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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분단 현장을 가다] 155마일 신비의 생태 기행 ② 강화군 비도 저어새

봄이면 서해 외딴 바위섬을 찾는 귀한 손님들이 있다. 주걱처럼 생긴 검은 부리와 왕관을 연상시키는 황금색 머리깃털로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바로 전 세계에 2300여 마리뿐인 희귀종 ‘저어새’다. 이들이 대만에서부터 무려 2000㎞를 날아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서해상의 한 점, 바위투성이 무인도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어새는 땅바닥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 때문에 사람이나 포유동물을 피해 주로 외딴 섬에서 번식한다. 그래서 남북 간 첨예한 대치로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 무인도가 이들에게는 최적의 번식지다.

비도에서 저어새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깃털을 고르고 있다. 저어새는 이곳에서 가마우지·괭이갈매기·중대백로 등과 함께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왼쪽 사진). 새끼가 자라면 강화도나 육지 쪽으로 이동해 먹이를 구한다.
전 세계 저어새의 고향이 대부분 DMZ와 그 주변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최대 저어새 번식지인 비도의 전경.
저어새를 만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본지 취재팀은 당초 4월 27일 서해 무인도의 저어새 번식지를 찾아가려 했지만 인천 강화군 외포리 선착장에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강한 바람과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탓에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저어새를 보러 가기 위한 행정절차도 까다로웠다. 환경부와 강화군·군부대의 허가가 필요했다. 또 갯벌에 둘러싸인 무인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물때(조수간만)도 잘 맞춰야 했다.

열흘 뒤인 5월 7일 아침, 외포리 선착장. 바람과 파도, 그리고 해무(海霧·바다안개)를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날씨는 쾌청했고 바다도 잔잔했다. 강화군에서 마련해준 행정선인 ‘인천 507호’가 석모도와 주문도 남쪽을 돌아 파도를 가르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선장 조명호(53)씨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바닷속 갯벌을 피해 지름길로 배를 몰았다.

서해상에는 천안함 사태의 여파로 인한 긴장감이 여전했다. 해군 경비정이 남쪽 어선들과 북쪽 섬들 사이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경비정 너머 NLL에 붙어 있는 작은 섬 함박도가 보였다. 그 뒤로는 북한 쪽 육지인 황해도 연백군 지역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외포리 선착장을 떠난 지 1시간30분. 뱃머리 쪽에 멀찌감치 섬이 나타났다. 국군이 주둔하는 섬 우도였다. 높게 솟은 초소와 섬에 둘러쳐진 철책선이 이곳이 최전방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취재팀을 실은 배는 먼저 우도가 거느리고 있는 작은 바위섬 석도로 향했다. 물 밖으로 10m 남짓 솟은 바위 두 개로 이뤄진 석도는 넓이가 농구코트(약 420㎡) 3개도 채 되지 않았다. 펑퍼짐한 바위 위에는 가마우지 70여 마리와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떼를 지어 앉아 있었다. 검은머리물떼새와 왜가리 사이에서 저어새도 둥지를 틀고 있었다.

동행한 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 이기섭 박사는 “저어새 둥지가 5개 정도 되는 것 같다”며 “썰물이 되기 전에 비도를 둘러보려면 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배는 곧바로 2㎞ 남짓 떨어진 비도로 향했다. 비도는 서해 NLL 부근에서 저어새가 가장 많이 찾는 섬이다. 배가 다가가자 괭이갈매기가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저어새가 둥지에 낳은 알.
“까륵까륵” 하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커졌다. 축구장 넓이(약 7200㎡)의 3분의 1 정도인 비도는 큰 봉우리 2개로 이뤄져 있다. 한쪽 봉우리는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제법 나무가 우거졌다. 소나무 숲에는 10여 마리의 중대백로도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저어새 110여 쌍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녀석도 보였고 괭이갈매기와 함께 바위 위에 올라서 있는 녀석, 봉우리 근처에서 먼바다를 내려다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하지만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새끼 저어새들이 먹이를 재촉하며 내는 울음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았다. 이 박사는 “올 3~4월까지 늦추위 이어지고 날씨가 나빠 예년에 비해 번식이 늦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정오 무렵 강화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썰물이 시작돼 배가 자칫하면 갯벌에 발이 묶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박사는 “한반도가 고향인 저어새를 지키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더라도 이들 섬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숫자는 느는데 번식지는 계속 줄어=한국과 대만의 환경단체들이 10여 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보존활동에 나선 덕에 전 세계적으로 500~700마리에 불과했던 저어새는 현재 2300여 마리로 늘었다. 대만은 저어새가 겨울을 나는 지역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저어새가 번식할 장소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개발에 따른 훼손이 가장 큰 이유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위치한 함박도에는 과거 저어새가 많이 번식했다. 하지만 중국·북한 배들이 대거 드나들면서 더 이상 번식지로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볼음도 수리봉에서도 저어새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번식은 하지 않는다. 한강 하구 유도에서도 저어새 알을 훔쳐먹는 동물 탓에 번식이 중단됐다.

