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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8억원 넘었는데 주변 시세는 5억~6억원”

상품은 팔았는데 돈을 못 받는다면 회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물건 값을 내지 못한 소비자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요즘 수도권 주택시장에 이런 일이 급증하고 있다. 아파트가 다 지어졌는데도 입주하지 못하는 계약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계약자들은 중도금·잔금 연체이자 부담에, 건설사들은 자금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집이라는 상품이 팔렸는데도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셜 리포트] 건설사도 계약자도 미입주에 운다

입주 지연 현상이 두드러지자 건설사들이 입주 마케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GS건설은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완공한 일산자이 아파트 단지에 계약자들을 불러 단지 설명회를 열었다. [GS건설 제공]
◆8개월 입주율이 30%대=10일 오후 9시 인천 영종경제자유구역 내 B아파트 단지. 주말 저녁 가족들이 모여있을 시간인데 10채 중 7채꼴로 불이 꺼져 있다. 2006년 분양 당시 최고 15대 1의 청약경쟁률로 청약을 마감한 단지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단지 계약자 중 429명은 지난 3월 해약했다. 지난해 11월 입주가 시작됐으나 중도금과 잔금 납부를 미룬 채 부실시공과 사기분양 등을 이유로 건설사와 소송을 벌인 끝에 해약한 것이다. ‘반납된 아파트’를 떠안은 건설사는 아직 추가 분양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인근 운남동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계약자의 70% 이상이 입주 이후에 집값이 오르면 팔고 떠날 투자 수요였는데 이제 아파트 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자 애물단지 취급을 한다”고 전했다.



입주 부진의 정도는 앞으로 더 심각하다. 올 하반기 수도권에 입주할 예정인 아파트는 9만3000여 가구. 이 중 70%가량이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이라는 게 문제다. 중대형 아파트는 투자용으로 구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C건설사 관계자는 “하반기에 수도권에서 완공되는 아파트 3000여 가구 중 연내 40%만 입주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가수요가 더 문제=계약자들이 제대로 입주를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새 상품(입주 아파트)과 옛 상품(살던 집) 간의 가격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입주하는 아파트는 2~3년 전 분양 당시 ‘고분양가’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존 아파트 값은 그때보다 10~20% 내렸다.



10일 오전 용인 수지구의 A아파트 단지. 1500여 가구의 중대형 아파트가 5월부터 입주를 시작했지만 단지는 조용하다. 이사 하기 좋은 토요일인데도 단지 내에 이삿짐을 실은 차는 보이지 않았다. 인근 성복동의 이모 공인중개사는 “이 아파트 168㎡형의 분양가가 8억원 이상인데 같은 크기의 기존 아파트 값은 5억~6억원대”라며 “가격 차이가 너무 커 살던 집을 팔고 새 아파트로 이사 오기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해야 하는 실수요자로서는 살던 집을 급매물로 싸게 팔아 잔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재산이 축나는 것이어서 결정이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 주택시장은 장기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택 매수심리 위축으로 거래가 거의 안 된다.



더 악성은 가수요에 있다. 건설사들은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가수요를 끌어들였다. 통상 계약금은 분양가의 20% 선이지만 가수요자의 자금 부담을 없애기 위해 ‘계약금 1000만원’ 식으로 정액제를 도입했다. 분양가의 60% 선인 중도금도 건설사가 이자를 대신 내주는 무이자 조건을 내세웠다. 건설사들은 수요자들에게 “1000만원만 내고 입주 때 집값이 오르면 팔면 된다”고 부추겼다. 지난해 8월 계약금 500만원을 내고 용인시의 112㎡형(분양면적) 아파트를 계약한 권모(41)씨는 “상담한 결과 좋은 투자 기회인 것 같아 두 채를 계약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벌떼분양(텔레마케터를 집단적으로 고용한 무차별 마케팅)을 통해 미분양을 해소한 고양·용인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올 하반기 입주를 시작한다. K분양대행사 사장은 “벌떼분양을 통한 계약자 중 상당수가 입주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상태”라며 “요즘처럼 시세가 분양가를 밑도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심각한 상태에서 이런 계약분은 90% 이상이 허수계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유증 부르는 미입주=빈집이 늘어나면 건설업체는 공사비를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요즘 입주 잔금 회수에 건설사들이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계약금 정액제 등으로 입주 잔금 비중을 늘려놨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분양가의 50% 이상이 입주 잔금인 조건도 있다.



D건설 임원은 “입주가 늦어지면 계약자들의 중도금 대출금에 대해서도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가 금융사에 대신 내야 한다”며 “분양가 총액 1000억원짜리 아파트에 대해 사업자금 대출액 및 중도금 대출액에 대한 지급보증으로 1300억원가량의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형 건설사인 C사는 올 1분기 계약자의 중도금 대출액에 대해 3조3666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다. 모 건설사의 경우 이런 지급보증액과 공사비 등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금액을 합치면 9일 현재 8조9669억원을 짊어지고 있다. 입주가 계속 늦어지면 건설사의 빚이 될 수 있는 돈이다. G건설 관계자는 “올 초 공사를 끝낸 3000억원 규모의 사업장에서 잔금 9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계약자들의 고통도 크다. 2008년 인천의 142㎡형(분양면적) 아파트를 계약한 진모(50)씨는 정식 입주기간이 끝난 지난달 320만원의 이자를 내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중도금 대출금은 6개월 상환 연기를 해 정상이자(월 120만원)가 나왔지만 잔금에 대해서는 연 15%의 연체이자가 매겨진 것이다. 용인의 한 아파트를 계약한 유모(35)씨는 “중도금 대출 이자를 못 낼 경우 신용불량으로 직장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듣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말했다.



◆“할인 등 자구 노력해야”=입주 잔금으로 수도권에만 수조원이 허공에 뜬 상태가 되기 때문에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건설산업연구원 이승우 연구위원은 “연체이자를 물고 있는 계약자들이 정상적으로 소비를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실물 경기 회복에 큰 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양도소득세 한시면제 제도를 다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출구전략을 쓰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런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해양부 주택정책과 진현환 과장은 “분양가를 비싸게 책정해 많은 이익을 남기려던 건설사의 잘못도 있으므로 분양가 인하 등의 자구 노력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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