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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리투아니아 여인 1-1

“눈에 익은 별난 필체가 보낸 이를 퍼뜩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짐작이 다시 오래 잊고 있었던 어떤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눈앞에 떠오른 목소리의 임자는 30년의 아득한 세월 저쪽 갈색 눈에 금발머리를 땋아 내린 이국 소녀였다.”



프롤로그



새로 이사한 내 집을 알아둔다는 핑계로 낮부터 찾아와 어물거리던 극단 스태프들이 모두 돌아가자 아파트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한때는 내게도 혼자 지내는 아파트의 고즈넉함이 평온이나 홀가분함 같은 말과 동의어로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삶이 점차 대책 없는 휴일처럼 변해가고 기다림도 그리움도 없는 나날이 반복되면서 혼자 산다는 것은 오히려 외로움이나 불편 같은 통속적인 추정에 더 가까워졌다. 나는 그런 느낌에 슬그머니 애조가 끼어드는 것이 싫어 저물어 오는 아파트 안을 서성거리며 그 어울리지 않는 감상을 다스릴 일거리를 찾았다.



무슨 무빙 익스프레스라던가 하는 현대식 이름의 이삿짐센터에 맡겨 포장이사라고 하는 방식으로 짐을 옮긴 터라, 약정대로라면 모든 게 전에 살던 아파트의 그 자리로 옮겨앉아야 했다. 그러나 이전 아파트보다 평수를 여남은 평 줄인 바람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것들이 종이박스에 포장되어 좁은 다용도실 바닥을 덮고도 모자랐던지 거실 한 모퉁이에도 두어 개 쌓여 있었다. 대개는 이전 아파트의 넓은 거실 양쪽에 있던 붙박이 장식장 안이나 그 선반 위에 놓여 있던 것들인 듯했다.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새 아파트에서 혼자 보내게 되는 첫날 밤의 외로움과 적막감을 잊을 일거리를 찾아낸 안도감까지 느끼며 거실 모퉁이에 쌓여 있던 종이박스들 중에서 맨 위의 것을 내려 테이프를 뜯었다. 안에는 지난날의 여러 여행지에서 무슨 의무처럼 사와 집안 여기저기 벌려두었던 모조 골동품이거나 장식물, 기념품 같은 것들이 플라스틱 공기방울 패드에 쌓여 있었다. 주로 이전 아파트의 붙박이 장식장 위에 놓여 있던 것들이었다. 한때는 그것들을 샀던 여행지를 떠올리고 추억의 매혹에 젖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모든 게 부질없는 삶의 군더더기 같았다. 기회가 오는 대로 내가 그것들을 사모을 때와 같은 열정을 아직도 지닌 이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다시 덮개를 닫고 다용도실 안쪽에 쌓아두었다.



두 번째 박스는 첫 번째보다 가벼웠는데, 열어보니 몇 권의 앨범과 함께 사진이 가득 든 여러 개의 비닐 봉투였다. 역시 이전 아파트 장식장 안 선반과 서랍에서 나온 것들인 듯했다. 나는 먼저 그 엄청난 사진의 양을 보고 알 수 없는 낭패감 같은 것을 문득 느꼈다. 아마도 내 영상이 들어 있는 사진들일 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던가 -애써 눈감아 오던 자신의 허물을 어쩔 수 없이 시인하게 된 때와 같은 심경으로 그렇게 한탄하다가 다시 후회처럼 덧붙였다. 이렇게도 요란스럽게 복사하여 저장해 둘 만한 일이 내게 그렇게 많았던가. 무엇을 잡아두고 누구에게 전하려고 그 소동을 벌였던가….



그러자 나는 장식품 박스를 열었을 때보다 더 다급한 마음이 되어 앨범과 사진이 든 봉투들을 거실 바닥에 꺼내 놓았다. 앨범은 디자인이 낡은 디자인으로 보아 오래전의 사진들을 모은 것 같았고, 봉투에 든 사진들은 그 뒤에 찍은 것들을 두서없이 쓸어담아 놓은 듯했다. 종이박스 밖으로 꺼내자 몇 배나 부풀어 오르는 듯한 사진들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전보다 더욱 가차없는 처분의 결의를 굳혔다. 모두가 전혀 쓸모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많다. 뒷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진 더미를 내밀었을 때 그들은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해할까. 더구나 내가 속절없이 소비해버린 시간의 파편들이 영상으로 잡혀 낯 모르는 사람들의 무성의한 처분에 맡겨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나 스스로 미리 처분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나는 갑자기 몇 십 년을 더 늙어 죽음을 앞둔 늙은이처럼 비장감까지 느끼며 사진이 가득 든 봉투를 하나씩 거실바닥에 쏟아 한 장 한 장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생살부라도 작성하듯 남길 것과 없앨 것들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무엇 때문인가 뒤틀려버린 심사 탓인지 선별은 터무니없이 엄혹했다. 대략 삼백 장은 되어 보이는 사진 봉투 하나를 다 뒤졌는데도 내 삶의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골라낸 사진은 스무 장도 되지 못했다.



