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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이재오 '가까이하기엔 멀고' 박근혜-이상득 '멀리하기엔 필요하고'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재오가 돌아왔다’.
아니, 충분치 않다. ‘이재오가 돌아왔다’ 이 한 문장으로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여의도를 반분할 수 있겠다.

7·28 서울 은평을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가 당선되기 전 여의도의 실력자는 두 명이었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다.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6월 정치 불개입 선언을 해야 했던 건 오히려 그의 정치적 위상을 드러내는 반어법적 사건이었다. 박 전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곤 했다. 여의도식 과장법이 섞인 표현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이 법률안 비토권을 갖듯 박 전 대표 역시 독점적인 입법 비토권을 가졌다는 것이다. 미디어법안이나 세종시 수정 관련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보여지듯 그의 말 한마디에 법안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가 반대하는 어떤 법안도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이젠 여의도 실력자에 한 명이 추가됐다. 이재오 의원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이재오’가 아니다. 처절하게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제 힘으로 돌아왔다. 한때 ‘국민의 밉상’(홍사덕·박종근)에서 ‘인간 승리’의 주역으로 변신했다. ‘이재오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 세 명의 동역학이 향후 여권의 권력지도는 물론 2012년 미래권력의 향배도 가를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떤 포석을 두고 어떤 행장(行藏)을 보일 것인가. 이 과정에서 어떤 연대 또는 대립·반목을 보여줄 것인가. 이들 세 명의 지금껏 관계를 통해 향후 관계를 전망해 본다.

1 박근혜-이재오
이재오 의원은 둘의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점이 더 많다”고 말한 일이 있다. 실은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말했어야 옳을지 모른다.

1979년 재야운동가였던 이재오 의원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다. “나는 (구치소) 창틀 사이로 보이는 하늘 한 조각을 보고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저주했다. 나는 나를 짐승으로 만든 고문자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인간성을 야수로 만든 분단 40년, 그 분단의 냉전논리를 정권유지의 도구로 이용한 군사독재정권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 자주 등장하는 대목이다.

80년대 박 전 대표는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맞서 싸웠다. 그는 일기에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나 개인의 모든 꿈이 없어져 버린 상태다. 자나깨나 꿈과 희망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아 역사 속에 바른 평가를 받게 하는 것”(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라고 적었다.

두 사람은 모두 15대 때 국회에 들어왔다. 이 의원은 96년 총선 때, 박 전 대표는 98년 보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이 의원은 곧 김문수 경기지사와 홍준표 최고위원과 함께 야당 투사가 됐다. 박 전 대표는 높은 대중적 인기도를 발판으로 당 부총재에 이어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고 2004년 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거셀 땐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를 치고 “개헌 저지선(100석)만 달라”고 읍소, 121석 야당으로 회생시켰다.

이런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충돌한 건 2004년 중순이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과거사 공세가 거세지던 무렵 이 의원은 “‘5, 6공 잔당’이란 비판만 책임지면 됐지만 이젠 ‘유신잔당’이란 비판도 넘어서야 할 판”이라며 박근혜 당시 대표를 비판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곧이은 의원연찬회에서 30분간 격정적인 반격에 나섰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역사에 죄가 많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핵심에 있었고 대통령의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총선 때)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 안 됐다. 도와 준다고 했다고 해도 받아들이면 안 됐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치사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이 의원도 지원을 요청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곧장 “당 대표로서의 행위를 ‘시혜 행위’로 간주하고 지원연설 하나로 굴종을 요구하는,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위 앞에서 어떠한 미련이라도 가지면 안 된다”고 맞섰다.

2006년엔 두 사람의 관계가 잠시 개선되는가 싶었다. 이 의원은 원내대표였고, 대표였던 박 전 대표에게 잘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전당대회를 거치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 의원이 연설하는 사이 빨간 옷을 입은 박 전 대표가 이동한 걸 두고 박 전 대표 측은 “투표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 의원 측은 “이 후보의 연설을 훼방 놓고 강재섭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패배에 대해 “6개월 동안 (박 전 대표의) 의심을 풀게 하지 못했으니 결국 내 불찰”이라면서도 못내 서운해했다.

