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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흰 가운 벗으면 재즈 보컬, 유방암 최고 명의 백남선 건국대 병원장

푸른빛 네온 조명의 재즈클럽. 자줏빛 나비 넥타이의 사내가 작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첫 곡으로 토니 베넷의 감미로운 곡을 골랐다.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마음(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의 가사가 중후한 음색을 타고 클럽 구석을 휘돌았다. 곁에선 한국의 리처드 클레이더만(피아니스트)으로 불리는 임학성씨가 건반을 쳐줬다. 클럽 곳곳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가수인가 봐.” 그러나 남자의 직업은 의사. 유방암 분야의 명의(名醫)이자 세계적 권위자인 백남선(63) 건국대병원장이었다. 내친김에 그는 지그시 눈감고 매트 먼로의 ‘떠나가 주오(Walk away)’와 조용필의 ‘상처’까지 감칠맛 나게 뽑았다. 노래하는 병원장. 재즈 보컬에서 ‘치유의 샘’을 찾는 그를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클럽에서 만났다.



“와이프 위암 수술, 직접 메스 들었죠 … 다른 명의 있었지만 아내는 내가 해주길 원했어요”

노래를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환자와 직원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는 백남선 원장이 서울 논현동의 임학성 재즈 클럽 무대에 섰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노래를 마친 백남선 원장이 기자에게 맥주잔을 건넸다. 저녁 메뉴는 배달시킨 치킨. 그는 이날 70명 넘는 환자를 봤다. 병원장인데도 현장은 꼭 지킨다. 피곤으로 술 생각이 날 법한데도 맥주 몇 잔이 끝이었다.



● 음주가무라고 하잖습니까. 노래와 술은 따라다닐 때가 많은데요.



“항상 내일이 있잖아요. 제가 별명이 ‘신데렐라’예요. 회식하다 11시만 되면 소리 없이 사라져요. 아침 6시20분에 병원 도착해서 세미나·회진·수술을 하려면 체력이 버텨줘야죠.”



● 가사 모니터를 안 보던데요, 레퍼토리도 다채롭고요.



“제 애창곡 중 하나인 ‘떠나가 주오’는 노래방에서 1096번이죠. 제가 즐기는 금영 기계로요. 노래들을 워낙 많이 부르니 가사며 번호를 외웠어요. 병원 회식 때도 노래방에 잘 가요. 술이 빨리 깨거든요. 다음 날 몸이 상쾌하죠. 최근에 배운 노래는 박강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와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예요.”



● 솜씨가 프로급입니다. 따로 노래를 공부했나요.



“배우진 않았어요. 그냥 많이 연습하고 그랬죠.”



※그는 “암수술도 연마를 계속해야 실력이 생긴다”고 했다. ‘천부적 재능=명의’의 단순 공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다고 했다. 서울대 외과 치프 시절에 36시간 동안 11명을 수술한 그의 ‘전설적 기록’도 그래서 생겼다.



● 원래 무대 체질인가 봅니다.



“사실 노래에 천착한 건 중학생 때의 영어 때문이었어요. 캐나다 선교사가 영어를 가르쳤죠. 근데 노래로 문법을 배웠어요. ‘새드 무비(Sad movie)’ 가사에 ‘Sad movies always make me cry~’라는 게 있잖아요. 주어·술어·목적어·보어 구조를 익힐 수 있어요. 상황에 따라 단어만 바꾸면 되죠. 그렇게 노래를 즐겼어요. 자연히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아했죠. 제가 원래 낙천적이에요.”



※백 원장의 취미는 4가지다. 재즈 부르기, 시 읽기, 골프, 외국어 배우기다. 일어와 중국어도 노래부터 배웠다. 그에겐 외국어 노래가 ‘생존 필살기’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의사들하고 학회 하고 송별회 하면 꼭 노래를 시켜요. 이럴 때 한 곡조 뽑아 좌중을 휘어잡지요.”



● ‘노래하는 병원장’ 별명은 누가 붙였습니까.



