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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천안을 보궐선거 후보들을 만나다 자유선진당 박중현

7월 28일은 천안을(서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는 날이다. 국가와 지역을 위해 우리 의견을 대변할 인물을 뽑아야 한다. 보궐선거는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비되지만 유권자 관심도와 투표율이 저조한 편이다. 이번 만큼은 지역 발전을 돕는다는 뜻으로 후보들을 유심히 살피고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한나라당(7월 16일자)·민주당(7월 20일자)에 이어 자유선진당(7월 23일자) 후보를 소개한다.



“젊고 유능한 전문가 뽑아 충청 자존심 세워 주십시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천안. 박중현 후보가 찌는 듯 한 무더위 속에 아침부터 유권자들을 만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2006년 천안시 바 선거구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지역정치에 입문했다. 의사출신 전문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박중현 시의원, 총선출마 위해 사퇴 지난 2008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2년을 기다려 다시 도전한다. 박 후보는 “젊은 사람이 지역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충청권 정당인 선진당에 힘을 실어 달라”고 말했다.



-선거일이 5일 남았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오전 6시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해 밤 12시에 캠프에 들어와 회의를 주재한 후 집에 들어와 잠을 잔다. 하루하루 일정을 정신 없이 다니다 보면 파김치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려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가야 할 데는 많은데,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유권자들을 많이 만나 박중현이 누구인지,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다행히 다니는 만큼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의사가 왜 국회의원에 도전하나.



의학박사로 천안에서 11년간 의사의 길을 걸어왔다.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정치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일은 가려운 데가 있기 마련인데 그게 나 혼자만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됐다. 그러다 보니 정치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꼈다. 문제의식과 대안이 생겼다. 내가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주도적으로 정치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다. 당선된다면 선진 의료제도 확립을 위한 입법활동을 하고 싶다.



-6·2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천안시장 후보 모두 낙선했다.



자유선진당이 충청도민의 염원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가 가장 크다고 본다. 정당은 정권창출이 목적이다. 그런데 현재 자유선진당의 모습에서 정권창출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선진당이 보다 젊은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줄 수 있고, 젊은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박중현이 반드시 당선되어 선진당을 젊은 정당으로 만들어가는 주역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대부분이 생활밀착형 공약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해서 급조해 만든 것이 아니라 평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내 놓은 것이다.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실천해 나가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남이 시켜서 인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만큼 실천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본다. 일부 후보처럼 허황된 공약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당적을 옮긴 데 따른 비판이 있다.



우선 천안시민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솔직히 말해 시의원에 당선됐지만 국회의원으로 중앙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은 열망이 매우 강했다. 그런 심적인 갈등을 겪는 속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임할 기회가 다가왔다. 시의원으로 뽑아준 지역 주민들을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보다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격려해주는 유권자가 많았다. 여기에 힘을 얻고 당시 시의원을 사퇴한 후 공천신청을 했다.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보다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헤쳐 나가야 할 역경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비난한다면 얼마든지 달게 받겠다.



-지역 정당의 한계(지역성)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충청도 사람들, 예로부터 얼어 죽어도 곁 불은 쬐지 않는다는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다. 이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나 곁가지 소리를 듣고 있다. 충청도의 인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독자노선을 구축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다 보니, 타 지역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충청 사람들조차 충청도를 대변하는 지역정당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충청도 사람들도 영남이나 호남사람들처럼 단단히 뭉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충청도에서도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당선을 자신하나.



타 후보에 비해 출발이 매우 늦었다. 하루가 다르게 천안시민의 반응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타 후보와의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높게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현재 시점에서는 확실히 2강의 테두리 안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지율이 상승하는 게 매우 가파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선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18대국회의 잔여임기가 2년도 안 남았다. 유권자들에게 제시한 공약을 실천할 로드맵을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다. 아파트관리비 20% 인하와 경로당 무상급식, 어린이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유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선거는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은 재벌 2세가 권력까지 얻어서 마음껏 정경유착을 할 수 있게끔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젊고 유능한 전문가를 뽑아서 천안을 발전시키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충남의 정치1번지 천안시민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겠다.



