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브라보 my LIFE] 천안 성거 ‘이원문화원’ 장혜원 대표

천안 성거산 밑에 있는 천흥저수지. 저수지 전체가 눈 앞에 펼쳐지는 곳에 이원문화원이 있다. 20일 오후 5시 아시아 각국에서 온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속속 문화원에 도착했다.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아시아 피아노 아카데미·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남편 고향에 ‘예술 요람’ 만드는 피아노계 대모

학생들 도착과 함께 장혜원(71)대표의 손길이 바빠진다. 음식 챙기랴, 숙소 상태 점검하랴, 초빙 교수들 도착 여부 살피랴 눈코 뜰 새 없다. 장 대표는 국내에서 손 꼽히는 여류 피아니스트다. 이화여대 음대학장을 거쳐 한국피아노학회장 등을 지냈다. 제1회 한국음악대상 본상(1999년), 3·1문화상(예술부문, 2006년) 등을 수상했고 최근 독일 십자공로훈장(올해 5월)을 받았다.



이화여대 음대학장·피아노학회장 등을 지낸 이원문화원 장혜원 대표. 제자·후배들 수십명을 천안에 초청, 그랜드피아노 콘서트를 열어 주민들에게 피아노 연주의 진면목을 보여주려 한다. [조영회 기자]
“일본·홍콩·말레이지아 등 아시아 각국의 피아노 전공 학생들이 모여 피아노 대가들 강의를 듣고, 또 서로의 연주를 들어보고, 대화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키울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천안 성거읍 천흥리에 있는 이원문화원 전경.
이원문화원은 장 대표와 남편 이상복 전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여 년에 걸쳐 직접 가꿔온 문화예술의 요람이다. 남편의 고향이 바로 이곳 천안 성거읍 천흥리다. 그가 속한 한산 이씨들은 이곳에서 300여 년간 살아왔다. 장 대표에 따르면 남편은 고교시절(경기고)인 6·25때 부모님을 잃고 고향 집까지 남에게 넘어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후 남편은 항상 고향에 터전을 마련하는 꿈을 갖고 살아왔다. 그런 장 대표부부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1980년대 말 수원 집이 고속도로 부지로 편입되면서 큰 돈을 보상비로 받았다. 그래서 고향집 인근의 과수원 땅 1만평을 샀다. 그리고 여유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 ‘투자’했다. 1994년 이원문화원 아트홀을 소박하게 지을 수 있었다. 그후 계속 건물을 세우고, 과수원을 가꿨다. 야외 공연장을 만들고 과수원 산 중턱에 산장식 연수동도 짓고 멋진 세미나홀도 만들었다. 그리고 곳곳에 피아노를 배치했다. 현재 이원문화원엔 피아노 33대가 숨어있다.



장 대표는 이원문화원이 지역사회의 자랑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주민대상으로 신경과 의사인 남편이 뇌졸중(중풍)예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동네 어른신들이 좋아하는 가야금 연주자도 초청해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그후 또 비슷한 주민 행사를 개최했으나 호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장 대표는 이원문화원이 남편 고향의 명소로 자리잡게 하고 싶다. 인근 주민들이 함께 즐기고, 전국의 문화예술인이 찾는 곳으로.



지난달엔 3선에 성공한 성무용 천안시장이 이곳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장 대표는 “이원문화원이 천안시를 위해 기여할 길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성 시장은 “반갑고 고마운 생각”이라며 동행한 관계 공무원에 천안시와 문화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제 장 대표가 원하던 일이 성사되려나 보다. 자신이 평생 쌓아온 음악 경력, 인맥으로 지역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 길을 찾지 못해 고민했다.



장 대표는 “한국 피아노계의 대모”(서울종합예술학교 특강 때 주최측 소개말) 같은 사람이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최초로 피아노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세계적 음반사 ‘낙소스’와 전속 계약을 맺어 헝가리 작곡가 훔멜(1778~1837)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10년 만에 완성했다. “섬세하고 세련된 색체를 띤 훔멜의 음악성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25년간 낙소스와 함께 연주활동과 단독 음반 11개를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장 대표는 고희를 넘긴 나이를 잊은듯 활달하다. 인터뷰 도중에도 수시로 휴대전화가 걸려온다. “예? 이탈리아 모노폴리 교수가 못 오신다구요?” 비행기 타기 직전 심장에 이상이 생겨 탑승하지 못했다는 전갈이었다. “큰일 날 뻔 했어요. 나하고 같은 연배인데 건강 관리를 잘 하셔야지.” 장 원장은 요즘도 피아노 앞에 앉으며 7~8시간씩 너끈히 연주 연습을 한다. “아직까진 팔·다리·무릎 아픈 데는 없어요. 발은 페달을 밟죠.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죠. 음악에 취하면 어깨·머리 등 온 몸이 나도 모르게 움직여요.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는 거죠.” 피아노 연주가 운동이 된다는 사실은 장 대표 통해 처음 들었다.



그는 천안시청 봉서홀에 그랜드피아노 대여섯대를 놓고 전국의 유명 피아니스트 수십명을 초청해 시민 대상 연주회를 열고 싶다. 그러나 현재 올해 대관 예약이 모두 찼다는 소식에 낙망했다. “뭐, 내년에 하면 되지요. 천안시민들에게 ‘흥겨운 피아노 쇼’를 보여 드리고 싶어요.” 문화원 이름은 남편의 성 ‘이’와 장 대표의 마지막 이름자 ‘원’을 따 지었다.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