“지난해 7월 병원장 취임하고 며칠 뒤 병원의 보컬 그룹이 첫 공연을 했어요. 직원들이 제가 노래 좋아한다는 걸 알고 출연을 요청했지요. 수락했어요. 제가 원래 좀 뻔뻔해서….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마음’을 불렀는데 동영상으로 전파되면서 그런 별칭이 생겼어요. 요즘엔 대학 총장도 행사에서 춤추고 그러잖아요. 위신만 따지면 뭐 합니까.”



● 젊게 사시니 얼굴도 밝나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도 많은데 무슨 재즈냐’고 해요. 저는 달라요. 우리가 사는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죠.”



※여기서 백 원장은 ‘성공의 기술’을 얘기했다.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죠.” 그는 인생을 ‘순간순간의 적분(積分)’에 비유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어 여사의 글이 있잖아요. 어제는 역사고(Yesterday is history), 내일은 알 수 없고(Tomorrow is mystery), 오늘은 선물(Today is gift)이라는.” 그는 “지금 시간이 주어졌을 때 빈둥대면 안 돼요. 애쓰는 그런 시간이 적분하듯 차곡차곡 쌓여야 성공도 가까이 오죠.”



● 인생의 많은 시간을 노래에 썼는데, 의술엔 어떤 도움이 됐나요.



“의사엔 ‘소의(小醫), 중의(中醫), 대의(大醫)’가 있다고 봐요. 유방암만 잘 치료하면 소의죠. 중의는 환자의 마음까지 봐주는 거고요. 이런 능력에 병원장으로서 조직까지 잘 다독이면 대의라고 볼 수 있겠죠. 저는 노래로 제 마음을 추스르고 환자와 직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를 씁니다.”



● 요즘 젊은이 중에 그런 의사가 있습니까.



“너무 ‘이지 고잉(easy going)’하려고 해요. 지금은 피부과와 안과 가려고 난리지만, 그때는 다들 외과 가려고 했죠. 제가 나온 서울대 의대 100명 중에서 1~20등까지만 외과 갈 수 있었어요. 옛날에는 외과의사가 내과의사 따귀도 때리고 그럴 정도였죠. 하하. 지금은 반대예요. 내과의사의 분과가 많고 숫자도 많으니 토론으로 결론지을 때 외과가 게임이 안 돼요.”



● 외과의사인데도 음식을 깊게 연구한 이유는



“사망원인 중에 암이 가장 많지요. 평균 수명이 남자는 76세, 여자는 83세죠. 그런데 남성 3명 중 1명이 암에 걸려요, 여성은 4명 중 1명꼴이고요. 1년에 16만 명이 걸리죠. 그런데 유방암에 걸리면 수술한 뒤 일주일 지나면 퇴원하고, 약물치료도 6개월이면 끝나요. 그럼 암환자가 제일 궁금해하는 게 뭘까요. ‘어떻게 뭘 먹어야 되느냐’예요.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이 약’이라고 했죠. 제가 일본 국립 암센터에서 1년간 음식과 식습관을 연구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는 잘못 알려진 상식도 많다고 했다. “예컨대 토마토는 날것으로 먹어야 비타민C를 제대로 섭취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올리브유 같은 데 튀겨서 먹어야 더 좋아요. 지용성 비타민이라 기름에 튀기면 흡수력이 더 높아지거든요.”



● 오늘 아침 원장님의 식단을 공개해 주시죠.



“흠, 과일 좀 갈아서 먹었고요. 밥은 꼭 먹죠. 생선도 조금 굽고요. 위를 도와주려면 짜고 딱딱한 음식 안 먹는 게 중요해요. 맵고 뜨거운 것 조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죠. 대장암은 이론적으론 하루 29g의 섬유질을 먹으면 막을 수 있어요. 여수 매생이 같은 게 좋죠. 서양인들은 고기와 치즈를 많이 먹어서 변을 매일 잘 못 봐요. 유럽 가봐요. 변이 황토색 비슷해서 쫀득쫀득해요.”



● 이력을 보니 ‘세계 100대 명의’라고 돼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가 2006년에 원장님을 뽑았다는데 비결이 뭡니까.



