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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박용하·이수현 같은 진심을 다오

#1. 18일 도쿄에서 열린 고 박용하씨 추모 헌화식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초상집이나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기껏해야 눈물만 찔끔 흘릴 뿐 일본인이 큰 소리 내 울거나 울부짖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죽어도, 자식이 죽어도 너무나 담담한 게 내가 아는 일본인이었다. 그게 일본인들의 사생관(死生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날 헌화식 행사장은 박씨의 사진을 가슴에 움켜쥔 채 팬들끼리 엉엉 우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박씨의 일본 내 데뷔곡 제목인 ‘가지 마세요’를 한국어로 외치며 울부짖는 그룹도 있었다. 이날 모인 1만4200명의 일본인이 이토록 통곡하며 오열한 까닭은 뭘까. 난 단순히 한류스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흠모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박씨의 진정한 마음, 진심이 그들을 사로잡았고, 또 울렸다고 본다.



2004년의 일이다. 박씨는 규슈 가고시마(鹿兒島)에서 토크쇼를 열었다. 수만 명의 신청자 중 추첨에 당첨된 300명만이 사인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근위축증으로 20여 년간 인공호흡기를 끼고 병상에 누워 있던 이시바시 에쓰코(36)도 운 좋게 당첨된 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에 ‘닥터 스톱’이 걸렸다. 낙담한 이시바시는 허탈함에 밤새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행사장에서 관계자로부터 그런 사연을 들었다. 행사 후 가고시마 공항으로 가던 중 박씨는 스태프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차량을 병원으로 돌렸다. 그러곤 병상에 누워 있는 이시바시의 손을 꼭 쥐고 떠났다. 딱 10분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은 일본 전국을 울렸다.



#2.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얼마 전 이 역 개찰구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외우고 있는 스님을 만났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지난 9년여 동안 거의 매일같이 이곳에 나와 경을 읽는다 했다. 2001년 1월 26일 이 역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고 이수현씨(당시 26세)가 고마워서 그렇단다. 그뿐 아니다. 이 역 구내에 설치된 이씨의 기념비 밑에는 아직도 간혹 꽃들이 놓여 있다. “우리도 이씨를 기리기 위해 꽃을 치우지 않습니다. 시들 때까지 놔두다 시들고 나서야 치웁니다”는 역무원의 말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올 5월 한국을 방문한 오카다 가쓰야 일 외상은 부산의 이수현씨 묘를 찾아 헌화하면서 “일본 국민은 이수현씨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 했다.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이 같은 일본인들의 마음은 결국 이수현씨의 진정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이 진심을 낳은 것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8월 29일을 즈음해 일 정부가 사과담화 발표를 검토 중이라 한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의 통과의례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옆구리 찔러 절 받는 식의 면피성 사과담화문이라면 아예 필요 없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어설픈 사과담화는 결국 들통나게 돼 있다. 소모적 논쟁만 부추길 뿐이다. 박용하와 이수현의 진심이 일본인의 진심을 끌어내고 감동시켰듯, 한국인도 용기 있는 일본 지도자의 진심에 호응하고 감동받고 싶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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