거기다가 없애기로 작정하고 미뤄둔 사진들 가운데 어떤 광경들이 언뜻언뜻 상기시킨 삶의 비참과 희극은 어떤 결연함까지 부추기며 그 엄혹한 선별을 이어가게 했다. 나는 무자비한 판관처럼 두 번째 비닐 봉투를 열고 그들의 생사를 갈라나갔다. 그런데 몇 장 살피기도 전에 몹시 자극적이면서도 내력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되었다. 유럽 어디쯤인 듯한데, 들판에 솟은 높지 않은 야산에 크고 작은 수많은 십자가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광경이 묘하게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섬뜩한 느낌을 누르며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멀리서 전경(全景)을 찍은 듯 웅크린 고슴도치의 등 같은 야산 등성이에 가시처럼 보이는 것이 크고 작은 십자가라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뿐, 그곳이 어디이며 어찌하여 그런 곳이 생겨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이나 그 사진을 가로 세로로 돌려보며 뒷면까지 뒤집어 보았으나 더 찾아낸 것은 사진 오른쪽에 작은 숫자로 찍혀 있는 ‘1994. 5. 15’라는 촬영일자가 고작이었다.



마침내 그 사진에서 무얼 더 찾기를 단념한 나는 그 사진이 들어있던 비닐 봉투에 기대를 걸고 남은 사진을 방바닥에 한꺼번에 쏟아보았다. 그러자 별로 애쓸 필요도 없이 그 사진과 이어진 것임에 틀림없는 사진 석 장이 더 나왔다. 한 장은 그 산의 전경이라도 바짝 다가가 찍은 것이라, 그 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이었다. 입구에서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이 판자로 덮여 다듬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산은 인공으로 조성된 십자가 숲이지만 무덤이나 다른 기념물이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진 두 장은 각기 다른 곳에서 근접하여 찍어 부분적으로 확대한 것으로, 그중 하나는 등신대(等身大)보다 훨씬 커 보이는 십자가 고상(苦像)을 중심으로 대밭처럼 솟은 크고 작은 십자가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장석까지 박은 전봇대만 한 십자가에서, 나무젓가락을 십자로 묶어 꽂아둔 것처럼 희고 가늘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십자가까지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는 광경이 한번 더 사람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로자리오(묵주)를 감아 쥔 등신대의 성모상을 중심으로 꽂혀있는 또 다른 크고 작은 십자가들인데, 그 삼립(森立)이 그걸 세운 사람들의 애절한 염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이어진 석 장의 사진을 더 살피자 비로소 나는 그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는 십자가 동산의 성격을 짐작할 것 같았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염원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십자가 숲. 그러나 그게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째서 그 사진이 그 비닐 봉투 속에 석 장씩이나 더 끼어있게 되었는지는 영 알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나는 다시 그 석 장의 사진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꼼꼼히 살피게 되었는데, 거기서 비로소 그 십자가 언덕으로 다가가는 첫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두 장보다 크기가 배나 되는 십자가 고상의 사진 뒷면에 흘려 쓴 영어 두 마디였다.



‘십자가들의 언덕(Hill of Crosses), 샤울레이(Siauliai)’.



서명은 없었으나 눈에 익은 별난 필체가 보낸 이를 퍼뜩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짐작이 다시 오래 잊고 있었던 어떤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잘 들어맞는 비유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서민대중의 애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저들의 십자가 언덕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낭당 돌무더기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듣기로 그 언덕에 처음 십자가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저 나라 사람들이 폴란드 독립운동에 호응해서 일으켰던 반(反)러시아 민중봉기 이후라더군요. 그때 러시아군에게 학살되었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간 사람들을 애도하고 무사한 귀환을 빌며 십자가와 성상을 세우기 시작하였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1918년 독립전쟁 때 다시 독립의 염원을 빌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십자가들이 더해졌고, 1920년대 마침내 독립을 성취하게 되면서 민족의 성지처럼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날 때 그 나라를 다시 병합한 소련은 그 십자가들의 언덕을 없애버리려고 갖은 수를 다 썼다더군요. 그 언덕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중장비로 십자가들을 밀어버린 적도 있으나 누군가에 의해 다시 십자가들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91년 저들이 소련에서 독립하면서부터는 국가가 성역화 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대요. 요즘은 그 나라 사람이 아닌 관광객들까지 십자가를 꽂거나 걸어 머지않아 거기 있는 십자가가 백만 개를 넘어설 거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나 이어 내 눈앞에 떠오른 그 목소리의 임자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90년대 말의 성숙한 여인이 아니라, 30년의 아득한 세월 저쪽 갈색 눈에 금발머리를 땋아 내린 이국 소녀였다.



삽화=백두리/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 2008 삼성 ‘It sens’ color skin contest 대상 수상

● 2005 한국출판미술대전 ‘한국출판미술협회장상’수상.

북 디자인 도움말=이경희 (김영사 디자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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