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차이나 피버’와 ‘차이나 배싱’

한국과 중국 사정에 정통한 손계서(孫啓瑞) 전 대만대학 교수는 중국적 사고의 본질을 ‘깊은 의중(深意)’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 사람들은 시간 축을 길게 잡아 정세를 판단하는 습관이 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 탓에 사물의 판단을 칼로 자르듯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반해 한국 사람들은 좀 단기적이고 한꺼번에 일도양단식으로 해결하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천안함 사건만큼 이러한 한국과 중국의 사고방식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도 많지 않을 것이다.



손 교수는 화교로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대만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60~70년대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정상회담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 정치가들은 즉답을 내놓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습관이 체질화되어 있다고 한다. 송나라 시인 구양수(歐陽修)의 “취옹(醉翁)의 뜻은 술에 있지 않다”는 표현이 중국 정치가들에 의해 종종 사용되는 것도 이런 습관 때문이라는 것이다. 취옹이 산사를 찾아오는 것이 술 때문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술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온다고 구양수는 읊었다.



2006년 10월 북핵 실험 직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은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않다”는 표현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중을 전하려 했다. 추측이 분분했지만 북한의 관심이 핵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있음을 전하려 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북한의 의중보다는 중국의 의중이 더 많이 실린 표현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주 좌담회에서 만난 베이징대 주펑(朱鋒) 교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북한의 관심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있으며, 생존을 위해서도 결국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아마도 이러한 중국식 사고를 잘 드러낸 것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과정에서 ‘취옹(중국)의 뜻은 술(천안함)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중국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않았는데도, 술을 계속 먹이려 압박한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과는 “한국이 천안함 외교전에서 ‘중국을 이용한’ 북한에 졌다”는 일본 언론들의 평가다. ‘원칙 있는 대응’이라며 기세등등하게 유엔에 가서는 결국 그나마 성공이라는 자평을 내놓는 외교당국의 국제인식에 불안할 따름이다. 외교전략도, 상황판단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아직 중국과 국익을 놓고 서로 부딪치는 것은 시기상조인가?



그동안 ‘차이나 피버’(중국 열기)에 휩싸여 있던 한국이 하루아침에 ‘차이나 배싱’(중국 때리기)으로 돌변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한반도가 신(新)냉전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익을 놓고 중국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한·미관계는 더 이상 양국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미관계는 한·중관계’이기도 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안보의 기축이라 하더라도, 한·중 교역이 한·미, 한·일 교역을 합친 것보다 많은 상황에서 한·미관계는 더 이상 양국관계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미관계는 중국을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고, 한·중관계는 미국을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는 한·미·중의 3각 게임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과의 낙차에 대해, 주펑 교수는 중국과 한국은 아직 국익을 놓고 서로 부딪칠 단계까지 와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보았다. 중국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익 게임을 하기 전에 심각한 상호이해의 부족을 해결하는 게 보다 급선무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신임 주중 일본대사로 내정된 이토추상사의 니와 우이치로(丹羽于一郞) 회장도 비슷한 견해를 내비쳤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관시(關係) 등 여러 가지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믿음(信)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새겨들을 말이다. 국익으로 부딪치기 전에 양극단으로 선택지를 좁히지 말고 다면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신뢰관계의 구축이 지금 한·중 간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우리의 미묘한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