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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광화문 현판은 600년 고도 의 문패

궁핍한 삶. 100년 전 외국인의 시선에 잡힌 서울의 풍경이 그랬다. 아직 서양 문명이 전파되지 않은 서울의 모습을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영국 작가, 지리학자)은 그렇게 표현했다. “진흙벽의 토막이 늘어선 누추한 골목길, 두껍게 얹힌 갈색 지붕, 오물과 녹색 때가 낀 냄새 나는 도랑….” 이런 묘사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할 ‘힘 없는 조선’을 대상으로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할 터이지만, 다음과 같은 표현은 새겨둘 만하다.

“서울은 곧 한국이다.… 그러나 서울에는 어떠한 예술 작품도 없으며, 고대 유물도 거의 없고, 공중의 광장도, 아주 드물게 벌어지는 ‘거둥’(임금이 제사를 드리러 가는 행렬)을 제외하면 어떠한 행사도, 극장도 없다. 서울에는 다른 도시들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적인 매력이 결핍되어 있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100년 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진 요즘은 어떤가. 비숍 시절에 없던 ‘공중의 광장’이 생긴 일 자체는 다행스럽다. 문제는 내용이다. 광화문 광장을 걸으며 아쉬운 것은 ‘문화적 매력’과 관련된다. 관광이란 그 나라와 도시의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때, 그 빛이 바로 문화의 매력임을 비숍은 갈파했다. 오늘 서울의 빛은 무엇인가. 600년 고도(古都)가 첨단 산업 문화와 어우러진 점에서 찾아야 할 터인데, 우리의 광장은 그 점을 잘 구현하지 못한 것 같다.

오는 15일 새로 복원해 공개하는 광화문도 마찬가지다. 광화문 따로, 광장 따로 하는 식으로 개별화시켜 보지 말고, 서울의 빛이란 총체적 관점에서 연계해 봤으면 한다. 경복궁-광화문-광화문 광장-청계천-서울 광장-남대문과 서울 성곽을 일련의 역사문화 벨트로 보자는 것이다. 거기에다 서울 북촌의 한옥 마을, 창덕궁-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생태문화 벨트까지 어우러지면 600년 고도의 빛을 매력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건축가 김석철의 오랜 생각이다. 2001년 그와 여러 차례 이런 얘기를 나누었고 당시 중앙일보에 ‘600년 고도 살리기’라는 시리즈를 낸 바 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청계천과 서울광장 아이디어를 구현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선보였다. 문제는 각각의 광장이 총체적 서울의 빛으로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광화문 현판을 한자로 할지 한글로 할지의 논란도 종합적 관점에서 생각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한자가 좋을 듯하다. 광화문 현판은 단지 경복궁 정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의 얼굴이기도 하고 나아가 새롭게 복원될 600년 고도의 상징적 문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글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전통 문화는 오늘의 일상적 한글로 완벽하게 번역되어야 한다. 이번만은 예외로 하자. 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이 눈부신 문화유산 관광자원으로 거듭난다면, 세종대왕께서도 어리석은 후손을 용서해주시지 않을까.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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