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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염천과 짧은 이불

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아갔다. 장맛비에 계곡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징검돌을 띄엄띄엄 놓고 건너가 계곡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한결 두꺼워진 나무그늘이며, 꼭 쥐어짜면 푸른 물이 후드득 떨어질 것 같은 풀숲이며, 계곡의 바람이 좋았다. 여름산 속에 들어갔더니 장석남 시인이 쓴 ‘여름산’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둥글게 휜 풀잎의 둥긂 / 둥긂 위에 앉은 잠자리의 투명 / 투명 위에 않은 여름산”



계곡물에 맨발을 담그고 있었더니 금세 뼈가 시려왔다. 차가움을 얻으며 그 물로 마음을 한 번 씻었다. 한가함도 스스로 얻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조지훈 시인도 게을러야 한다고 누누이 일렀으되 번잡함을 꺼려하니 마음이 한가로워졌다. 속된 것의 수량이 적어졌다.



그러나 다시 오늘 세상은 염천(炎天)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이고 있다. 복장을 긁는다. 어떤 이는 부채를 들고 살고, 어떤 이는 나무 그늘에 의탁한다. 또 어떤 이는 여름 휴가지에 마음이 먼저 당도해 있다.



1937년 국내에 소개된 이상의 산문 ‘권태’를 보면 이상도 이런 염천은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서 -차라리-어둬버리기나 햇스면조켓는데-벽촌(僻村)의 여름-날은 지리해서죽겟슬만치 길다.” “해는 백도(百度)가까운벼츨 집웅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암닭꼬랑지에도 나려쪼인다. 아침이나저녁이나 뜨거워서 견델수가업는 염서계속(炎暑繼續)이다.” “이윽고 밤이오면 또 거대(巨大)한구렁이처럼 빗을일허버리고 소리도업시 잔다.”



여름 숲의 푸른 색채를 보고도 이상은 ‘단조무미(單調無味)한 채색’이라고 했고, “어쩔작정으로 저러케 퍼러냐. 하로왼종일 저 푸른 빗은 아모짓도하지안는다오즉 그 푸른것에 백치(白痴)와가티 만족하면서 푸른채로 잇다.” 했는데, 요 며칠 나도 그 푸른 색채의 의욕과 생동을 보고 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푸르고 성장하는 큰 자연에 비하면 아주 작은 자연에 불과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 염천의 여름을 나야 하는가를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름 나기의 비법은 일과 생각을 좀 줄이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중국의 시인 백거이는 ‘하일(夏日)’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는다. “밤이 오니 동쪽 창에서 더위 물러가고 / 북쪽 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 종일토록 앉았다가 다시 누워서 / 방 안을 떠나지 않았다. /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얽매임이 없어 / 나 또한 문을 나와 바람과 친구 되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손에 일을 줄이고, 상대편에게 나를 맞추며, 마음에 분별이나 과도한 욕심을 내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을 백거이는 노래했다.



이러할진대 이 여름에는 우리가 사는 일이 마치 짧은 이불을 덮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도 싶은 것이다. 가슴께까지 끌어 당겨 덮으면 두 발을 다 덮을 수 없고, 두 발을 덮고 나면 가슴을 덮을 수 없는 짧은 이불. 세상에서 우리가 얻는 것이 짧은 이불을 얻는 것과 같으니 상하(上下)나 선후(先後)가 다 좋은 것을 한꺼번에 얻기는 참으로 어렵고 드문 것임을 인정한다면 이 여름에도 바람 한 자락은 불어오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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