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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81> 20세기 안무가 9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발레 중흥을 이끈 이후 발레는 오랜 기간 극장 무용의 전부였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며 귀족 예술 발레는 흔들렸다. 절대미에 대한 의심, 전형성에 대한 거부가 원인이었다. 그건 단지 발레에 대한 반항을 넘어 기존 질서와의 투쟁이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안무가 9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현대 사회의 격변과 직면하게 된다.



토슈즈 버린 맨발의 덩컨, 쓰레기에서 춤춘 바우슈…시대 앞서간 춤꾼들

최민우 기자



기성 권위에 도전, 현대 무용의 새벽 열어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1878~1927)






이 가냘픈 여인네가 300년이 넘는 굳건한 발레의 역사를 송두리째 흔들 줄 누가 알았으랴.



이사도라 덩컨은 단순히 춤 추는 여성이 아니었다. 발레의 기본적인 형식미로 상징되어온 튀튀와 토슈즈를 그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인위적인 자세를 거부한 채 맨발과 반라의 몸으로 과감히 거리를 활보했다. 그건 기성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다. 그의 출현과 함께 ‘자유’를 모토로 내건 현대 무용이 꿈틀댔고, 무용이 소수 전문가 그룹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운명은 혹독했다. 그는 35세 때 교통 사고로 두 아이를 잃었고, 이후 만난 15세 연하의 러시아 시인 예세닌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으나 예세닌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덩컨 역시 50세가 되던 해 프랑스 니스에서 차로 가던 중 스카프가 목에 걸리며 파란만장한 삶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대표작-‘워터 스터디’ ‘나르키소스’



파격으로 신고전주의를 출범시킨 천재 발레리노

바츨라브 니진스키(Vaslav Nijinsky·1890~1950)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 스트라빈스키의 소음에 가까운 기괴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대에 나온 무용수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주먹을 쥐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격렬한 동작을 취했다. 객석에선 야유가 터져 나왔고, 아예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이도 잇따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무용 작품인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은 이런 소동 속에 탄생했다.



그는 본래 천재 발레리노였다. 마치 공중에 체류하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듯한 전설적인 발롱(공중에 머물러 있는 듯이 보이게 하는 기술), 눈이 휘둥그레지게 할 만한 파워 넘치는 엘레바시옹(도약할 때 높이 솟아오르는 능력)과 회전 등은 그 자체로 전설이었다. 그가 안무한 작품은 단 4개. 하지만 전통적인 발레 동작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발레의 턴 아웃 대신 발 앞을 모으는 턴-인(turn-in) 자세 등은 네오 클래식의 출발을 예고했다.



대표작-‘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



현대 무용의 기술 완성, 근육 수축·이완으로 감정 드러내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1894~1991)




그레이엄에 의해 현대 무용은 더 이상 재야의 반항적인 자기 표현이 아닌, 하나의 완결성을 갖게 되는 제도권 예술로 자리 잡게 된다.



그는 강렬한 상황을 그대로 춤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은 뒤로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린다. 클래식 발레는 이런 극적인 상황을 팔이나 손을 통해 상징화시킨다. 반면 그레이엄은 이를 제스처가 아닌 근육의 수축과 이완, 긴장과 경련을 통해 진짜로 넘어지듯 표현했다. 그건 신체의 유연성과 힘이 있어야만 가능했기에 그는 체계화된 교육과 반복 훈련을 그 어느 것보다 중시했다. 1m59㎝의 키와 왜소한 체격,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뻐드렁니 등 무용가로선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오랜 기간 살아 있는 현장 경험을 통해 그레이엄은 현대 무용의 정형미를 구체화시켜 나갔다.



대표작-‘원시적 성찬’ ‘애팔래치아의 봄’



춤과 음악의 행복한 만남…신고전주의 체계화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1904~83)




19세기만 해도 발레엔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20세기 ‘안무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조지 발란신의 출현과 함께 발레는 스토리가 아닌, 발레 자체로 승부를 거는 ‘추상 발레’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발란신이 춤으로만 승부를 걸 수 있었던 건 그가 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음악가가 되기 위해 작곡과 피아노 수업을 이수했다. 발란신에 이르러서야 “춤이 먼저냐, 음악이 먼저냐”라는 해묵은 대결 구도는 깨지고 춤과 음악은 행복한 만남을 갖게 된다. 발레 뤼스의 안무가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신고전주의 발레를 체계화시킨 발란신은 “모든 음악은 발레로 만들 수 있다”고 호기 어린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온갖 스타일의 음악을 차용했다. 발란신은 발레를 ‘보이는 음악’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참으로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대표작-‘세레나데’ ‘한여름 밤의 꿈’



즉흥적 동작을 사진·영상·건축과 버무린 전위예술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1919~2009)




우리에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공동작업으로 친숙한 무용가다.



커닝햄 춤의 첫 번째 특징은 ‘절대미학’이다. 인간의 내면세계나 심리적 묘사가 아닌 움직임 자체에 집중했다. 무용의 형식적·형태적 미를 추구하면서 그의 작품은 자연스레 인과관계에서 탈피한 우연적이거나 즉흥적인 동작을 추구해갔다. 포스트모던 무용의 기초가 다져지는 순간이었다.



