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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73) 후스



▲<1> 1973년 초 대륙을 방문한 우젠슝·위안자류 부부를 저우언라이 총리가 베이징에서 맞이하고 있다. 당시 우는 미국 물리학회 회장이었다. <2> 1935년 봄, 베이징 중산공원의 선충원. 선충원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김명호 제공

후스 “學歷보다 學力” … 26세 무학의 작가 선충원을 교수로



1928년 봄 상하이의 명문 중국공학에 학생소요가 발생했다. 이사회는 전 베이징대 교장 차이위안페이를 교장으로 영입해 사태를 무마하려고 했다. 학생들은 “도덕과 학문은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지만 겸직이 많은 것이 흠이다. 학교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지 못 할까 봐 두렵다”며 거절했다. 학교 측은 졸업생 중에서 교장감을 물색했다. 후스(胡適) 외에는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후스는 무지와 무능으로 무장된 이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기상천외한 발상을 내놓는 것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있으며 봉급이나 축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취임식 날 “권한을 쥐고 있다 보면 개인의 지식이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남들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한다며 함부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강도보다 더 위험하다”며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선언했다. 후가 생각하는 ‘無爲而治’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내버려 두면 일이 저절로 굴러간다”는 전통적 의미의 ‘無爲而治’가 아니었다. 각자가 할 일을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단, 교수 임용과 교육은 직접 챙겼다.



후의 교육은 문리(文理)의 소통이 핵심이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은 학생들의 수준을 향상시킨다. 조기 전문 교육은 지식의 폭을 좁게 만든다. 말하는 기계보다는 사고와 이성의 노예를 양성해야 한다”며 이과에 뜻을 둔 학생들에게 문학과 역사를 호되게 교육시켰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자연과학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위안스카이의 손자며느리 우젠슝(吳健雄)은 세계적인 여성 핵물리학자였지만 문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남달랐다. 사람들이 의아해 할 때마다 한결같이 “학창시절 후스가 교장으로 온 뒤부터 문학과 역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대답을 했다. 후는 우에게 작문 점수 100점을 준 적이 있었다. 그날 밤 일기에 “우젠슝이 100점을 맞은 것은 나에겐 평생을 두고 즐거워해도 좋을 선물이다”고 적었다. 우는 자신의 손으로 키워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양전닝에게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후는 교수들의 학력(學歷)보다 학력(學力)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학력(學歷)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다 보면 가짜 학력이 판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실릴 만한 인사를 단행했다. 1929년 8월, 26세의 청년작가 선충원(沈從文)을 교수로 임용하자 학교 안팎이 술렁거렸다. 선은 시골 사숙에 몇 년 다닌 것이 고작이었다. 학생들보다 학력(學歷)이 낮고 단 한 편의 연구 논문도 없었다. 첫 수업은 가관이었다. 며칠 동안 준비한 것을 10여 분 만에 다 떠들어 버리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끝나는 시간까지 멍하니 서 있다가 칠판에 “첫 수업이라 준비를 많이 했다. 뭘 했는지 다 까먹었다. 여학생들이 너무 많다. 나는 너희들이 무섭다”고 썼다. 얘기를 들은 후는 그냥 웃기만 했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교장실을 찾아왔다. 편지를 한 묶음 내밀며 읽어 보라고 했다. 선충원에게 받은 편지들이었다. 후는 침착하게 편지를 다 읽었다. 구구절절 명문장이었다. “너와 선충원은 모두 미혼이다. 총각이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연애편지 보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답신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은 네 자유지만 이 편지들을 절대 버리지는 마라”며 여학생을 달랬다. 증국번(曾國藩)의 가서(家書), 루쉰(魯迅)의 양지서(兩地書)와 함께 중국의 3대 서간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종문가서(從文家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후는 20개월간 교장 노릇을 했다. 학교를 떠날 땐 학생 수가 네 배로 늘어나 있었다.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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