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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축구장에서 돈 쓰기

네덜란드의 프로축구 리그에는 양대 명문 클럽이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한때 몸담았던 PSV 에인트호번과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하는 아약스다. 나는 아약스 팀의 홈경기를 직접 관람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출장을 갔을 때였다. 경기 수준이 좀 더 높고, 관중의 수가 좀 더 많고, 관중의 열기가 좀 더 뜨거웠지만 그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진짜 인상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다. 우선 ‘기념품 숍’이라 부르기엔 너무 큰 규모의 매장에는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상품이 있었다. 정말 다양한 디자인의 의류·응원용품·생활용품·학용품·기념품 등이 있었고, 많은 팬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었다.



하프타임에 찾아간 매점에서의 일은 더욱 기억에 남는다. 맥주를 주문하고 현금을 냈더니 점원이 현금은 받지 않는다며 카드를 내란다. 참 이상한 매점이라고 생각하며 신용카드를 꺼냈더니 점원이 빙긋 웃으면서 반대편 벽을 가리켰다. 경기장 내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약스 카드’라는 걸 사야만 했다. 일종의 선불카드로, 10유로에서 100유로 사이의 여러 종류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 값을 치를 때는 그 카드를 단말기에 한 번 긁기만 하면 된다.



이방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여러모로 유용한 방식이었다. 팬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혹시 경기 중에 잠깐 나온 경우라면 1분도 아깝지 않겠는가.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구단입장에서는 수수료 비용도 챙길 수 있고, 더 많은 팬을 경기장으로 모을 수 있고, 팀에 대한 충성심도 높일 수 있다. 카드에 남은 돈을 쓰기 위해서라도 다시 경기장을 찾을 것이고, 그 카드는 팬의 지갑 속에 늘 간직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10유로 카드를 사서 8유로를 썼다. 2유로를 쓰기 위해 다시 그곳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디자인도 예쁜 그 카드를 나는 ‘2유로짜리 기념품’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는 외국에 있는 경기장에 꽤 많이 가 보았다. 영국·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미국·일본 등등. 직접 경기를 관람한 적도 많고,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프 누(Camp Nou)’처럼 경기는 못 보고 경기장 구경만 한 곳도 많다. 국내 경기장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돈을 쉽게, 많이, 기꺼이 쓰도록 유인하는 시스템’의 존재 유무였다.



해당 팀의 팬이 아니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솟아나는 멋진 숍, 구단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박물관, 경기장 투어, 경기 관람과 연계된 각종 패키지 상품, 커다란 우승컵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게 하거나 유명 선수들과 함께 찍은 것처럼 보이는 합성 사진을 만들어주는 서비스 등 너무 많은 ‘유혹’이 외국의 경기장엔 가득했다.



우리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할 때, 우리 경기장들은 너무 볼거리도 없고 마케팅 마인드도 부족하다. 지방자치단체든 구단이든 모기업이든, 이런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들이 좀 더 많은 돈을 축구장에서 써야 다음 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도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박재영『청년의사』편집주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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