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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김영철의 차 그리고 사람] 이순신1, 세종600, 내아기1 … 이런 차 번호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1960년대 후반, GM대우의 전신이었던 신진자동차는 일본의 도요타와 기술 제휴를 맺고, ‘반 해체된 상태(Semi Knocked Down)’로 코로나·크라운·에이스·퍼블릭카 등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 판매했다. 재미있는 것은, 신진자동차가 2년 동안 생산한 차량의 수가 2만여 대를 넘었는데, 그중에서 흰색과 빨간색 차는 한 대도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흰색과 빨간색을 선호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시 흰색은 백차(白車)라고 불리던 흰색 경찰 순찰차와 혼돈될 수 있다고 해 정부에서 규제했고, 빨간색은 소방차와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단지 차량 색상이 빨갛다고 어떻게 소방차로 오인될 수 있는지 지금 입장에서 보자면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또 경찰차에는 지붕 전체를 덮다시피 한 큰 경광등이 사이렌과 함께 얹혀 있고, ‘경찰’ ‘POLICE’ ‘警察’ 로고가 차체 앞뒤는 물론 옆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데 어떻게 흰색 승용차가 경찰차로 오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소방차가 빨간색인 것은 그 색깔이 소방차의 상징색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색보다 눈에 잘 띄고 식별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차는 빨간색을 칠해서 눈에 잘 띄면 왜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셈이다. 아무튼 그런 법규가 6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 20여 년 동안 시행되어 오다가 86년 대우자동차가 빨간색 르망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폐지되고 말았다. 흰색에 대한 제한은 백차가 사라지면서 저절로 흐지부지돼 버렸다.



아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물론 지금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빨간색 차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빨간색이 다른 색 차들에 비해 교통 사고율이 적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미적인 감각보다는 안전을 위해서도 빨간색 차를 선호한다. 만약 빨간색 차와 흰색 차의 생산을 금하는 법규를 만들었던 우리나라 관리들이 그 시절 서방 국가를 방문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국민은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빨간색이나 흰색 차량이 허용된 후에도 그 색상을 찾는 고객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검은색 차량을 주로 선택했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액센트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보라색을 소개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시큰둥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오히려 튀는 색상을 원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보수적 성향은 차량 색상을 선택하는 데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차량 번호를 고르는 데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고 외우기 쉬운 ‘서울1500’ 같은 차량 번호는 피한다. 5공화국 시절, 사정기관이 룸살롱이나 요릿집 근처에 주차해 놓은 차량의 번호를 기록해 상부에 보고하던 관행 때문에 그때부터 많은 사람이 외우기 쉬운 번호는 피하고 헷갈리는 번호를 더 선호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무슨 이유에서든 은밀한 곳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더더욱 외우기 쉬운 차량 번호나 눈에 띄는 색상은 멀리했다.



그러나 영국·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좋은 차량 번호를 팔고 사는 거래소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알파벳이 섞인 번호, 길조가 있다는 숫자로 된 번호와 한 자리, 두 자리 번호 등은 금값처럼 비싸게 거래된다. 차량 번호를 다루는 주간지가 있을 만큼 그 시장이 탄탄하다.



HKG 1(Hong Kong 일번), WAR 2(2차대전), RR 10(Rolls Royce 10) 같은 번호가 있다면 몇천만원에라도 쉽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런 나라에서는 차를 판매할 때, 차량 번호를 따로 흥정한다. 즉 차량 번호만이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차량 번호 잡지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Edward Targa’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니셜이 붙은 번호 ET10을 영화 ‘ET’가 개봉되기 전에 구입했는데, 영화 ‘ET’가 흥행하자 그의 차량 번호 값이 15배로 뛰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차량 번호를 차와 달리 상품화한다면 어떨까? 명품100, 남산123, 이순신1, 세종600, 내아기1, 커플69 등등…. 이런 차량 번호를 붙인 차들이 거리를 누빈다면 거리 분위기는 한참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명품100’을 운전하는 사람이야 체면이 있는데 이리저리 끼어들며 난폭 운전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누가 ‘내아기 1’ 차를 윽박지르겠는가. 번호가 자산이 된다면 세원도 생길 것이고 정든 차량 번호 때문에 차를 더 아끼고 더 오래 소유할 것이다. ‘월드컵008’이라는 번호가 있다면 지금 당장 이 번호에 큰돈을 투자하지 않을까.



가야미디어 회장 (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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