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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이긴 사나이, 울릉도서 354일 대장정 마침표

파리를 출발한 지 일주일 뒤인 지난해 7월 16일, 프랑스 동남부 론알프주(州) 엑스레뱅시 인근에서 잠깐 쉬면서 포즈를 취했다. 이 지역은 알프스산맥이 가까워 여름에도 서늘한 곳이 많다. 쥘리앙의 자전거는 누워서도 페달을 돌릴 수 있게 특수 제작됐다. 암은 완치됐지만 고환에 자극을 주지 않고 장시간 주행에 대비해 체력 소모가 덜 되도록 고안한 것이다. [그자비에 쥘리앙 제공]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연락처라곤 e-메일 주소 하나뿐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니 이틀 후 답변이 왔다. “좋다. 만나자”고. 장소를 정하라고 메일을 보냈다. 며칠 답변이 없었다. 그러다 “약속 장소를 정해 잘 설명해 달라”는 메일이 왔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로 시간을 정해 신문사로 오라고 답을 보냈다. 그러곤 또 며칠 감감무소식이다. 전화번호도 남겼지만 단 한번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돼도 전화도 없고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을 훨씬 넘겨 로비에서 연락이 왔다. 외국인이 기다린다고. 일정한 주거가 없으면서 휴대전화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로비에서 만난 그는 며칠째 면도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선한 눈매를 가진 그와 악수부터 나눴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유자답지 않게 의외로 센 악력에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을린 얼굴도 그의 건강함을 과시하는 듯했다. 고환암을 이겨 낸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이름은 그자비에 쥘리앙. 올해 33세로 휴직 중인 프랑스 중학교 지리교사다. 2003년 고환암 판정을 받고 투병 1년여 만에 암을 이겨냈다. 그는 지난해 7월 9일 “자전거 여행으로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유라시아 대륙 1만2000㎞ 횡단여행을 시작했다. 파리를 출발해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터키·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중국 등 12개국을 거쳤다. 지난달 18일 배 편으로 인천에 들어왔고, 27일 마침내 울릉도 섬목에 도착해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만 1년에서 11일이 빠지는 354일간의 여행이었다. 많게는 하루 100㎞ 이상 페달을 밟았다.

인터뷰하는 날에도 그는 지하철 2호선 대림역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서소문 중앙일보사에 왔다. ‘어떻게 길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손때 묻은 여행 안내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처음 와서 한 시간 만에 복잡한 길 10여㎞를 지나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느냐고 물으니 “길 찾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새와 동물들이 태양을 보고 자기 길을 찾듯 나도 그렇게 찾아간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이렇게 힘든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했나.
“프랑스나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처럼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이에게 공통된 관심사다. 나는 지리교사다. 교과서를 통해서만 봐 온 세상의 구석구석을 어느 날 보러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여행 수단으로 자전거를 택한 것은 느린 교통수단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자유·자율과 동의어다. 자신의 몸과 힘만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어려웠던 점은.
“중국에서 내가 중국말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여러 차례 사람들의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들은 신기한 자전거를 타고 온 서양 사람에게 큰 호기심을 표시했다. 뭐라고 뭐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말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 번 타 보라고 자전거를 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 일요일 울릉도에서 나의 긴 여행을 모두 마쳤다. 울릉도에 배로 도착한 뒤 자전거로 섬을 일주하는 도로를 돌았다. 그러다 길이 끊어졌다. 순간 ‘여기가 나의 최종 목적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자리에 자전거를 눕혀 놓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주변 풍광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의 기나긴 모험은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가장 두려웠던 것은 떠돌이 개였다. 나는 원래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 중 밝히고 싶지 않은 몇몇 나라에서 만난 떠돌이 개들이 너무 무서웠다. 덩치도 컸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를 공격할 듯 따라왔다. 나는 그때마다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한국에서 만난 개는 순하고 귀여웠다.(웃음)”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텐데.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의 우루무치(烏魯木齊)에 도착했을 때 일이 생각난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마치 지구촌 끝자락에 있는 외진 곳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외국인이란 정말 예외적인 존재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조그마한 술집을 하나 발견했다. 목이 컬컬하던 참에 들어갔다. 뜻밖에도 내가 좋아하는 벨기에 맥주가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외진 술집에 세계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여행객을 만날 수 있었고, 일본인 술집 주인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뉴욕에서 성장한 사람이었다. 그날은 토요일 저녁이었는데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출신 DJ 두 명이 교대로 음악을 틀어 줬다.”

