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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체험학습

1997년 3월 새 학기를 맞은 서울의 초등학교들에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 벌어졌다. 교실마다 빈자리가 생기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학교의 ‘허락’을 받고 사나흘씩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줄을 이은 탓이다. 이 학생들은 학교수업 대신 부모와 함께 여행을 하거나 제사·결혼식 같은 가족 행사에 참여했다. 방학 때가 아니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학기 중에 버젓이 한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느라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현장 체험학습’ 제도가 처음 시행되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지금은 전국 초·중·고교에 자리 잡은 이 체험학습 제도를 만든 주역은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이다. “학교의 벽을 넘어 다양한 삶의 현장과 자연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열린 학습을 시키자”는 취지에서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96년 구상 단계였던 그의 체험학습 아이디어가 한 언론에 보도되자 주변의 눈총이 쏟아졌다. “학교에 빠지고 놀러가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인식이 적잖았던 것이다. 심지어 당시 교육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공연히 교육감이 나서 일을 만든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유 전 교육감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듬해 서울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제도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학부모들도 경험이 쌓이면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른 교육청들 사이에서도 벤치마킹 움직임이 일자 마침내 교육부가 나섰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근거를 마련해 전국 학교가 체험학습을 시행토록 한 것이다. 지역 교육청의 아이디어가 국가 정책으로 확대된 드문 사례다.

체험학습은 말 그대로 직접 몸으로 경험해 배우는 것이다. 특히 신체의 오감(五感)이 역동적으로 피어나는 초등학교 시기의 체험학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교육이란 게 교육학자들 얘기다. 인간의 뇌에서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매우 근접해 있다. 정서적으로 강한 흔적이 남으면 기억이 잘되는 까닭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학습을 통해 강한 정서적 경험을 한다면 매우 효과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어제 치러진 학업성취도평가를 놓고 학교현장이 혼란스럽다. 학생 수백 명이 평가를 거부하고 무단으로 체험학습을 강행했다. 평가 거부 세태도 안타깝지만 행여나 ‘산 교육’이라는 체험학습의 취지가 빛바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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