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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더독 정치’의 명암

6·2 지방선거 때 나타났던 ‘언더독(underdog) 효과’가 7·28 재·보선에서도 되풀이됐다. 선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러 조건상 열세이고 불리했던 후보들이 대거 약진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판세가 유리한 후보에게 더 많은 표가 몰리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와 반대로, 외견상 수세에 몰렸던 후보들이 예상을 뒤엎고 더 많은 유권자의 최종 표심을 잡은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 출마한 후보와 정당들은 지방선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이런 결과를 예견한 것 같다. 공히 ‘언더독 효과’를 노린 선거운동에 매달렸다. 자기가 앞서고 있다고 억지로 부풀리던 과거 행태와는 달리, 서로 약자인 척하며 엄살 작전을 썼다. 한나라당은 한 곳도 건지지 못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니 두 곳 정도만이라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민주당도 낙승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각 후보는 누가 더 불쌍해 보이는지 내기하듯 납작 엎드렸다.

결과는 유권자의 인식상 더 약자이고 수세에 놓인 후보들 쪽으로 기울었다. 은평의 이재오 당선자는 당의 지원도 거부하고 ‘나홀로’ 선거운동을 하며 언더독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충주의 윤진식 당선자도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 세종시 수정안 부결 등의 정치 상황 덕에 궁지에 몰린 약자로 비쳐졌다. 이재오·윤진식의 경우, 선거 2~3일 전의 야당 후보 단일화로 약자 이미지를 더 굳혔을지 모른다. 인천 계양의 이상권 당선자도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연패했던 삼수(三修) 도전자답게 약자로 인식됐다. 천안의 김호연 당선자도 소속 당의 기반이 약한 지역에 두 번째 도전하는 약자였다. 민주당의 박우순·최종원 두 당선자가 강원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광재 도지사의 직무정지 덕에 탄압받는 약자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각 후보의 언더독 전략에 더해,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이후 크게 위축되었다는 정치현실도 오히려 한나라당의 승리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후보는 약자로 보이려 노력하고 유권자는 약자 편을 드는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세상사가 그렇듯이 양면성을 지닐 것이다. 우선 언더독 효과가 생기는 원인에서 그 양면성을 찾아보자. 한편으로, 유권자가 권력 집중과 국정 독주에 견제를 가하고 다양성을 기하고자 하는 심리를 갖기 때문에 약자에게 표를 주는 것이라면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건전한 민주주의에 희소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유권자가 정부나 권력을 워낙 불신해 여야, 진보·보수, 중앙·지방을 싸잡아 승자 측에 힘이 실리는 것을 싫어해서 언더독 효과가 나타난다면 국정과 관련해 우려스럽다. 선거 후 국정 과정에서 어떠한 정책이나 결정도 국민적 지지에 입각한 추진력을 받기 힘들어 총체적 거버넌스 위기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오늘의 한국정치를 볼 때 이 가능성이 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더독 효과가 정치인들의 행태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서도 명암이 있다. 한편으로, 정치인들이 잘났다고 나대기보다 낮고 겸손한 자세를 견지한다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 과정상 민심이 존중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언더독 이미지에만 연연한다면, 정국 운영의 전면에 나서 적극적으로 정책의제를 발굴하고, 국민에게 알리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책 성과를 이끌어내는 역할이 방기될 수 있다. 이런 역할을 하면 자칫 강자라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뒤로 돌며 선거 눈치를 보는 언더독 정치에 빠지기 쉽다.

유권자가 약자에게 동정을 보이는 것은 이제 현실이다. 이왕이면 무조건의 불신감보다는 건전한 비판의식과 균형감에서 그런 현상이 나오는 것이길 희망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인들에게 끼치는 영향과 관련해선 보다 진지하게 암(暗)을 피하고 명(明)을 살리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약자의 자세로 국민을 섬기되 동시에 정치과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현안을 푸는 일이 언더독 효과를 걱정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딜레마로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 특히 다음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까지 정치인들 앞에 놓인 난제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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