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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조선체육회 창립 … “강건한 신체를 가꿔 사회 발전 도모하자”

 
  1910년대 YMCA 야구단과 경성고보 야구단의 경기 장면. 스포츠는 몸을 놀리고 힘을 쓰는 일들을 재미있게 해주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체육 활동과 몸에대한 관심은 서로를 부추기면서 늘어났지만, 한편으로 마음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사진출처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1895년 2월 근대적 교육 이념을 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 헌장인 ‘교육입국조서’가 공포되었다. 여기에서 덕(德)·체(體)·지(智)의 육성이 교육의 기본 강령으로 명시되었는데, 몸이 교육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러나 정작 고종은 체육에 별 관심이 없었다. 주한 외교관들의 테니스 경기를 참관하던 고종이 “저렇게 힘든 일을 어찌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직접 하느냐”며 혀를 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을 중심으로 체육 활동의 저변은 조금씩 확대되었고, 을사늑약 이후에는 체력과 국력을 묶어 이해하는 태도가 확산되었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민족적 관점에서 체육을 논할 수는 없었지만 지식인들은 체육을 민족 역량의 주요 구성요소로 보고 실력양성운동 차원에서 체육을 진흥하고자 했다.

1920년 7월 13일, 3·1운동 때 민족 대표들이 모였던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었다. 창립취지서는 “웅장한 기풍을 작흥(作興)하며 강건한 신체를 양육(養育)하여 써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며 개인의 행복을 바랄진대 그 길은 오직 하늘이 주신 생명을 신체에 창달케 함에 있으니 운동을 장려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도다”라 하여 체육이 생명의 본령에 따르는 활동임을 전제한 후, 조선체육회는 “조선 인민의 생명을 원숙 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라고 선언했다. 그해 11월, 조선체육회 주최하에 제1회 전국야구대회가 개최되었으니, 현재의 전국체전은 여기에서 기원한다. 조선체육회는 매년 ‘전조선 종합경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 민족의 체육 활동을 고무하고 지원했으나, 1938년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

1945년 11월 26일 재건된 조선체육회는 정부 수립 후 ‘대한체육회’로 개칭했으며, 지금껏 우리나라 체육 발전의 중추로 구실하고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체육은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투자 확대에 힘입어 학교 체육, 국가 체육을 거쳐 생활 체육으로 발전했으며, 이 같은 저변 확대의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체육과 두 낱자의 뜻은 비슷하지만 단어의 뜻은 크게 다른 말로 ‘수신(修身)’이 있다. 이 말은 ‘내면의 도덕률에 따라 행동거지를 가다듬는다’는 의미로서 덕육(德育)과 동의어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삶에서 체육의 비중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수신의 비중은 그에 반비례해 줄어들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파렴치한 범죄들이 반복되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수신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투자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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