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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상태 잘 알려면 진맥보다 배 만져야”

29일 오전 경기도 부천의 한 한의원.

신경성 질환을 지닌 환자에 대해 복진을 하고 있는 노영범 한의사. [중앙포토]
6년 전부터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온 오모(28)씨가 들어섰다. 오씨가 침대에 눕자 이 한의원 노영범(52) 원장이 진찰을 시작했다. 그런데 흔히 한의원에서 손목의 맥을 짚는 것과는 달리 배를 이리저리 만져댔다. 노 원장은 “배꼽 아래위로 아직 딱딱한 덩어리가 있어 이것을 풀어 줘야 한다”며 용골(포유류 뼈 화석)과 모려감(굴 껍데기) 등의 약재를 처방했다. 오씨는 6개월 전 처음 이곳을 찾았다. 환청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중 주변 사람들로부터 노 원장의 치료법이 효험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씨는 “처음엔 배를 만지는 것이 어색했었다”며 “지금은 환청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노 원장은 국내에선 낯선 ‘복치의학’의 선구자다. 복치의학은 중국 고대의 전설적 명의인 편작과 화타에 뿌리를 둔 치료 중심의 동양의학으로 배를 만져 진단하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발원지인 중국에서조차 지금은 잊혀지고 있다. 노 원장이 복치의학을 처음 접한 것은 12년 전. 그는 고교생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아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한의대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한의학을 배울수록 다루기 힘든 질병이 너무 많아 고민이 쌓여 갔다.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중 복치의학의 고전인 『상한론』을 접하고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노 원장은 “동양의학의 태동기엔 복진을 주로 했지만 양반과 아녀자의 배를 직접 만지기 힘들게 되면서 진맥에 의존하게 돼 복치의학이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체에 쌓인 독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부위가 배”라고 강조했다.

복치의학을 되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복치의학이 ‘동의보감’ ‘사상체질’ ‘보약’ 등 예방 중심의 기존 한의학과는 완전히 다른 치료 중심의 한의학이었기 때문이다. 한의대 교수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고 “의학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한때 ‘한의학계의 이단아’로 불리기도 했다. 환자들로부터도 “왜 진맥을 하지 않느냐?” “보약은 없나?”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면 설사가 나고 구토감을 느낀다” 등의 항의가 이어졌다.

그는 한의사와 환자들을 일일이 설득하며 난관을 극복해 갔다. 4년 전에는 복치의학 보급을 위해 대한한의복치의학회를 설립했다. 또 복치의학 아카데미를 열어 젊은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1년 가까이 릴레이 강의를 했다. 그 결과 현재 복치의학회 회원은 3700명으로 불어났다. 숫자로만 보면 한의학 관련 학술단체 중 국내 최대 규모다. 경희대·부산대 한의대에선 전공 선택과목으로 지정됐다.

노 원장은 “복치의학에선 증상의 잠복·완화 외에 질병의 재발까지 차단하는 것을 치료로 본다”며 “이 기준으로도 치료율이 70∼80%에 달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울증·공황장애·강박증 등의 치료율은 80%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복치의학의 성과를 SCI(과학논문인용색인)급 논문에 싣는 것이 1차 목표”라며 “난치병재활치료센터를 설립해 활용도를 더 높이고 싶다”고 밝혔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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