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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글쟁이의 비겁함

기자 세계에서 한가한 출입처를 맡으면 ‘물 먹었다’고 표현한다. 23년 기자생활 동안 두 번 그런 일을 겪었다. 2000년 말 해양수산부를 담당했다. 당시 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적으론 썩 괜찮은 장관이었다. 해양부 직원들도 역대 최고의 장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노 장관이 하루는 점심 자리에서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조폭 언론’을 입에 올렸다. 김대중 정부는 한창 신문과의 전쟁 중이었다. 현장에 있던 필자는 간단하게 처리했다. 그의 긴 이야기 중 한 토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없던 신문이 문제였다. 노 장관이 안 한 발언까지 포함해 1면에 크게 보도하면서 사달이 났다. 호된 반격이 시작됐다. 이 싸움을 발판으로 노 장관은 대통령까지 됐다. 나중에 그의 탁월한 정치 본능에 무릎을 쳤다.

2002년 서울시청을 맡은 것도 쓰라린 경험이다. 2년간 이명박 시장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현대건설 출신의 그를 ‘삽질의 달인’으로 오해한 건 당연했다. 대형 사업들이 추진되면서 절간 같던 기자실은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 기자들은 ‘보도일꾼’ 신세가 됐다. 언론들은 의심하며 처음부터 각을 세웠다. 청계천 복원은 ‘무모한 도전’, 대중교통 개편은 ‘취임 2주년의 정치 이벤트’로 비판했다. 지금 돌아보면 다 틀렸다. 이 시장의 도전이 옳았다.

이런 트라우마 탓일까. 노무현의 세종시와 이명박의 4대 강 사업을 다룰 땐 조심스럽다. 자료를 훑고 전문가 의견을 구하지만 갈피를 잡기 힘들다. 현장까지 내려가도 소용 없는 일이다. 용감하게 한쪽 편을 들 자신이 없다. 다만 세종시는 ‘+α’를 얹어야 할 듯싶다. 세종시를 복기해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에 이 대통령이 ‘정책’으로 도전했다 역풍을 맞은 느낌이 든다. 이는 절대 왕조 때도 분명한 금기(禁忌)였다. 선왕(先王)의 이름을 파내고 자신의 이름으로 덧칠하는 건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행위다.

현장에서 보는 4대 강 사업의 느낌은 다르다. 대부분의 공사가 기대 이상의 친환경 첨단 공법으로 진행 중이다. ‘환경 파괴’란 비난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오히려 세계 최고의 한국 토목 기술에 대한 모독처럼 들린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논리 역시 지나치게 단순하다. 고인 물인 바이칼호는 세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한다. 고인 물인 일본 최대의 비와코(琵琶湖)도 마찬가지다. 오염에 신음하다 인간의 노력으로 1급수가 됐다. 이런 현상을 4대 강 반대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수질오염학 교과서에는 수질은 유속(流速)보다 기본적으로 오염원 차단과 수량에 의해 좌우된다고 나와 있다.

세종시와 4대 강은 둘 다 20조원이 넘는 과분한 사업이다. 대선 공약이 낳은 사생아다. 또한 이 둘 모두 우리 시대의 바벨탑인지 모른다. 서로 다른 정치적 언어로 상대방을 욕하면서 자신들의 바벨탑은 열심히 쌓아 올리는 것부터 닮았다. 그렇다고 무너뜨리기엔 너무 늦었다.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4대 강 사업은 36%나 진행됐다. 또다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되돌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글쟁이의 비겁함이 묻어난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솔직히 어느 쪽이 맞는지 헷갈린다.

지난 토요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4대 강 반대’ 집회가 있었다. 날카로운 스피커 소리가 늦은 밤 도심을 헤집고 다녔다. 오늘 신문에는 ‘4대 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입니다’는 정부 광고가 실렸다. 서로 다른 정치적 언어로 맞서는 우리 사회의 민얼굴이다. 이미 여론조사조차 믿기 어려운 세상이다. 정치권의 날 선 목소리에 눌려 진짜 전문가들은 침묵을 지킨 지 오래됐다. 어제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 40주년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하나로 역사적 재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세종시와 4대 강이 제2의 경부고속도로가 될지, 돈만 먹는 시화호 운명이 될지 누구도 자신하기 어렵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렇다면 소모적 논란을 접고 지켜보았으면 한다. 노무현의 세종시와 이명박의 4대 강도 40년 뒤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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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