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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코리아, 길을 잃다 <상> 의학 발전 뒷다리 잡는 현실

싱가포르의 의료 브랜드는 ‘싱가포르 메디슨’이다. 한국도 이를 본떠 지난해 12월 ‘메디컬 코리아’ 브랜드를 선포했다. 최근 10년의 경쟁력 향상과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대로 의료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을거리가 되려면 갈 길이 멀다. 선진국에서 더 배워야 하고 외부 자본이 의료 분야로 들어와야 한다. 의사 돈만으로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곳곳에서 동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실태를 세 차례 짚는다.



외국 명의 초청 줄이고 국제학술대회 중단하고 … 제약사 후원금 규제에 막혀 선진의료 배울 기회까지 막힌다

“이대로 가면 어렵게 유치한 학술대회가 무산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로 옮기려 해도 마땅치 않네요.”



10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지하 대강당에서 대한수면연구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공정경쟁규약 때문에 제약회사의 후원이 지난해의 절반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논문 발표자와 참석자들이 크게 줄었다. [조용철 기자]
아시아태평양 감염재단 송재훈(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이사장은 ‘항생제와 내성 심포지엄(ISAAR)’이 무산될 것을 우려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이 대회는 1997년 송 교수가 만든 국제학술대회다. 한국 의사가 만든 보기 드문 대회로 이 분야 세계 3대 행사의 하나다. 매년 50여 개국에서 2500여 명의 학자들이 모인다. 하지만 참가비로 대회 비용의 35%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으려 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올 4월 공정경쟁규약이 대폭 강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실 그동안 학회가 주최하는 국내 학술대회 때 제약사들이 발표자들의 강의료나 식음료비 등 대부분의 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함께 개최되는 학회의 정기총회 경비도 댔다가 공정거래위에 적발된 경우가 있었다. 학술대회 참가 지원 명목으로 의사들의 골프나 관광까지 제약사들이 직원을 동원해 편의를 제공하다 걸리기도 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 강화한 규약이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에까지 그대로 적용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나 내년 국제학술대회를 열려면 지금쯤 해외 전문가를 섭외하고 후원사를 찾아야 하지만 대부분 중단됐다. 한국유방암학회와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등이 만든 세계유방암학술대회(GBCC)도 그렇다. 2007년 첫 대회 개최 후 2009년 2회 대회 땐 참가자가 급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컨벤션 분야 예비 스타브랜드로도 선정됐다. 그러나 내년 3회 대회 땐 미국이나 유럽 전문가 대신 경비가 덜 드는 아시아 지역 전문가들로 해외 전문가 초청 범위를 축소해야 할 판이다.



삼성서울병원 박근칠 교수는 “의사 개인에 대한 불법 리베이트는 철저히 잡아야 하지만 의료계 경쟁력을 높일 국제학술대회 유치를 어렵게 하는 규약은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강한피부과 강진수 원장도 “학술대회는 공익성이 있다. 외국의 유명한 의사를 데리고 와서 새로운 걸 배운다. 이런 것들이 쌓여 한국 의술이 발전해 왔다”며 “여기서 주춤하면 5~10년 안에 중국이 추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의사 초빙에 500만~1000만원이 든다. 의사들의 참가비만으로는 학술대회 비용의 절반을 충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외국 전문가 초빙이 쉽지 않게 됐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의·과학 관련 국제회의는 352건(한국관광공사 집계). 2000년대 들어 한국 의료계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매년 국제회의 개최 건수가 20~30% 정도 늘고 있다. 국제회의 참가자의 1인당 평균지출은 2388달러로 일반 관광객의 두 배에 달한다.



◆정부 입장은=보건복지부는 4월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를 처벌하도록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일정 범위 내 학술대회 지원은 리베이트로 보지 않기로 했다. 공정경쟁규약과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허용 범위가 아직 나오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복지부 김충환 의약품정책과장은 “학술대회 지원 절차 등을 담은 시행령을 이달 말 입법예고하고 지원 가능 금액 등의 세부 기준은 장관 고시에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공정규약보다 완화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정부가 입장을 명확히 내놓지 않는 사이 의료계의 국제화와 선진화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하소연한다.



특별취재팀 신성식 선임기자, 허귀식·김정수·안혜리·서경호·황운하 기자, 박소영 도쿄 특파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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