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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어음 결제해도 대기업은 막대한 이익 … 그건 욕심 넘어선 탐욕”

캐피털(할부금융)사 고금리 대출, 하청업체 납품단가 인하, 투자·고용 부진-.

최근 청와대·정부가 대기업을 향해 날을 세워온 부분이다. 여기에 윤증현(사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하나를 보탰다. 어음 결제 관행이 그것이다. 윤 장관은 지난달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제주 하계포럼을 찾은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수십조원의 현금이 있으면서 납품사에는 현금 대신 어음으로 결제하지 않았는지, 그것도 일주일짜리 (어음을) 안 주고 한 달짜리를 주지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 보라”고 말했다. 기자들에게 “현금을 쌓아두고 어음으로 결제하는 것은 욕심을 넘어선 탐욕”이란 말까지 했다.

윤 장관은 이날 대·중소기업 관계의 잘못된 관행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납품단가 인하 압박 ▶구두계약 후 백지화 ▶현금 대신 어음 지급 ▶기술·인력 빼가기다. 핵심은 어음 결제였다. 윤 장관은 “수많은 납품 중소기업에 일주일만 현금 안 주고 어음으로 결제해도 대기업에 막대한 이익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일본 도요타 사태가 터진 원인은 하도급 업체를 쥐어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1차 협력업체는 대기업에 당한 그대로 2, 3차 협력업체에 한다”는 얘기도 했다. 한마디로 대기업이 본보기를 보이라는 얘기다.

◆대기업 “현금 주는데…”=대기업들은 당혹해하면서도 윤 장관의 발언 내용을 인정하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05년 하반기부터 중소 협력업체에 모두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다”며 “대기업 계열사에는 현금·어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결제하지만, 중소기업에 대해선 현금 지급 방침을 바꾼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도 “대기업은 몰라도 중견·중소기업에는 현금으로 준다”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2005년 6월부터 국내 협력업체에 100% 현금 지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지난해 초 삼성, 현대·기아차, SK 등 10대 그룹의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현금성 결제비율을 조사했더니 97.7%가 나왔다. 30대 그룹으로 넓혀도 84% 수준이었다. 조사 결과가 맞다면 적어도 국내 대표기업이 어음을 남발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전경련 관계자는 “조만간 다시 조사할 계획이지만, 대기업 어음을 문제 삼는 것은 좀 지난 얘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도 “건설업은 일부 어음 결제가 있지만, 제조업은 대기업이 1차 협력업체에 대부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간 거래가 더 문제=5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국내 최상위권 기업은 대부분 계열사에는 어음을 줘도, 중소·중견기업에는 현금을 준다”며 “문제는 1차 협력업체가 대기업에서 현금을 받아 2, 3차 협력업체에 어음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기업 2차 협력업체인 화장품회사 A사 관계자는 “그간 현금·어음을 절반씩 주던 1차 협력업체가 최근 갑자기 어음 비율을 80%로 높여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어음 문제로 대기업을 싸잡아 비난하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익명을 원한 재정부 관계자는 “몇몇 대기업이 아직 어음 결제를 하고 있다는 걸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도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일부 대기업)가 시키는 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금 수십조원이 있는 기업’과 ‘어음 결제’를 연결 지으면 대기업 전반의 문제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한 주요 그룹 고위 임원은 “문제가 있다면 모두 싸잡아 비판하지 말고, 차라리 정부가 어느 기업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분명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어음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정부가 제도를 바꾸면 될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정부는 제도 정비에 들어간 상태다. 윤 장관은 “각 부처별로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의 개선 방안을 탐구하고 있다”며 “이르면 8월 말이나 9월 초 1차 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액 이하는 꼭 현금으로 결제토록 하거나, 몇몇 예외를 둔 뒤 아예 현금 결제를 완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허귀식·김선하 기자

◆어음=일정 기일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유가증권. 조선시대 상인들도 이용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기업들은 납품받은 물품이나 용역 값을 지급할 때 현금이 아닌 1~6개월 만기의 어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현금 대신 어음을 받은 하청 업체는 만기일까지 기다리거나, 금융시장에서 어음을 할인 받아 현금화한다. 어음제도는 중소기업이 판매대금을 회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원청기업이 도산하면 연쇄 부도가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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