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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빈구석 채워주겠다는 마음먹으면 그날로 극락”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 것이니, 도를 구한다면서 사람을 멀리하면 도가 될 수 없다’. 진제(眞諦:평등의 세계)와 속제(俗諦:차별의 세계), 승(僧)과 속(俗)의 경계란 본래 뚜렷이 구별되는 실상이 아니다. 편의상 혹은 논리상 지어놓은 영역에 불과하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인간을 역사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으로 나눈 바 있다. 양측의 삶의 양태는 곧잘 현실 참여자와 도피자로 간주되곤 한다. 역사관 또한 진보와 순환으로 뚜렷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발 딛고 사는 곳은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복잡해 보이는가, 단순해 보이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쪽이나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깊은 산속 고요한 선방(禪房)에서 똬리 틀고 앉아 있는 선객(禪客)은 세속도시에서 애면글면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결코 편하지 않다. 의식의 치열성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몇 시간씩 정좌해 있는 그 자체가 고행이다.

지금은 여름 결제기간이다. 참선하는 스님들은 방부(房付:선방에 안거를 청함)를 들이고 화두를 잡도리한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이 참선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수행자라면 무릇 선방에서 살아야 제격이다. 선방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절집 조사실에서 차를 마시며 근엄한 모습을 지녀야 큰스님답다.

객승·교수·기자 발길 끊이지 않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만난 종림(66·사진) 스님은 책 더미 속에서 ‘다방커피’를 마시고 줄담배를 태우는 스님이다. 스님은 세계 최초로 불전(佛典) 전산화 작업을 이뤄냈고 지금은 고려대장경 영인본 제작을 하고 있다. 연구소 위층 숙소에는 국내외에서 찾아드는 지인들로 조용할 날이 없다. 객승들과 교수·시인·연예인·기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업무와 관련된 방문객 말고도 도심 속 옹달샘 같은 스님의 미소와 말없이 들어주는 넉넉한 품이 그리워 찾는 이들이 많다. 티베트 잠언집 『선설보장론』을 출간한 인도 비스바 바라티 대학 신상환 교수도 그중 하나다. 신 교수와 기자는 스님 앞에서 ‘중론(中論)’에 관해 맞짱토론을 벌였다. 종림 스님은 시종 특유의 달관한 표정에 미소를 섞으며 경청하기만 했다. 그것이 스님의 변함없는 역할이었다.

스님은 시골 할아버지 같은 풍모와 다소 어눌해 보이는 화술을 지녔다. 그래서 대장경 사업 열심히 하고 사람 좋아하는 후덕한 노장쯤으로 비치지만 사실은 논리 정연한 철학자다. 스님의 행동철학에는 수십 년간 파고든 삶에 대한 의문과 깊은 이해가 녹아들어 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 ‘해인사 호랑이’ 지관(전 총무원장)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해인강원 2년차 때 강원 교육시스템 개혁을 주도해 강원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일순간의 충동이 아닌 오랜 자기 의문의 분출이 낳은 행동이었다. 7년간 여러 선방을 돌면서 수행했지만 의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해남 대흥사 선원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1년 만에 던져버려서 수좌 씨가 없는 ‘비수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국 선불교 시스템은 참 잘 짜진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굳이 그 좋은 틀을 박차고 빠져나온 까닭이 뭡니까.
“간화선(看話禪)은 한마디로 옛사람들이 닦아놓은 길로 달려가는 수행법이라. 문제를 푸는 확실한 공식인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절실한 의문은 해결이 되지 않고 남아. 나는 출가하기 전부터 너무 많은 이념과 사상의 먹물이 들었어요. 안팎의 괴리감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가 없었고. 도무지 화두(話頭)를 붙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거라.”

-개인적인 의문점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요. 대중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스님만 문제가 된다면 혹시 적응장애 아니겠습니까.
“아니지. 선방에는 나 같은 부류가 많아요. 해인사에 있을 때도 나를 포함해 ‘5악당’이 있었으니까. 화두를 의단(疑團), 곧 의심 덩어리라고 하잖아요. 그건 누구에게나 통용되게끔 정형화되어야 문제가 없어. 그런데 자기 것으로 정형화되기 전에는 자기 의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돼. 그럼 병통이지.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고 수행법도 다르게 돼 있어요. 참선 일변도로는 곤란해요. 수행에는 대개 기도의 요소와 명상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따르거든. 어떤 방법을 쓰느냐는 건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나는 화두를 잡는다거나 기도하는 것보다 집요한 분석과 성찰의 도움을 받았거든.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가고 보니까 참선이나 기도법이 다 이해됐어요. 물론 내 의문도 저절로 해결되었고.”