-지난 겨울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좀 춥지 않았나.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 3월 말까지 자전거 여행을 중단했다. 중앙아시아 국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도착했을 때였는데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 당시 수은주가 영하 25도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런 날씨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현지에 도착해 알았다.”

-수많은 나라를 거쳐 한국까지 왔는데 음식은 불편함이 없었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주 좋았다. 한국에 와서는 김치도 먹었다. 정말 맛있더라. 좀 맵긴 했지만 중국에서 고추를 많이 먹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있나.
“매일, 끊임없이, 순간순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나를 재워 주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다. 여러 가지 여행에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고 때로는 환자 보살피듯 돌봐 주기도 한다. 옷도 주고 나를 지켜 주는 부적도 준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차를 세워 나에게 과자를 주기도 했다. 길 옆 과실수에 열린 열매를 따다가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추억들을 너무나도 많이 만들었다.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누군가 나타나 나를 도와줘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난 1년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사람의 친절에 감탄하는 시간들이었다. 나와 그들은 모두 남을 배려해 주는 너그러움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런 의문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좋은데 왜 이들 모두가 함께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라고.”

-왜 한국을 최종 목적지로 정했나.
“만약 당신이 프랑스에 산다면, 그리고 자전거로 최대한 멀리 직선 여행을 하기를 원한다면 동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지도 위에 그린 길의 끝에 한국이 있었다. 한 가지 더, 내가 수세기에 걸쳐 독창성을 유지해 온, 아주 특별한 한국의 역사에 오래전부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한국에 도착해 무엇을 했나.
“서울에서 나는 운 좋게도 병원을 찾아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너무나 기뻤다. 감동적이었고 나와 그들에게 모두 아주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다. 나의 이번 여행은 아마도 내가 암을 앓지 않았더라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벌써 7년 전 얘기다. 그때 암과 싸웠던 경험이 나로 하여금 내 꿈을 내 마음속에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줬다. 그 꿈이 세상 밖으로 나와 활짝 필 수 있도록 뭐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했다. 나는 나 혼자 여행을 한 게 아니다. 암과 싸우는 프랑스 단체의 이름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프로사이클 선수의 도움도 받았다. 그도 나처럼 고환암을 앓았던 사람이다. 그는 나처럼 종종 삶이라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암과 싸우는 것은 모든 세상 사람이 함께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프랑스에 돌아가면 뭘 할 생각인가.
“자전거를 타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았으니 이번에는 내 조국 프랑스 자전거 일주를 하고 싶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척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이다. 9월에는 학교로 복직한다. 학생들에게 지난 1년간 내가 경험했던 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말해 줘야 할지 벌써 가슴이 설렌다.”

-힘든 여행이었을 텐데 건강은 괜찮나.
“지금까지 내가 내 몸을 이렇게 ‘혹사’해 본 적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내 몸이 이처럼 강인했던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사이클 선수 세바스티앙 졸리의 도움이 컸다. 그가 소속팀의 기업 스폰서에게 부탁해 나에게 도움을 주선했다. 그 뒤 나의 여행 계획이 알려지면서 다른 스폰서들이 잇따라 생겼다. 내 자전거를 만든 체코 회사 아주브(Azub)도 후원자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파리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그 수익금을 고스란히 나에게 건네줬다. 정말 이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에도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아주 미묘한 문제다. 많은 사람이 병을 앓고 또한 각자 방식대로 그 병과 싸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수백만 명이 암과 싸우고 있다. 그들의 가족도 이 힘겨운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암 환자들의 용기를 이해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존중하고 감탄하고 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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