이후엔 널리 알려진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과 대선 과정이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에선 이방인이었던 이 대통령을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에도 박근혜 체제였던 당을 향해 “당내에 이명박 후보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대선을 앞둔 2007년 11월 이 의원은 “토의종군(土衣從軍·백의종군보다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 하겠다”며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당 화합이 명분이었다. 이듬해 총선 무렵 친박계 다수가 공천 탈락했고 친박계는 이 의원을 ‘공천 학살의 주역’으로 지목했다. 그는 결국 ‘박근혜 지지 바람’ 속에 낙선했고 곧이어 여섯 번째 감옥으로 여긴 미국행을 택해야 했다.

2 이상득-박근혜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충돌한 건 한 번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박 전 대표가 이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거였다. 지난해 4월 경주 재선거 때 친박계인 무소속 정수성 후보가 “이상득 의원이 나의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는 주장을 폈 다. 박 전 대표는 이 의원을 향해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했다. 친박계에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분이 그럴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다. 이 의원은 사실과 다르다는 정도의 해명만 했을 뿐 말을 아꼈다.

그 밖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호혜적인 대목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상징인 ‘천막당사’를 설치한 건 이상득 의원이었다.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그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장파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박 전 대표를 당 대표로 하자는 당시의 움직임에도 동조했다. 주변에선 “이명박 시장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렸으나 이 의원은 “당이 사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5월 원내대표 경선 때 급작스럽게 레이스에 뛰어든 황우여 원내대표-최경환 정책위의장 후보를 두고 박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의 연합이란 주장이 나온 일도 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대표적인 친박계면서도 이 의원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3 이상득-이재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함께 경쟁했고 협력했다. 하지만 18대 총선 무렵부턴 미묘해졌다. 이재오 의원이 공천 주역으로 알려져 곤경에 처하고, 이상득 의원 또한 ‘형님 공천’ ‘형님 인사’로 구설에 올랐을 때였다.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을 포함, 55인이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공개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재오 의원도 당일 이 대통령과 독대해 자신과 이상득 의원의 동반 불출마 의견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이재오 의원은 그러나 다음 날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재오 의원이 낙선한 이후 이상득 의원 등 원로그룹이 독주했다.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은 “대선에서 승리한 우리들은 소외되고 엉뚱한 사람들이 출세하고 있다”고 토로하곤 했다. 양 진영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을 잘 아는 인사들은 “두 사람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전한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이재오 의원이 이상득 의원을 직접 비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4 이상득-박근혜-이재오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의원은 “나로 인해 당에 갈등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와 가까운 진수희 의원도 “이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와 싸운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운 거다. 그 과정에서 지난 일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며 “갈등의 중심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오계의 한 인사도 “이 의원은 이젠 악역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앞으로는 박 전 대표가 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진영은 우려하고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들 한다. 과거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2012년 총선·대선 국면에서 이 의원이 직접 대선 주자로 뛰든 누군가를 지지하든 박 전 대표와 맞서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얘기다.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도 이와 유사하다. 여러모로 이 의원이 꿈꾸는 나라와 박 전 대표가 꿈꾸는 나라가 다를 게 뻔해서다. 다만 두 사람이 직접 충돌하는 모양새는 아닐 듯하다. ‘(충돌) 안 하겠다’는 이 의원의 의지가 강하고, 이 의원을 대신할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상득 의원은 어떤 선택을 할까. 원로그룹과 가까운 사람들은 “박 전 대표는 소중한 차기 주자”라고들 말한다. 이들은 이재오계나 소장파와 달리 박 전 대표의 집권 가능성을 높게 보는 편이기도 하다. 당내에선 그래서 주류 중 박 전 대표와 손을 잡는 그룹이 있다면 원로그룹일 것이란 견해가 있다. 정작 이 의원이 그럴지는 미지수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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