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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한옥의 추억’ 뉴욕 아파트에 겹쳐 놓다

그의 한옥집은 기억 속에만 있지 않았다. 서울 성북동 산기슭, 나무 빗장이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니 나무와 풀이 그림처럼 배치된 마당에 곱게 한옥 두 채가 있었다. 설치미술가 서도호씨(48)의 유명한 집 시리즈의 모티프가 되어준 곳이다. 서씨는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가 목수들과 함께 집을 짓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동생과 함께 쓰던 별채에서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설치미술가 서도호(오른쪽)씨와 건축가인 동생 을호·김경은씨 부부. 이들 뒤의 서울 성북동 한옥은 아버지 서세옥(동양화가)씨와 어머니 정민자(아름지기 고문)씨가 1970년대 중반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실측해 그대로 본떠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최승식 기자]
서씨가 21일 대문을 열어주고 그곳에 서 있었다. 건축가인 동생 부부 서을호(46·서 아키텍츠)씨와 김경은씨(38·서 아키텍츠)와 함께였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특별했다. 8월 29일부터 열리는 제12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본 전시에 형제가 함께 출품한 ‘블루 프린트(청사진)’ 작업을 함께 한 협업자라는 점에서다. 비엔날레의 메인 행사인 이 전시는 세계적인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이 ‘건축’과 ‘공간’이라는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개별 국가관에서 열리는 행사와 구분된다. 이번 전시에는 올해 평생 공로상 수상자인 렘 쿨하스를 비롯,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 스위스 건축 듀오 헤어초크 앤 드 뮈롱 등 쟁쟁한 작가들이 참여한다. 국내에서는 서씨와 서 아키텍츠가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예술과 건축, 하나가 되다=서씨는 출품 요청을 받고 자연스럽게 건축가인 동생 부부를 선택했다. 을호씨는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이고, 제수 경은씨는 대학(웨슬리)·대학원(RISD)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우리 서브라더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집’이더군요. 그래서 집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하자, 그리고 관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자는 기본 원칙을 정하고 함께 작업을 해보기로 했어요.”

사실 세 사람이 함께 작업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에도 이들은 국내의 한 미술 컬렉터로부터 의뢰를 받아 서 아키텍츠가 공간 디자인을 맡고, 서씨의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하지만 이들은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한 작품을 위해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도호와 서아키텍츠가 올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출품한 ‘블루 프린트’의 예상 이미지. 관람객이 천장과 바닥에 있는 두 작품 사이에 서서 공간을 체험하도록 구성됐다. [서아키텍츠 제공]
◆집을 주제로 한 대화=이들은 함께 완성한 ‘블루 프린트’를 가리켜 “이것은 우리가 ‘집’을 주제로 나눈 대화(dialogue)”라고 정의했다. 서씨가 먼저 말을 건네고, 동생 부부가 이에 화답하는 형식이라는 점에서다.

작업 과정은 이렇다. 서씨가 먼저 ‘집’을 만들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미국 뉴욕의 아파트 전면(파사드)을 실제 크기로, 은조사 섬유에 바느질로 재현한 것이다. 12.7m 높이에 창문과 입구 계단까지 그대로다. 바통은 을호씨 부부가 이어 받았다. 두 사람은 형 도호씨가 만든 집의 그림자 모양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놓는 작품을 만들었다.

“언뜻 보면 파란색 그림자 같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에 세 집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어요. 어릴 때 우리 형제가 함께 자라온 한옥집, 형과 제가 시차를 두고 살았던 뉴욕의 집, 그리고 전형적인 베니스 양식의 집이죠.” 을호 씨의 설명이다. 현재 사는 집의 그림자에, 예전에 거쳐간 집과 앞으로 거쳐갈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겹쳐놓은 셈이다.

◆집은 정체성이다=이들은 “완성된 작품만이 작품이 아니라 세 사람이 함께 한 과정 자체가 작품이었다”고 즐거워했다. 집에 대해, 공간과 기억,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작품을 보게 될 사람들에 대해 함께 고민한 과정 자체가 도전적이었고, 그만큼 값졌다는 의미다. 서도호씨가 “특히 반영 부분이 시적(詩的)으로 표현됐다”며 동생 부부의 작품에 매우 흡족해했다. 현재의 집이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소재로 만들어져 마치 환영(幻影)처럼 천장에 걸려 있는 반면 그 집의 그림자가 딱딱한 소재에 새겨져 관람객들의 발 밑에 밟히게 되는 게 아이러니컬 하다는 설명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긴 여행이나 다름 없죠. 살면서 많은 공간을 거친다는 점에서요. 저는 그 ‘공간’이 단순히 건축적, 물리적인 것을 의미를 넘어서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끼리의 공간이 겹치는 거죠.”

도호씨는 “옷이 개인적 공간을 의미한다면, 집은 그 공간이 확장된 형태”라며 “내게 집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의미하는 중요한 소재”라고 말했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전세계 건축가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세계적 권위의 건축전 . 미술 분야와 격년으로 개최된다. 각 국가관 전시는 ‘건축 올림픽’이라 할 만큼 국가별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관 전시에는 권문성 교수(성균관대 건축학과) 커미셔너와 함께 이충기·하태석·조정구·신승수·이상구씨가 ‘서울의 변화’를 주제로 참여한다. 올해에는 8월 29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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