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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법관 되자 남성 대법관 바뀌어 … ‘딸들의 반란’ 대표적 예”

사상 첫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54) 대법관이 다음 달 24일 퇴임을 앞두고 본지와 마주 앉았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29년8개월간 판사 생활의 판결에 대한 소회, 그리고 ‘인간 김영란’의 고뇌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법관 김영란

김영란 대법관은 경기여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 20회(1978년)에 합격했다. 81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법 부장판사등을 거쳐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4년 48세의 나이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대법관 후보군보다 7~8기 밑으로 내려간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 먼저 판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듣고 싶다.

“판사는 질문에 대해 늘 답을, 결론을 찾아야 하는 직업이다. 남을 심판하는 일이 나한테 맞나, 안 맞다, 괴롭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 대법관 사회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각오는.

“저를 임명한 자체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소수자의 시각을 반영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 여성 대법관의 진입이 대법원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나.

“‘딸들의 반란’이라 불리는 2005년 ‘여성 종중원 인정’ 판결을 예로 들고 싶다. 이미 오래전에 공개 변론을 마쳤지만 다수의견을 모으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들어오고 나서 쉽게 다수의견이 나왔다. 남성 대법관들께서 동료로 여성이 들어오니까 ‘이제 우리 사회도 변해야겠다’, 이런 걸 느끼시는 것 같았다. 내가 특별히 의견을 낸 것도 아닌데 존재 자체가 사회 변화를 표상한 결과가 됐다.”

- 그간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졌다는 평가가 있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 정도의 다양성은 유지해 줘야 한다. 대법원에 부(部)가 세 개 있다. 여성도 각 부에 한 명씩, 세 명은 있어야 한다. 내가 빠지면 대법관 14명 가운데 여성 대법관이 전수안 대법관 한 명밖에 없다. 미국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대법관 9명 중 3명이 여성이다.”

- 앞으로 사법개혁의 방향은.

“1심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법원은 법령 해석을 통일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판사들도 사건 당사자들이 재판 내용이 쉽구나, 친절하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노력했으면 한다.”

- 후배 여성 판사들에 대한 당부가 있다면.

“여성 판사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그러면 사법부 전체 수준이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여자 후배들에게 그런 의심을 받아선 안 되지 않겠느냐, 각별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남성 판사들에겐 여성 판사들에게 자극을 주고, 그래서 숨은 능력을 개발해줘야 우리 사법부가 발전하는 것이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6년간의 판결

- 대법관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김영란 대법관이 “오로지 법에 따라 판단했는데 정치적 오해를 받게 될 때, 그럴 때가 정말 속상했다”며 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문을 펼치고 있다.
“속상하고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 판결문들을 꺼내놓으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장인을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 취지로,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는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같은 공직선거법 위반이지만 내용도 다르고 적용된 법조문도 달랐다. 그런데 인터넷에선 이 두 판결을 대비시켜 내가 마치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한 것처럼…. 법률가는 이런 의심을 받을 때 서운하다.”

- 상당수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박시환·전수안 대법관 등과 함께 소수의견을 냈다. 진보 성향의 ‘독수리 5형제’로 불리기도 했는데.

“지구를 지키는 건 다수의견 아니냐.(웃음)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성향이 내게 없기도 하지만, 철저히 거기서 자유로우려고 애썼다.”

- 2008년 ‘제사 주재의 우선권은 장남에게 있다’는 다수의견에 맞서 소수의견을 냈는데.

“기본적으로 남녀 평등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딸만 낳아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아들이 우선이다, 이렇게 판결하면 되겠느냐고 했다.”

인간 김영란

-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조배숙(민주당) 의원과 경기여고·서울대 법대 동기다. 세 분이 어떻게 다른가.

“학교 다닐 땐 두 사람이 더 착실했다. 나는 오히려 신문반에 들어 책도 보고 시험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웃음)”

- 사법연수원 때부터 줄곧 ‘나홀로 여성’으로 살아왔는데.

“여성이 아주 극소수면 존중을 받는다. 외로울 수는 있어도 개인적인 불편함은 못 느낀다. 다만 남성과의 교집합으로서만 행동하니까 더 내성적으로 변했고, 자기 검열이 강해졌다. 다수 집단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간 것이다.”

- 두 딸을 키우고 시부모도 모시고 살았는데.

“아이들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해줬다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시부모 편찮으시고 아이들 어리고, 그런 시절은 약간 터널 같다.”

- 김 대법관 임명 후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법률사무소 대표를 그만두기도 했다.

“과감하게 그렇게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외조라는 게 뭐, 자기 일 알아서 잘 하고, 밥도 자기가 알아서 차려 먹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노력한다.”

- 두 딸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낸 이유는.

“유치원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유보된 삶을 살지 않나. 우리 애들부터 인생에서 중요한 시절을 온전히 즐기게 하자, 안정된 삶보다 모험의 과정을 즐기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우리 애들은 판사 시키고 싶지 않았다.” ※큰딸(27)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작은딸(23)은 대학 재학 중.

- 퇴임 후 계획은.

“사회로부터, 법원으로부터 받은 게 많다. 남은 인생을 또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 하는 것보다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지난 6년간 대법원에 있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중요 정책을 놓고 갈등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됐다. 사법부가 이런 갈등들과 어떤 식으로 맞물리면서 어떤 식으로 푸는 게 옳은 것인가, 그런 의문들을 연구해 보고 싶다.”

- 그렇다면 연구 주제는.

“정의일 수도 있고, 정치일 수도 있다.”

글=권석천·홍혜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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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김영란
(金英蘭)
[現] 대법원 대법관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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