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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워싱턴 상경기

촌로(村老)가 한양 구경하듯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다. 그것도 세계 제국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말이다.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닌데 이번 상경(上京)이 각별했던 것은 한국 문제로 약간 긴장하고 있는 워싱턴 정가(政街)의 기류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안보리에서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 러시아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를 두고 백악관과 의회의 정치인들, 국무부와 국방부의 관리들이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던 때였다.

변방의 현안들로 분주한 게 바로 제국의 수도다. 워싱턴 중심부에 도열한 로마네스크풍의 오만한 건물들에는 세계 현안 분석가와 전략가들로 가득하다. ‘외치(外治)의 성공’이 곧 ‘내치(內治)의 안정’이라는 방정식이 제국통치의 본질이겠지만, 외치의 한 조각에 불과한 한국 문제를 귀찮다는 듯 던져버리면 어쩔까 싶어 어수선한 마음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변방국 방문객에게 촌티가 풀풀 나는 미국인 가족이 다가와 백악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한 블록 넘어 저 숲속으로.” 앨라배마쯤에서 온 듯한 저 제국 시민의 상경기는 나와는 사뭇 다를 터이다.

한 세기가 흘렀어도 한국의 국제적 처지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말 고종의 친서(親書)를 갖고 최초의 외교사절이 워싱턴을 방문했던 1883년 이후 미국은 줄곧 우리의 우방이었다. 고종(高宗)은 언더우드 부부(夫婦)를 각별히 총애했고, 자주 궁궐로 불러 미국 얘기를 들었다. 청(淸)·러·일(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던 고종에게 미국은 희망의 탈출구였고, 아들 순종을 미국에 보낼까 궁리할 정도였다. 고종의 꿈은 무산되었지만, 60여 년 뒤 미국은 자신의 아들들을 한국으로 보냈다. 전쟁터로 말이다. 워싱턴 한복판, 알링턴 국립묘지에 조성된 한국전 기념공원 비석에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 “생전에 몰랐던 나라, 만나본 적 없는 국민들로부터 부름을 받은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존경하며.” 미국인 사망자 3만6940명, 실종자 3737명은 그렇게 시작된 역사적 우연을 지키고자 낯선 땅에 청춘을 묻었던 거였다.

외교전문가, 학자들이 동원하는 온갖 난해한 변수들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친소(親疎)관계가 지도자의 사적 호감과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무리가 없는 게 한·미 관계다. 고종과 이승만이 그랬고, 이명박(MB) 대통령도 그렇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왜 한국과 MB를 각별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MB가 오바마를 자주 감격시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미국 구호물자를 타러 줄을 섰다가 결국 못 받고 돌아서야 했다는 MB의 회고담에 오바마가 눈물을 글썽였다는 얘기, G20 회의에서 마치 세일즈하듯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MB에게 국제회의의 주역을 맡길 만큼 오바마의 신뢰가 깊다는 얘기는 워싱턴 외교가에 유명하다. 그런 반면에 DJ는 어른 행세를 했고, 노무현(MH)은 사적 대화를 기피했다. ‘균형자론’을 내세운 MH는 국제무대에서 전혀 균형적이 아니었다. 6·25전쟁 60주년을 기려 한국 정부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생큐!”라는 큼직한 글귀 밑에 두 나라의 국기가 나란히 그려진 단출한 그 광고에 오바마는 감격했다. “이게 바로 동맹이야!”

그런 덕인지 한덕수 미국 대사의 활동반경도 훨씬 넓어졌다. 한·미 FTA를 성사시키려 무려 137명의 의원을 만났는데 한국 기업을 자기 지역에 보내달라고 이구동성으로 간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려의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동차노조의 강력한 저항을 어쨌든 뚫어보겠다는 오바마와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에 있는 GM대우나 미국 기업을 적대시하는 반미정서를 서운해하고 있다고 말이다. ‘과잉된 민족주의’가 변방에서는 ‘사회정의’로 칭송될지 모르나, 제국정치에서는 뭘 모르는 촌뜨기로 비치는 것이다. 마침 러시아와 중국이 천안함 침몰의 북한 책임론을 최종적으로 부정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백악관의 조치는 단호했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어도 한국을 지지한다”는 것.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는 나에게 그 가족이 돌아오며 싱끗 웃었다. “어땠냐”는 내 인사치레 질문에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뭐 대단치는 않은데요.” 변방의 이방인(異邦人)에게는 그 답변이 부러웠음은 물론이다. 제국의 수도를, 백악관을 “별로예요!”라고 답할 수 있을 때는 언제쯤일까? 친미(親美)와 친중(親中)의 경계선 위에서 생존의 오디션을 치르지 않아도 될 날은 언제인가? 변방으로 귀환한 뒤, 안보리 의장 성명이 발표되었다. 북한이 주범이라는 심증(心證)을 배경에 깔고 북한을 공식적으로 지목하지 않은 외교적 수사(修辭)였다. 한국 언론은 ‘절반의 성공’ 또는 ‘실패한 외교’ 등 쉽고 거칠게 제목을 뽑아댔지만, 워싱턴 현장에 가봐야 그게 최대치라는 것을 어렵사리 깨닫게 될 터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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