-수행자의 공부법으로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속가 사람들이 피부에 와 닿는 언어로 바꿔주시겠습니까.
“간단해요. 형식화된 화두 참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얼마든지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스러움의 대중화라고나 할까. 깨치면 누구나 부처인데 그 깨치는 방법이 절집에만 있지는 않다는 말씀이오. 흔히 불가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하잖아요. 위로 깨달음을 얻어서 아래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거 말이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철학적 탁월성과 사회적 실천은 현실역사에서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거든. 정치나 경제 문제를 선사(禪師)에게 물어봐요. ‘난 산속에서 참선이나 하는 중이라서 그런 건 잘 모른다’고 하잖아요? 사회성이 떨어지는 수행을 해놓고서 중생구제를 염원했다는 말이 되잖아요. 결국은 자기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 속가에 살면서도 부단히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두지만 자신과 가정 문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아까 말씀하신 해인사 ‘5악당’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다들 잘 여문 풀씨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제 몫의 꽃과 열매를 맺었지. 사실 우리들이 하는 공부엔 주문을 외우는 게 속해요. 어느 단계까지는 스스로 올라가 참선 시스템에 가탁하면 더 불이 붙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나처럼 논리적인 분석방법도 ‘좁은 문’이기는 하지만 가능한 길 가운데 하나이고.”

-자기 의문이 해결되던 때 심적 상태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집요하게 의문을 캐들어 가던 어느 날, 빛도 소리도 동서남북도 이념도 그 어떤 잡념도 없는 절대 무(無)의 바다에 놓인 나를 경험했습니다. 눈앞에 가치판단 기준을 삼을 게 아무것도 없었지요. 그 순간 열락을 맛보았습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모든 문제들이 애초 성립되지도 않는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신(神)이 없더라도 이 세상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 어떤 목적이 없더라도 모두가 즐겁고 편안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심지어는 불교의 연기법조차도 하나의 전제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이후로 못 받아들일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표현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내가 처한 좌표를 확인한 상태에서 그대로 이해하면 그만이었지요. 아시다시피 논리적인 추론은 언제나 현실적인 모순과 갭을 낳아요. 아무리 철저한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도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지요. 총체적인 진리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니까.”

“상대 입장 이해하고 다투면 합의점 보여”
후덕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느덧 명철한 철인의 얼굴로 바뀌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와도 오랜 친구처럼 소통하는 교류법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문득 견성(見性)한 스님 앞에서 되지도 않는 물음들을 던지고 있는 기자 자신이 참 멋쩍었다.

“우주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는 에고이스트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빚는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어디쯤에 속해 있는가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 판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면 각론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 다투더라도 곧 합의점이 보이는 거라. 우리는 애초 이 땅에 어떤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온 게 아닙니다. 어느 날 그냥 느닷없이 떨어진 거지. 자기 생각으로 세상을 마름질하려 하지 말고 빈구석을 채워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날로 극락입니다.”

-모두가 스님처럼 초월적 경지를 맛보고 우주의 본질을 간파해낼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소시민은 아옹다옹 다투면서 늘 불만을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좀 답답한데 속 시원한 해결책 같은 건 없습니까.
“난 젊었을 적에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됐었습니다. 세상을 더 살아가면서 강제된 질서보다는 자율적인 질서가 훨씬 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살 만하게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금전적인 문제와 관련해 모든 개개인을 가능하면 출발선에서만이라도 어느 정도 동등하게 만들어줬으면 해요. 부자가 능력을 발휘해 얻은 재산으로 당대에는 충분히 즐기되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상당 부분 사회에 기부해 그것으로 가능한 한 모든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겁니다. 그럼 대다수가 세상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알게 되고 불만이 적어지지 않겠습니까.”

외형적 불사에 집중하는 한국 불교계에서 시종 불전 전산화와 그 보존 작업에만 매달리는 종림 스님은 곧 둔황 나들이를 한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2년째 고려 초 무렵, 활자화되기 전의 필사본 경전이 가장 많이 보관돼 있는 둔황에서 경전 촬영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관계 교수들과 함께 떠나는 열흘간의 여행이다. 몇 년 있다가 고향(경남 함양 안의)에 운수단(雲水壇)이라는 당호의 토굴을 짓고 물러나겠다는 스님은 누구보다도 NQ(Network Quotient·공존지수)가 높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인간관계의 명당을 아는 스님과 장장 여섯 시간 동안 철학담론을 하는 내내 마음은 니르바나(열반)에 다다라 있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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