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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20> 지구촌 화약고 3곳

민족·종교 간 반목과 대립으로 빚어진 분쟁과 테러는 21세기 들어서도 지구촌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분쟁과 갈등은 국경을 넘어 인접 국가를 위협하기도 한다. 민족·종교적 요인으로 발생한 분쟁과 테러를 특정 국가만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민족·종교 간 대립으로 분쟁과 테러가 발생한 지역의 상황과 역사를 정리했다.



민족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 꺼지지 않는 분쟁의 불씨

정현목 기자



이스라엘



Q 이스라엘은 왜 가자 지구 봉쇄하고 있나




이스라엘군이 5월 말 자신들이 봉쇄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향하던 국제구호선을 공격해 민간인 10명이 숨졌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고조됐고,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라는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왜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있나.



지난달 6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7000여 명의 시민이 이스라엘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5월 말 가자지구로 향하는 국제구호선을 공격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론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앙카라 로이터=연합뉴스]
A 이란·시리아서 무기 반입 우려 때문

국제 구호선까지 공격해 비난 불러




지중해에 인접한 가자 지구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과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구성하고 있다. 가자 지구 인구는 150만 명이다. 2005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뒤 2007년 6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파타 세력을 몰아내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마스가 독자 정부를 발족하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가자 지구에 대한 사람과 물자의 출입을 제한했다.



해역도 봉쇄돼 2008년 12월부터 외국선박의 가자 입항이 금지됐다. 이스라엘은 군사물자 등을 수출입 금지 대상 품목으로 정했는데, 문구 등 군사물자와 관계없는 것까지 포함시켜 지나친 조치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2008년 말 23일간에 걸쳐 가자 지구를 공격했다. 인권단체 조사로는 팔레스타인인 1400명이 사망하고, 5300명이 부상했다.



봉쇄 때문에 가자 지구의 경제는 붕괴상태에 놓였다. 실업률은 40%에 달한다. 독자 정부의 재정난도 심각하다. 공무원 3만2000명의 급료는 최근 30% 삭감됐다.



해역 봉쇄로 가자 지구 어선이 조업할 수 있는 어장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어획량은 1850t으로 1997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연료·식료품·건축자재 등이 부족해 주민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가자 남부 라파 지역과 이집트를 잇는 밀수 지하터널이 외부로부터 물자를 공급받는 유일한 생명선이다.



그러나 터널 붕괴 사고가 잇따라 인명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현지 인권단체의 추산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터널 사고로 147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했다.



2008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건물과 시설이 대거 붕괴돼 복구를 위한 자재가 필요하지만 봉쇄 때문에 자재 반입이 제한돼 복구도 지연되고 있다.



유엔과 구호단체 등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가자 지구 봉쇄를 해제하라고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봉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란·시리아로부터의 무기 반입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란·시리아는 하마스 정부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봉쇄가 해제될 경우 가자 지구가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2006년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를 석방하지 않으면 봉쇄를 해제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이스라엘은 구호선 공격 이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자 지난달 20일 육로를 통한 민수품의 가자 반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해역 봉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원물자를 싣고 가자 지구로 향하는 선박은 이스라엘 항구에서 검사 후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시멘트 등 건축 자재의 반입에 대해서는 ‘국제 감독하’에 행해지는 공공 공사나 유엔에 의한 주택 건설용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키르기스스탄



Q 키르기스스탄 민족간 충돌 왜 일어났나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남부도시 오쉬에서 지난달 10일 민족 간 충돌이 빚어져 200여 명이 숨졌다. 실제로는 2000명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왜 이런 충돌이 빚어지나.



A 다수파 키르기스계, 과도정부에 불만

소수파 우즈베크계에 대한 테러로 불똥




지난달 10일 키르기스스탄 남부도시 오쉬에서 발생한 민족 충돌로 시내 곳곳의 건물이 불타고 있다. [오쉬 로이터=연합뉴스]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크계 주민 간 불화가 원인이다. 충돌을 피해 국경을 넘어 인접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한 우즈베크계 난민은 40만 명에 달한다.



이번 사태는 양측 젊은이들의 충돌로 발생했지만,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양자 간의 대립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키르기스스탄 인구는 약 550만 명이다. 유목민족이었던 키르기스계가 약 70%, 농경민족 출신의 우즈베크계는 15% 정도다. 키르기스계가 다수파다.



키르기스스탄은 제정 러시아가 19세기에 병합해 러시아 혁명을 거쳐 구소련의 영토가 됐다. 제정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점령했을 때 이 일대는 많은 민족이 섞여 사는 곳이었다. 그곳을 구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5개 자치공화국으로 분할하면서 민족의식이 생겨나 향후 분쟁의 불씨가 됐다.



