준 것을 오늘의 운동이라친다

저 먼 사바나 초원에서 온 비와 알래

스카를 닮은

흰 구름떼를

오늘의 관광이라 친다

뿌리 질긴 성격을 머리카락처럼 아주 조금 다듬었음을

오늘의 건축이라 친다

 

젖은 우산 냄새를 청춘이라고 치고

떠나왔음을

해마다 한겹씩 흑백의 필름통을 감는 나무들은 다 사진 찍어두었을 거다

신록답지 못했던 그 사진들 없애려

나뭇잎마다

한 장 한 장 치마처럼 들춰본 추억을

오늘의 범죄라 친다

없애고도 산뜻해지지 않은 이 나날의 해와 달을

오늘의 감옥이라 친다

 

노란무늬 붓꽃을 노랑 붓꽃이라 칠수는 없어도

천남성을 별이라 칠 수는 없어도

 

오래 울고난 눈을 검정버찌라 칠 수는 없어도

나뭇잎 속의 사진을 당신으로 쳐주고 싶지는 않아도

 

종일 사로잡힌 오늘 하루의 그리움을

위대함이라 친다

 

 <‘시안’ 2010년 여름호 발표>






대필작가 통해 묻다, 소설의 힘

소설 - 권여선 ‘팔도기획’




권여선씨의 단편 ‘팔도 기획’은 이 시대 소설의 값어치를 묻는 진지한 내용이지만 가벼운 웃음도 넘친다. 권씨는 “예전에 사람들을 히스테릭하게, 비극적으로 그렸다면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귀엽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중앙포토]
소설가 권여선(45)씨는 ‘독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권씨는 2004년 첫 소설집 『처녀치마』를 펴냈다.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시길. 처녀치마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곱상한 제목과 달리 소설책은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의 너저분한 이야기 천지였다. 가령 표제작은 평생 아버지를 떠받들며 쩔쩔맸던 어머니의 딸이 두 번 이혼 경력이 있는 옛 남자 친구에게 발목 잡히는 모전여전 이야기다. 그런데도 권씨는 자신의 소설을 연애소설에 빗댔었다. “연애의 학살이 연애소설의 조건”이란 말도 했다. 실패담이라야 소설이 된다는 뜻일 게다. 문제는 권씨가 하필 ‘학살’이라는 센 표현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축이라는 것이다.



2007년 두 번째 소설집 『분홍리본의 시절』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평론가 김영찬이 해설에서 ‘병리학적 인물열전’이라고 표현했을까.



사설이 길었다. 그만큼 권씨의 올해 후보작은 예전과 다르다. 권씨도 이를 인정한다. 좀 아둔한 질문을 던졌다. “작품이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그는 “스타일을 모험적으로 바꾸다 보니 읽는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견적이 안 나온다”고 답했다. 권씨의 걱정은 최소한 예심에서는 기우였다. “비타협적 예술가 정신을 정공법으로 환기한 작품” “현실비판에 웃음 주는 요소까지 배치했다” “후보작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읽힌다” 등 우호적인 평가가 많았다.



소설은 자서전 등을 대신 써주는 대필사무실 ‘팔도기획’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통해 이 시대 소설의 값어치를 묻는다. 소설은 어떤 힘이 있나, 소설가는 어때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향해 내달린다. 어느 날 사무실로 풍요보다 풍상과 사이가 가까웠을 법한 20대 여자가 찾아온다. 일감을 맡기러 온 게 아니라 대필 일거리를 찾아 온 소설가 지망생이다. 뿌듯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자신은 소설을 쓴다고 밝히며 환하게 미소 짓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여자는 속물 다 된 대필 작가들에게는 이질적인 존재다.



결국 사고가 터진다. 닭발로 돈 번 요식업체 사장의 자서전 대필을 맡은 여자가 의뢰인이 원한 에피소드를 극구 빼면서다. 이제는 윤 작가로 통하는 여자의 변이 거의 예술이다. “그런 상투적인 일화는 우리가 참된 본질에 가까워질 때만 느낄 수 있는 영혼의 진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영혼의 진도오오옹?” 공동작업을 하던 정 선배, 나자빠진다. 결국 윤 작가는 퇴출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원고는 걸작으로 밝혀진다.



권씨는 “평소에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뒤집혀 폭발하면 뭐가 나오나 하는 게 늘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을 예전처럼 사람들을 막장으로 몰지는 않는단다. “일상의 자잘한 갈등이 보다 조용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양상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올해 권씨의 후보작은 그런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권여선=1965년 경북 안동 출생. 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 받으며 등단.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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