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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전쟁 우려한 클린턴의 ‘립서비스’

“나든 누구든 이 세상에서 가장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이다.”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은 미군의 최고 사령탑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이 남기고 간 말이다. 미국의 본심을 드러낸 말이었다. 지난 3월 26일 밤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마자 미국의 뇌리를 스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북한에 한 방 세게 당했다”는 자괴감과 함께 “격노한 한국이 군사 보복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피해는 남북한이 가장 많이 본다. 하지만 미국이 받을 고통도 엄청나다. 90일 만에 월남전 전사자 수와 같은 미군 5만2000명이 숨지고, 10대 교역국에 드는 한국에 투자한 돈도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종식시켜야 할 부담을 안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가 ‘제3의 전쟁’에 말려들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내 정치 기반이 붕괴 위험에 놓이게 된다. 반면 전쟁에서 미국이 얻을 것은 ‘핵보유국’이란 점만 빼면 전략적 가치가 별로 없는 북한 김정일 체제의 붕괴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특히 중국이 북한 지원을 구실로 전쟁에 개입하면 미국으로선 최악의 악몽(惡夢)이 현실로 될 수 있다.



한데 동맹국인 한국이 분(憤)을 참지 못하고 군사보복에 나서면, 미국은 싫어도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된다. 국제정치학에서 동맹 간 갈등의 전형으로 꼽는 ‘연루(entanglement)’다. 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은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마자 한국에 “군사행동만은 자제해 달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대신 가장 강력한 톤으로 북한을 비난하고 한·미 동맹의 수준을 격상하는 것으로 한국의 분을 달랬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판문점에 보내 북한군 코앞에서 위력 시위를 하게 한 건 한국 달래기 퍼포먼스의 절정으로 볼 수 있다. 다년간 워싱턴에서 근무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은 ‘립 서비스’ 하나로 한국의 허리띠를 확 붙잡아 맸다”고 평했다.



북한이 124군 특수부대를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시켰던 1968년 1·21 사태 당시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은 똑같은 특수부대를 만들어 평양에 침투시키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박 대통령은 격렬히 반발하며 작전을 고집했다. 놀란 미국은 당시로선 거금인 1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긴급 승인했다. 이에 작전을 포기한 한국은 숙원이던 M16 소총과 팬텀 전투기를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



북한의 기습에 한국이 당하고, 미국은 전쟁 회피에 열심인 상황은 이번에도 재연(再演)됐다. 한국은 그때와 달리 미국의 요구를 일찌감치 받아들여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포기했다. 대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얻은 게 안보리 의장성명과 ‘2+2’ 회의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46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은 한국으로선 좀 더 얻어내야 한다. 한국이 대북 관계에서 더 많은 공간, 더 독자적인 접근권을 미국으로부터 보장받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동맹은 신의(信義)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냉철하게 국익을 추구하며 ‘주고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계일 때 진정 튼튼해진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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