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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비오는 날에

비오는 날에 -나희덕 (1966~ )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이 비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가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사방이 환히 열려 있는 이 여름, 창틀 너머로 보이는 골목길도 어디엔가로 열심히 가고 있구나. 우산 하나가 귀중하다. 당신을 찌르지 않는 우산 하나가. 오늘 아침 나희덕 시인은 이런 우산 하나를 주는구나.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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