인천환경운동연합 이혜경 실장은 “강화도 남단 각시섬이나 영종도 북단 수하암, 인천 남동유수지 내 인공섬 등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도 저어새가 번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는 인천 주변 섬들이 개발로 훼손되고 갯벌이 사라져 번식지가 모자란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송도 11공구는 1000만㎡의 갯벌 중에 60% 이상이 매립될 처지다. 대규모 조력발전소 건설도 위협 요인이다. 한국두루미네트워크의 박종학씨는 “저어새는 논에서 민물새우·미꾸라지 등을 잡아 새끼를 먹이지만 농부들은 벼를 쓰러뜨린다며 쫓아낸다”고 안타까워했다. 북한이 2001년 펴낸 사진첩 『저어새』에는 서해 NLL 너머 북한 지역의 각회도 등지에서도 저어새가 번식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독수리, 중대백로, 가마우지(왼쪽부터)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 얕은 물이나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며 이때 부리를 좌우로 저어가면서 먹이를 잡기 때문에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기는 수컷이 약 80㎝, 암컷이 70㎝ 정도다. 4월 초 한반도를 찾아 번식하며 알은 2~4개 낳는다. 10월 말쯤 월동지인 대만으로 이동한다.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몸길이는 100~110㎝이며 몸 전체가 짙은 갈색이다. 철원·연천 등 서 겨울을 난 뒤 몽골 등지로 돌아가 번식한다. 3월 ~4월 상순에 두 개 정도 알을 낳는다.

중대백로=검은색 부리에 흰 깃털을 가지고 있으며 몸길이는 90㎝ 정도다. 눈 앞부분의 깃은 여름철에는 녹색을 띠지만 겨울철에는 노란색을 띤다. 중대백로는 백로 종류 중에서 가장 크다.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며 3~4개의 알을 낳는다.

가마우지= 몸길이는 80㎝ 안팎이다. 몸 전체가 검은색이고 부리는 갈색이다. 해안 절벽이나 암초 위 오목한 곳에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5월 하순에서 7월 사이에 4∼5개의 연한 청색 알을 낳는다. 민물가마우지와 쇠가마우지도 관찰된다.



농경지 줄어 먹잇감도 감소
위협 받는 철새들의 땅 DMZ


재두루미 가족이 강원도 철원 민통선 지역 하늘을 날고 있다. 두루미는 2~4 마리 가족 단위로 활동한다.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3월 25일.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 평화전망대에서 내려다본 DMZ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철책선만 없다면 넓은 초원과 숲이 잘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벌판 한쪽 얼음이 막 녹기 시작한 연못 주변에는 겨울 철새인 대백로 네댓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전망대 남쪽 빈 들에서도 재두루미 80여 마리가 낟알을 주워먹고 있었다. 농로를 사이에 두고 40여 마리씩 두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낟알 줍기와 주변 감시를 번갈아 하던 재두루미는 취재팀의 인기척에 놀라 한 걸음씩 먼 곳으로 움직였다.

취재팀이 뒷걸음질을 치자 재두루미 무리는 오히려 더 경계하는 눈치였다.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하자 무리 전체가 차례로 날아올랐다. 하늘을 선회하던 재두루미 떼는 잠시 후 200여m 떨어진 논으로 다시 내려앉았다. 날갯짓을 하며 천천히 땅에 발을 딛는 재두루미 무리의 자태에서는 자못 위엄이 느껴졌다. 유난히 추위가 길었던 겨울 탓에 재두루미가 북쪽으로 돌아가는 시기도 그만큼 늦어졌다. 보통 3월 말이면 시베리아로 떠나지만 올해는 4월 중순까지도 철원 평야에 일부가 남아 있었다.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나는 재두루미는 약 1500마리, 두루미는 800여 마리가량이다.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기섭 박사는 “철원은 겨울에 춥고 눈이 덮여 있어 월동지로는 썩 좋은 곳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간섭이 적기 때문에 두루미가 찾는다”며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철원에 눈이 적게 쌓여 월동 새떼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철원에는 현무암 지반을 뚫고 사계절 내내 솟아나는 15도의 천연 샘물이 있어 한겨울에도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새들의 월동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두루미도 갈수록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중앙회의 윤순영 이사장은 “민통선 내 농경지가 비닐하우스나 창고로 바뀌면서 새들이 먹이를 구할 곳이 줄고 있다”며 “논이 줄어들면 새들의 중간 기착지가 사라져 DMZ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철원 평원 내 토교저수지 주변에는 독수리도 매년 100마리 이상 찾아와 겨울을 지낸다. 새들 사체를 먹는 독수리들이 먹이를 쉽게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근 마을의 축산농가에서는 소나 돼지 태반 등을 먹이로 제공하기도 한다. 윤 이사장은 “다른 철새들의 숫자가 줄면서 먹이를 구하기 어렵게 된 독수리가 최근에는 충남·경남까지 내려간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취재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 조용철 기자, 동영상 이병구 기자
취재 협조 국방부, 인천시 강화군, 국립환경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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