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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변주머니 제거 수술한 나영이 아빠 인터뷰

2일 오후 1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의 한 병실.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린 아이가 손으로 자신의 왼쪽 옆구리를 더듬었다. 아이는 수술을 마치고 막 마취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배변주머니 이제 없어. 우리 딸 너무 날씬하고 예쁘다.” 아빠의 말에 아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침상에 누운 아이는 나영이(10).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이다. 나영이는 이날 대변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제거하고 인공항문과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마지막 수술이다.

“배변주머니는 나영이에게 마지막 남은 그날의 상처였지요. 그 상처가 이제 지워졌네요.”

지난 2일 나영이 아버지(오른쪽)가 딸의 배변주머니 제거 수술을 맡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한석주 교수(왼쪽), 나영이의 주치의인 신의진 교수와 상담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두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영이는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김경빈 기자]
나영이가 잠드는 걸 보고 나왔다는 아버지(57)가 말했다. 2008년 12월, 성폭행범 조두순은 딸아이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사고 두 달여 후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조두순이 물어뜯어 난 왼쪽 입술과 볼의 상처 역시 1년여에 걸친 꾸준한 치료로 희미해졌다. 지난 1월엔 남아 있는 항문 조직을 복원하고, 잘라낸 대장을 대신하게끔 소장을 늘리는 수술도 받았다. 하지만 배변주머니는 사고 후 2년이 다 되도록 아이의 몸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배변주머니는 대변이 가득 차면 어른 주먹 2개 크기만큼 부푼다. 그래서 나영이는 펑퍼짐한 옷만 입었다. 색깔도 검은색 아니면 푸른색뿐이다. 옷 속에 숨긴 배변주머니가 비치진 않을까 아이는 늘 걱정했다. 하늘거리는 하얀 원피스를 사놓고 한 번도 입지 못했다. 한 번은 나영이가 밤 늦도록 TV 앞을 지켰다. “왜 안 자?”하고 물으니 “밤새 주머니가 가득 차 터지면 어떻게 해. 조금만 더 참았다가 잘게” 하고 대답했다. 아빠는 가슴이 무너졌다.

세상에 알려진 나영이의 첫 그림에도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두순이 벌레가 있는 감옥에 갇혀 망치로 머리를 맞고 눈물을 흘리는 그림 한쪽에, 나영이는 ‘(나영이를) 때린 죄·배변주머니를 차게 한 죄’라고 적었다. 아버지는 “사고 뒤 애늙은이가 돼버린 딸아이는 엄마·아빠 마음 아플 소리는 안 한다. 그림을 보고야 배변주머니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 깨달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래서 나영이는 이번 수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달 31일,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집을 나선 나영이는 김수철 사건의 피해 아동을 찾아갔다. “수술하면 언제 볼지 모르니 들렀다 가자”고 아빠를 졸랐던 것이다. 나영이는 지난달 초 김수철 피해 아동을 처음 만났다. 배변주머니를 찬 두 아이는 금세 언니·동생 사이가 됐다. ‘동생’을 두 번째 만난 이날 나영이는 “언니 수술받으러 가. 배변주머니 떼는 거야. 너도 의사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언니처럼 될 수 있어”하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2일 오전 10시, 수술실로 들어가는 딸아이에게 아빠가 어렵게 고백했다. “나영아, 수술해도 완전히 정상이 되진 못한대.” 나영이의 대장기능은 70%까지 회복될 수 있다. 남들보다 서너 배 이상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한다. 지사제를 평생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아빠는 딸아이가 이 사실을 알고 실망할까 걱정이 앞섰다. “아빠, 괜찮아. 평생 주머니를 차는 것보다 낫잖아.” 열 살 난 아이는 아빠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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