각 민족의 거주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국경을 획정한 것이 민족갈등을 잉태한 원인이 됐다. 구소련 말기 민족 대립을 억누르고 있던 크렘린 권력이 약화되자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민족 충돌이 발생했다. 키르기스스탄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수파인 우즈베크계 주민은 오랫동안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며 키르기스계와 대립했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6월 오쉬에서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크계가 충돌해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충돌 이후 양 민족은 긴장 속에서 공존해 왔다. 경제 격차도 갈등을 심화시켰다. 우즈베크계는 소수파지만, 일부 인사가 각종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발언력을 키워 키르기스계의 반감을 샀다. 올 4월 발생한 정변 때문에 양측 간 대립이 더욱 격화됐다.



정변으로 정권을 뺏긴 바키예프 전 대통령은 남부 출신이다. 남부 키르기스계 주민의 대부분이 그의 지지기반이다. 반면 우즈베크계 주민은 바키예프를 축출한 과도정부 지지자가 많다. 정변에 대한 키르기스계 주민의 불만이 지난달 우즈베크계 주민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 대립이 민족 충돌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과도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키르기스계 젊은이들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해 우스베크계 주민을 공격하게 했다는 설도 있다.



이번 충돌로 과도정부가 바키예프 전 대통령 출신지인 남부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키르기스스탄은 민족갈등에 정치 대립까지 겹쳐 앞으로도 정정 불안이 계속될 전망이다.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이슬람 과격파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도 사태를 낙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번 민족충돌이 이슬람 과격파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슬람 인구가 많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도 키르기스스탄에 인접해 있어 중국 정부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을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의 중요 보급로로 활용해 왔던 미국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전 후 이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온 미국과 러시아가 함께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Q 러시아서 왜 이슬람 테러 계속되나




러시아는 3월 말 모스크바 지하철 자폭테러 이후 줄곧 테러 공포에 떨고 있다. 최근 테러는 모두 이슬람 과격파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이슬람 과격파 테러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3월 말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에서 구조대원들이 지하철 연쇄 자폭테러의 희생자들을 운반하고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A 체첸 무력 진압, 종교 탄압으로 비쳐

해외서 자금과 무기 지원 이어져




3월 말 러시아 남부의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서 2건의 자폭테러가 연이어 발생해 경찰관 9명을 포함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에서 연쇄 자폭테러가 터져 39명이 사망한 지 불과 이틀 만의 일이었다. 러시아 당국은 연이은 자폭테러를 남부 북캅카스 지역 이슬람 반군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범인의 대부분은 이슬람 교도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북캅카스 출신이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앙정부에 대한 주민의 불만이 높은 곳이다. 원유 산출 지역임에도 평균소득이 러시아 내에서 최저 수준이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곳이라는 주민들의 불만이 들끓는다.



이 같은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체첸 사태다. 1991년 구소련 붕괴로 각 공화국이 속속 독립하는 가운데 북캅카스의 체첸공화국도 같은 해 독립을 시도했다. 체첸의 오랜 독립 열망이 분출된 것은 1991년 11월이다. 91년 10월 7일 체첸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두다예프는 그해 11월 1일 독립을 선언했다. 체첸의 독립선언에 대해 러시아는 처음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으나, 1994년 12월 무력개입을 단행하는 등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꿨다.



러시아가 강경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체첸이 독립할 경우 분리독립 열기가 러시아 지배하에 있는 캅카스 전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석유·가스 등 자원 매장량이 엄청난 데다 카스피해로부터 연결되는 송유관이 이곳을 지나는 것도 러시아가 체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는 주요한 요인이다.



러시아군은 1994년 12월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공습해 많은 사상자를 냈고, 이듬해 3월에는 러시아군이 그로즈니를 장악했다. 99년에는 2차 체첸 전쟁이 발발해 러시아군의 공습과 탱크부대의 도심 진격으로 그로즈니가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진압은 전 세계 이슬람 교도들에게 종교 탄압으로 비쳤다. 각국으로부터 체첸을 돕겠다는 이슬람 의용병이 밀려들었고, 이들의 참전으로 러시아에 대한 저항 의지는 더욱 고취됐다. 일부 과격세력은 러시아에 대한 테러활동을 본격화했다. 투쟁 목표도 분리독립에서 이슬람 국가 건설로 구체화했다.



러시아 정부는 북캅카스에서 활동하는 과격파를 500명 정도로 보고 있으나, 이 지역이 산악지대여서 소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자금과 무기의 유입도 계속되고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 연쇄 자폭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성명을 낸 무장세력은 “동지가 3만 명”이라고 호언했다. 북캅카스의 열악한 상황이 계속돼 주민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달하면 그들의 호언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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