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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대표 정대세 단독 인터뷰

6일 소속팀 훈련장에서 인터뷰 중인 정대세 선수. [가와사키=오종택 기자]
전 세계를 환호와 탄성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남아공 월드컵이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열광의 한복판에서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울린 젊은이가 있다. 한국 국적의 북한 대표 스트라이커 정대세. 세계 최강인 브라질 문전을 휘젓고, 그 기량을 인정받아 독일 이적이 결정된 겁 없는 청년이 왜 그토록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까. 6일 소속팀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가와사키 훈련장에서 정 선수를 만나 의문을 풀어봤다.

-브라질전에 앞서 국가가 연주될 때 눈물을 흘린 이유는 뭔가.

“나도 모르게 자연히 나오는 게 눈물이라 설명을 하긴 어렵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운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동아시아 대회 때 내가 드디어 북한 대표(※정대세는 북한을 공화국 또는 조선으로 지칭했다)가 되어 일본과 겨룰 때도 식전 국가 연주 때 눈물을 쏟았다. 목표 성취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서였다. 브라질전에서 운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원래 눈물이 많은 성격이다. 이번 월드컵 이후에는 사인을 할 때 내 얼굴에 아예 눈물을 그려 넣고 있다.”

- 그때 누구 얼굴이 먼저 떠올랐나.

지난달 16일 브라질전에 앞서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정대세 선수. 정 선수는 “원래 눈물이 많다.”고 말했다.
“역시 어머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3남매를 다 대학 보내느라 힘이 드셨는데 그때 관중석에 와 계셨다. 보이진 않지만 어머니도 울고 계시려니 생각했다. 또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참 난관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서 나고 자란 정 선수가 성장 환경이 다른 북한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말을 100% 이해할 수 없어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안 돼 방황한 적도 있었다. 한때는 북한의 미드필더들이 일부러 나에게 연락(패스)을 안 하고, 홍영조 선수에게만 공을 주면서 나를 따돌린다고 생각했다. 모두 다 나의 오해고 피해망상이었지만…. ”

-포르투갈전에서 수중전용 축구화를 신지 않아 대패했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사실인가.

“북한에선 미끄럼 방지용 스파이크를 ‘쇠봉알’이라 부르는데 수비수는 한 번 미끄러지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쇠봉알 박힌 수중전 축구화를 신었다. 하지만 공격수는 신지 않은 사람이 많았고, 나도 전반에는 신지 않다가 하도 미끄러져서 후반에 바꿔 신었다. 북한 대표팀에 수중전용 축구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적으로 부족했고 성능이 썩 좋지 않았다.”

-축구선수로 대성하기 위해서라면 한국 대표가 되거나 귀화해 일본 대표가 되는 길도 있지 않나.

“확실히 여건이 좋은 한국 대표나 일본 대표팀이 부러울 때가 있긴 있다. 하지만 내가 축구를 배운 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조선학교에서였다. 조선의 대표선수가 되는 게 당연한 목표였고 그것을 위해 매진해 왔을 뿐이다. 금전적 보상이나 좋은 환경은 프로 팀에서 추구하면 된다고 본다. 내게 있어 국가대표는 돈이 아니라 신념을 확인하는 무대다.”

-이번 월드컵에서 무득점에 그쳐 분하지 않나.

“한 경기에 한 번쯤은 절대적 찬스가 온다. 이걸 살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실력이다. 무득점으로 끝낸 것은 정신력 부족이라 생각한다. ”

월드컵 이후에는 사인에 아예 눈물을 그려 넣고 있다”고 말했다.
-정 선수에게 조국은 한국인가 북한인가. 그리고 조국은 어떤 의미를 갖나.

“조국은 나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북한이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고 이런저런 정치적 문제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싫건 좋건 어머니를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죽 조선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 번도 나의 조국이 다른 나라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일본 관청의 서류에는 아버지 국적을 따라 한국 국적으로 되어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경기 이외에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 방문해 보고 싶다. 원더걸스를 아주 좋아한다. 귀엽고 예쁘기도 하지만 표현력이 감동적일 정도로 뛰어나다. 일본인 동료들과 노래방에 가면 ‘독도는 우리 땅’을 즐겨 부른다. 우리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런지 일본 친구들도 ‘우리 땅’이란 후렴 부분을 따라 하며 좋아한다.”

 가와사키=예영준 기자 yyjune@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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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