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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서로 못 믿는 기아차 노사

노조는 촛불을 들었다. “타임오프(유급 근로시간면제)는 노조 탄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회사는 버스 20여 대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정문은 건장한 청년들이 막아섰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회사 이름이 들어간 표지석에 푸른색 보호막을 씌웠다. 9일 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앞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일이다.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 노조원 3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는 기아차 노조(금속노조 기아차 지부)가 주도했다. 기아차는 새 제도에 따라 유급 노조 전임자를 181명에서 19명으로 줄여야 한다.

1박2일간 진행된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끝났다. 하지만 노사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진 듯했다. 이 회사 노사는 최근 계속 날을 세워 왔다. 사측은 노조가 주말 특근을 거부해 지난달과 이달 총 2만여 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기아차는 지난달 중형 세단 K5가 내수 판매 1위에 오르는 등 호기를 맞고 있다. 모처럼 잡은 기회를 노조 때문에 날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회사가 고의로 K5 출고를 늦추고 노조에 덮어씌운다”고 맞받았다. 회사는 “미미한 숫자인 데다, 판매가 몰려 출고 지연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재반박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를 떠나 노사 관계가 이 지경이란 건 씁쓸한 일이다.

이번 일의 원인 제공자는 노조다. 법으로 정해진 타임오프를 어기라고 회사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단 수용한 뒤 문제가 있다면 법의 보완을 요구하는 게 맞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자 “파업을 안 하면 보상하겠다”고 나온 회사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돈으로 파업을 막겠다는 발상으로 들려서다. 재계·노동계 모두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그럴 돈 있으면 차값이나 내리라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있다.

9일 밤 노사 대치 현장의 사이에 난 길에는 많은 차량이 오갔다. 그중엔 기아차의 K5도 있었다. 운전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자신이 모는 차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진 않았을 것 같다.

지금 기아차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것은 노조 전임자 수도, 회사 표지석도 아닌 소비자의 신뢰다. 그러려면 노사가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둬들여야 한다. 국내외 경쟁 환경이 ‘네 탓’만 하고 있어도 될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선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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