“뭐든지 1등을 하려고 매달렸지요. 아까 얘기한 수술 기록도 그래서 나왔고요. 골프를 좋아하는데 새벽 3시30분에 나와서 육군사관학교 골프장 앞에서 기다렸어요. 1년을 그렇게 천착하니 78타까지 치더라고요. 이후 원자력 병원장 하면서 다시 100타로 떨어졌지만요. 골프는 인생이에요. 18홀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쳐도 똑같이 가는 게 없죠. 만점도 없고요. 애쓰는 만큼 나아지지요. 의술도 마찬가지예요.”



● 한국 최초의 유방암 환자 가슴보존술도 그래서 나왔던 거군요.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학문을 하건, 사업을 하건, 여행을 하건 해외에 많이 다녀보라는 거죠. 옛날에 미국 암학회에 갈 때면 늘 2가지 얘기만 하더라고요. 폐암과 유방암이었죠. 한국도 곧 그런 시대가 될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유방암학회를 만들었고요. 이탈리아 국립 암센터 의사의 유방보존술을 보고 1986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시도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죠. 처음엔 선배들이 ‘나이도 어린 놈이 뭐 그런 수술을 하느냐’고 했지만 이젠 널리 퍼졌죠.”



● 아내의 암 수술을 직접 했다고 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위 내시경을 했더니 불행 중 다행으로 위암인데 아주 초기였어요. 위암 수술 권위자이자 제게 박사학위를 주신 김진복 선생님이 계셨지만 아내가 원해 결국 제가 메스를 들었어요. 이젠 완치됐죠. 아내 배 째는 사람은 없어요. 기록에도 없죠. 의료계에선 ‘VIP 신드롬’이란 게 있거든요. 더 잘 수술하려다 합병증 같은 게 생기는 거죠.”



● 병원장 일은 힘들지 않습니까.



“의사가 400명이고 간호사를 포함한 직원이 2100명이에요. 건국대 르네상스를 이룬 김경희 이사장의 부름을 받았으니 열심히 해야죠. ‘스타 닥터’를 키울 겁니다. 규모로 ‘톱 5’에 못 들어가니 유명한 의사부터 확보해야죠. 실력파 의사를 통해 기초적인 병원 시너지를 늘리는 ‘톱 다운’ 전략이에요. 재즈 노래처럼 술술 풀렸으면 좋겠어요.” 






j 칵테일 >> 군대 안 가려고 육사 지원했던 괴짜



잘 나가는 엘리트 의사. 백남선 원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겪었던 ‘인생의 쓴맛’은 없었을까. 대화는 ‘재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60년대 중반 고교 졸업을 앞두고 육군사관학교에 붙었어요. 그런데 안 갔죠.” 이유가 재밌다. “1년 있다가 담배 피우고 술 먹다 걸려서 퇴교당하려고 했죠. 그러면 바로 군대를 갔다 온 것으로 제대 처리가 됐거든요.” 그런데 그의 괴짜 작전에 걸림돌이 생겼다. 제도가 바뀌어 퇴교되면 하사관으로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방향 선회. 서울대 공대를 마음에 품었다. “당시 의대를 넘어 최고였죠.” 그러나 결과는 낙방. 충격을 받아 친구인 최현섭(전 강원대 총장)씨와 석 달간 무전여행을 했다. “정신적인 방황의 시기였어요.” 재수를 해서 결국 서울대 의대에 갔다. 그러나 졸업 뒤 군의관으로 강원도 원통의 205 야전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그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군대 피하려다 원통에서 된통 근무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론 의사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이 술술 풀렸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생 사는 게 원래 새옹지마죠, 뭐.”



백남선 원장이 제안한



‘건강하게 오래 사는 10가지 방법’




① 마늘을 하루 3~6쪽 섭취하라

②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라

③ 정제하지 않은 곡물 섭취를 늘려라

④ 생선·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어라

⑤ 소금을 적게 먹어라

⑥ 노래와 여행을 즐겨라

⑦ 적당량의 와인을 마셔라

⑧ 하루 2잔 정도만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많이 마셔라

⑨ 미량 무기질인 셀레늄을 많이 섭취하라

⑩ 배우자를 신중히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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