즉흥적인 해프닝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자 그의 무용 또한 자유로워졌다. 타 장르와의 협업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백남준과 더불어 현대 음악의 대가 존 케이지는 커닝햄이 평생을 같이한 동반자였다. 사진·영상·건축 등과의 혼용도 시도했다. 1990년대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해 안무를 짜기도 했다.



대표작-‘우연에 의한 모음집’ ‘겨울 가지’



힘이 실린 무대…무용을 총체 예술로 만들어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jart·1927~2007)




그의 얼굴을 보라. 남성미와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가. 안무 역시 그랬다. 스펙터클하며 웅장했다.



모리스 베자르는 무용을 총체 예술로 확장시켰다. 1953년 베자르는 자신의 무용단을 설립하고, 60년 파리 세계연극제에 초대된다. “포르노그래피와 같다”란 논란을 일으킨 ‘봄의 제전’을 공연해 최우수 안무가상을 받으며 세계 무용계 핵심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60년대 말 이후 대규모로 확장되기 시작한 그의 작품들은 운동 경기장이나 서커스장에서 공연되곤 했다.



그는 대형 무대를 채우기 위해 신체 동작뿐만 아니라 영상과 줄타기·대사 등을 가미했고, 다소 이질적인 요소를 정교하게 배치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혼돈 속에서 논리를 일궈내는 안무가”란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로미오와 줄리엣’ ‘우리들의 파우스트’



몸짓 이외의 표현 위해 영상 올리고 물 끌어쓰고

피나 바우슈(Pina Bausch·1940~2009)




한국인에게 가장 낯익으면서도 가장 20세기적인 무용가를 꼽자면 피나 바우슈 아닐까.



그는 1940년 독일 부퍼탈 인근 졸링겐 마을에서 태어났다. 1950~60년대 만개한 독일 표현주의의 계승자였던 그는 공포·불안·광기 등 인간 내면심리에 천착해 이를 무용 언어로 전환시켜 무용은 아름답고 우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몸짓만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연기·마임·음악뿐 아니라 회화·영상·디자인 등 입체적 요소를 가미했다. 정형화된 세트를 거부하고 현실적인 무대를 고집한 그는 무대 위로 물을 끌어다 대는 건 물론, 쓰레기 더미를 그대로 옮겨오기까지 했다. 70년대부터 현대 무용의 가장 큰 흐름이 된 ‘탄츠테아터’(Tanztheater·무용극)는 그의 창작물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문화와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는 ‘도시 연작 시리즈’를 진행했고, 2005년엔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 컷’(Rough Cut)을 공연했다.



대표작-‘아리아’ ‘산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네’



“춤은 감정의 소산” 섬세함으로 감수성 건드려

지리 킬리안(Jiri Kylian·1947~)




킬리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용단은 바로 네덜란드 댄스시어터(NDT)다. 1975년 스물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NDT 예술감독이 된 킬리안은 이후 25년간 50여 편의 안무를 했다.



NDT의 가장 큰 특징은 단원들 간의 서열이 없다는 점이다. 그건 작품에서 주인공에 집중되는 스타일이 아닌, 등장 인물의 다초점화를 통해 더욱 현실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킬리안은 무엇보다 한동안 기계적인 춤동작에만 집중되던 기존 흐름에 반기를 들고 “춤은 곧 감정 표현의 소산”이라며 섬세하고 관능적인 동작으로 관객의 감수성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상황을 세련된 은유로 풀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이후 윌리엄 포사이드·존 뉴 마이어·나초 두아토로 이어지며 컨템포러리 발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대표작-‘병사들의 미사’ ‘결혼식’



‘백조’를 남자로…예술성과 대중성 거머쥐어

매튜 본(Matthew Bourne·1960~)




백조를 탄탄한 근육의 남성 무용수가 연기하게 해 현대 무용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중앙포토]
차이콥스키와 마리우스 프티파의 발레 ‘백조의 호수’. 1877년 이후 130여 년을 이어온,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다. 재해석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백조를 아예 남성으로 바꾸는 전복적 사고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매튜 본. 그는 단순한 안무가가 아니다. 연출가이며 프로듀서다. 27세의 나이에 자신의 무용회사 AMP를 설립했을 때부터 그는 춤의 흥행성을 간파할 만큼 영리했다. 고전 발레 레퍼토리를 선택하되 난해한 움직임을 배제하고 뮤지컬·사교댄스·볼룸댄스 등을 선택해 과감히 삽입했다. 대사 없이 노래와 춤만으로 극을 진행하는 ‘댄스 뮤지컬’은 그렇게 탄생했다.



1995년 남성 무용수들을 백조로 기용하는 ‘백조의 호수’가 탄생하자 전문가들은 “무용계의 이단아” “정통 발레를 파괴하는 개작가”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조의 호수’는 영국 웨스트엔드 역사상 최장기 무용 공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매튜 본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움켜쥔 현대 무용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대표작-‘가위손’ ‘신데렐라’



※도움말=장인주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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