■ 박중현은 이런사람



출생연도 1968년생

본적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신체 170㎝, 70㎏

혈액형 A형

학력 연세대 의대대학원(의학박사)

경력 멘파워 피부·비뇨기과 원장

좋은학교만들기 학부모모임 충남상임대표

연세대·이화여대 외래교수

가족관계 부인과의 1남1녀

병역 해군 대위(공중보건의)

자격·면허 의사면허

비뇨기과 전문의

의학박사 학위

좌우명 꾸준히 성실하게

존경하는 인물 말레이시아 전 수상 마하티르(의사)

감명깊게 읽은 책 맥스웰의 『성공의법칙』, 『카네기관계론』

좋아하는 음식 떡볶이, 라면

좋아하는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조용필)

좋아하는 스포츠 축구

좋아하는 연예인 변우민

주량 및 흡연 여부 소주 반 병, 담배 한 갑

재산 19억 2200만원(직계존비속 포함)



■ 박중현이 해 내겠습니다



모든 경로당에 무상급식을 하겠습니다




·경로당 무상급식을 위한 제도적 여건 마련(관련법 제·개정 등)

·급식제공이 열악한 경로당은 시설 개·보수 추진



아파트 관리비를 20% 낮추겠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을 통한 투명한 위탁관리업체 선정

·관련법령 개정을 통한 각종 공용시설 전기요금 가격 인하 추진



어린이 전문병원을 유치하겠습니다



·천안 어린이 전문병원 설립주체 선정

·아토피 치료 전문 의료기관 방안 모색 및 용역 발주



<학부모 교육원을 설립하겠습니다



·정부(교육인적자원부 및 충남도교육청) 예산 확보

·학부모 교육원 건립 및 효율적 운영을 위한 연구용역 발주



와인마을과 농·특산물 유통단지 조성하겠습니다



·농특산물 가공 유통단지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소규모 전문공연장 및 전시장을 확충하겠습니다



·뮤지컬, 클래식, 팝, 국악 전문 공연장 확충

·전문 예술인들의 활동의 장 확보 지원



세계 3D영화제 개최하겠습니다



·세계 3D영화제를 충남에서 개최

·전세계 3D영화, 영화인 경연장/축제 구현



여성 복지를 위한 탁아·육아를 지원하겠습니다



·출생아 건강보험 가입비 전액 지원

·야간 보육시설 확충

·유치원 종일제 운영비 지원






나의 인생이야기



어릴적 개구쟁이 구슬치기에‘올인’




구슬치기가 학교 보다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가 나를 찾으러 오실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노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그 때는 아이들이 많고 교실은 좁아 수업이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져 있었다.



오전반일 때는 오후반이라고 하고 하루 종일 구슬치기하고 오후반일 때는 오전반이라고 하고 구슬치기를 하느라 학교를 보름 정도 안 갔더니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찾아 오셨다.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안 나오길래 말도 없이 전학간 줄 알고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그날 어머니한테 사정 없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무엇에 한번 빠지면 이렇게 주변 상황이 눈에 안 들어오는 성격은 지금도 그대로다.



의과대학은 아버지의 뜻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이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하던 저에게는 아버지의 말이 곧 법이었다. 왜 의대에 가라고 하셨는지 나중에 물어 봤더니 전쟁이 나면 의사는 아군 적군 모두에게 죽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써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6·25를 겪었던 아버지는 그것이 그렇게 인상에 남으셨나 보다.



고등학교시절부터 끼가 발동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절대 안 하는 학도호국단 간부를 스스로 맡아서 아이들을 통솔했다. 의과대학에 가서도 그 끼를 버리지 못하고 과대표 학생회장 등을 역임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공부 보다 과대표 학생회장 하는 걸 더 재미있어 했다. 재미있는 건 그래도 졸업식 때는 상도 받았다. 우등상은 당연히 아니고 모범상을 받았다. 그래도 의대 6년 동안 열심히 봉사한 보람은 있었다. 그때 부상으로 받은 금반지가 어디 있는 지 몰라 안타깝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 인지 학창시절의 리더십이 정치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을 대표로 일을 했다면 지금은 주민 대표가 되어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열정이 용솟음 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레지던트 시절



의사가 되어 인턴 레지던트 생활은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밤새는 일은 다반사였다. 군대도 없던 구타가 당시 수련 받을 때는 있었다. 그때는 참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이해가 간다. 환자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교육받은 가닥이 있어서 사회생활하며 왠만한 건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담력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아산 공중보건의로 천안에 정착



전문의를 따고 아산에 공중보건의로 오게 됐다. 작고하신 아버지 고향인 충남 예산부근에 개업하라는 아버지 유언에 따르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천안에 첫 근무지를 잡아서 현재까지 온 게 벌써 11년이다. 천안이 좋다. 이곳에서 결혼했고 정치에 입문했다. 앞으로 더 큰 꿈과 희망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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