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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조직 장악하려면 자기 사람 쓰지 말아야”

백용호 국세청장이 지난달 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오피니언 리더스클럽 경제언론인회 초청 강연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대병원. 백용호 국세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장 구돈회 국세청 심사2담당관이 입원해 있는 본관 5511호실로 올라갔다. 세원정보과장을 지낸 구 담당관은 지난달 초 과로로 쓰러져 두 차례에 걸쳐 뇌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세원정보과는 국세청 내에서도 소문난 격무 부서다. 마침 이날은 구 담당관을 포함, 11명이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날이었다. 오전 승진·전보 직원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지만 구 담당관은 참석하지 못했다.

대통령 실장 거론되는 백용호의 국세청 개혁 1년

백 청장은 병실을 지키고 있던 구 담당관의 부인 김현주씨에게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한 구 담당관에게 직접 임명장을 전달하고 싶어 왔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사모님이 대신 임명장을 받아 달라.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다”며 임명장을 건넸다. 순간 김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함께 병원을 찾았던 국세청 임광현 과장은 “청장님도, 담당관님도, 사모님도 울고 함께 간 우리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국세청 주변에선 백 청장의 조용한 리더십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직원들 사이에선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는 ‘낙하산 청장’이다. 대학교수(이화여대) 출신으로 공직이라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공정거래위원장이 전부다. 그런 그가 검찰·경찰·국정원과 함께 이른바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국세청의 수장으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해답은 그의 투명한 인사 스타일에 있다고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백 청장이 국세청의 수장으로 취임한 건 1년 전인 지난해 7월 16일. 전임 청장들이 줄줄이 인사청탁·로비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앓은 뒤였다. 흐트러진 기강을 되살리고 쇄신을 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공정거래위원장(2008년 3월~2009년 6월)이던 ‘백용호 카드’를 꺼냈다.

백 청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사 청탁 배제였다. 그는 “인사 청탁·로비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표했고, 실제로 청탁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을 모두 승진에서 누락시켰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지난달 고위직 인사 땐 “고질로 되풀이되던 인사 청탁이 사라졌다. 자연히 능력과 실적 위주의 인사를 할 수 있었다”(국세청 관계자)는 설명이다.

백 청장은 최근 사석에서 지인을 만나 자신의 인사관을 피력했다고 한다. 지인 A씨의 전언은 이렇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갈 때도 이방인인 백용호가 조직을 장악하겠느냐, 실패할 거다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해 보니 가장 좋은 방법이 자기 사람 안 쓰고 공정하게 인사하는 거더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평범한 진리가 정말 맞는 얘기다. 처음 국세청에 와서 보니 인사 청탁이 들어오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더라. 솔직히 한두 명 청탁이 들어왔으면 봐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더라. 얼마 전 내부 감찰에 물었더니 요즘은 정치권이나 외부에서 ‘청장한테 잘 말해 주겠다’고 하면 오히려 국장들이 손사래를 친다고 하더라.”

백용호 인사 스타일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 발탁이다. 국세청 본청의 11개 국장 자리 중 2곳(납세자보호관·전산정보관리관)에 외부에서 영입한 여성을 앉혔다. 국세청이 문을 연(1966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지수 납세자보호관은 로펌 김&장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다. 그에겐 기업이 부당하게 세무 조사를 받았다고 호소할 경우 조사반을 교체하거나 심하면 직권으로 세무 조사를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줬다. LG CNS 출신의 정보기술(IT) 전문가 임수경 전산정보관리관은 연말정산 등 전산 정보를 총괄 지휘한다. 소득·법인세 등 모든 세금이 징수되기 전 그의 손을 거친다는 의미다. 6월 인사에서도 서울시내 세무서장으론 처음 여성(홍성경 노원세무서장)을 발탁했다. 세무직 여성으론 처음 본청 과장(안옥자 부동산거래관리과장)도 임명됐다. “여성을 편애한다”거나 “백 청장 있는 동안엔 성전환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직원들 사이에 나돌 정도다.

그가 여성에게 관심을 두는 건 “우리 사회가 바로 서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여성들이 중요한 자리에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란 소신 때문이다. 백 청장은 “여성의 장점은 크게 부패하지 않고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구색이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성들이 ‘디시전 메이킹(decision making·의사결정)’ 자리에 들어와야 한다. 장관 등 주요 자리에 가기 전에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직책을 거쳐 트레이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투명한 인사, 지역과 여성을 고르게 안배한 균형 인사가 평가받아 국세청은 지난 4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인사 분야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외부(감사원) 출신의 감사관을 영입, 국세청 고위직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고 지방 국세청장이나 세무서장을 내보낼 때 고향이 아닌 지역으로 보내는 향피제(鄕避制)를 도입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지역 토착 기업과 국세청 직원들의 유착을 막기 위해 기업 세무 조사의 교차 조사도 실시했다. 예를 들면 부산에 있는 기업에 대한 세무 조사를 광주지방국세청이 맡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1517억원을 추징했다.

‘백용호식 개혁’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은 대체로 합격점을 주고 있다. 전반기 국회 때 기획재정위(국세청 소관 상임위)에서 활동했던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인사 개혁 등 국세청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백 청장은 자기가 맡은 일에만 전념하고 과유불급의 개입을 하지 않는 담백한 편”이라며 “그러나 국세청에 대한 외부 감찰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은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친박계 이혜훈 의원은 “인사청문회 땐 나도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는데 겪어 보니 트인 데가 있더라. 진일보한, 만족할 만한 세정을 이끌어 왔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또 “일방통행식이 아닌,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무사 출신으로 세무 행정에 밝은 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국세청의 가장 큰 문제는 고위층 인사 문제와 비리였는데 백 청장이 흡족할 정도는 아니나 그런대로 질서를 잡아 가는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른바 ‘민원’이 통하지 않는 데 대해 불편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친이계로 꼽히는 한나라당 의원은 “백 청장이 정책이나 내부는 잘 꾸리는 것 같은데 외부와의 접촉은 잘 안 해 주변과 단절돼 있다는 말을 듣는다”고 꼬집었다. 야당은 특히 신임 조홍희 서울국세청장의 발탁을 문제 삼고 나섰다. 그는 국세청 조사4국장 시절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사건을 조사했다. 백재현 의원은 “과도한 조사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을 면할 수 없는데도 요직에 발탁한 것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야당의 공세가 6·2 지방선거 이후 추진되고 있는 여권 재편과도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쇄신과 세대 교체를 예고하면서 백 청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서다.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조홍희 청장 인사와 관련, 국세청 측은 “조 청장이 업무 추진력이나 능력 면에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건 자타가 공인하는 부분이다. 자체 감찰 결과도 하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연차 사건 때 실무자였다는 이유로 배제한다면 그게 오히려 정치적이고 경우에 안 맞는 결정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다.

백 청장은 최근 국세청 간부들과 사석에서 “사람은 ‘내가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약해진다. 살려고 하면 죽는 법이다. 나도 넓게 보면 대통령의 참모이고 쇄신의 대상인데 나만 살아남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백 청장은 개인 사물을 집무실에 가져다 놓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다. 경복궁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국세청 12층의 청장 집무실 서가는 1년째 텅텅 빈 채로 있다. 서랍은 물론 책상 위에도 서류 한 장이 놓여 있지 않다. 개인 사물이라곤 여분의 구두 한 켤레가 전부다. 비서실의 한 직원은 “공정거래위원장에서 청장으로 오실 때도 구두 한 켤레 담긴 작은 박스 하나를 들고 오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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