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

K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세상에 다시없는 악마’라고 비난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심하게 구타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어떤 때는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나무에다 매달아놓고 때리기까지 했다고 K씨는 말했다. 그는 면담 중에, 자신의 아버지가 열 살 남짓 됐을 때 친일파였던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살해됐다는 얘기를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받은 충격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공격 성향을 키웠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자 K씨는 그제야 아버지를 이해하겠다고 했다.

N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피란 와서 남한에 정착했지만, 아직 그의 머릿속에서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인민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며 자녀들에게 피란 준비를 시키고, 수시로 준비 상태를 점검했다. 실직과 부부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해망상이 도져, 북한 사람들이 곧 우리를 죽이러 내려올 것이라 믿고 불안해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 속으로만 도망가는 아버지와 이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N씨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의 잠재력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리분석을 통해 K씨와 N씨는 자신들의 부모가 일종의 외상후증후군(Post-traumatic disorder) 환자이고 그 상처가 본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됐음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환자인 걸 알게 되면서 용서가 가능해졌고 자신들의 증상도 호전됐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감정도 누그러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0년이 된다. 젊은 세대는 6·25 동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지만, 6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닌 필자는 전쟁 통에 우왕좌왕 헤매는 꿈을 꾸며 살았다.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했던 무장간첩 김신조가 “청와대를 까부수러 왔다”고 한 인터뷰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전쟁과 남북분단은 우리 집안에도 크고 작은 사연을 남겼다. 해방 직후 서울대학에 다니던 큰아버지는 좌파로 몰려 큰 곤욕을 치렀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탈레반처럼 토굴생활도 몇 달 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버지의 학도병 지원은 아마 나라뿐 아니라 가문을 구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총 쏘는 훈련만 겨우 받고 전장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족이 모였을 때 다른 주제에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유독 한국전쟁이나 해방 전후의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무셨다. “너희들은 모른다”라는 쓸쓸한 코멘트와 함께.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국전쟁과 관련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피란 갔다 돌아와 폭격에 처참하게 부서진 집 앞에서 엉엉 우는 어린 어머니의 모습도 겹쳐지고, 학도병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돌아가신 아버지도 더 그리워진다.


전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선원·미군부대통역·가정교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어렵게 학업을 마치셨다. 그 후엔, 집안 식구들을 거둬 공부를 시키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왔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정작 가고 싶었던 길은 가지 못하셨을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은 아버지 세대에 우리 사회가 진 빚은 적지 않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진 빚을 얼마나 갚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슴 밑바닥부터 아리고 또 아려올 뿐이다.

정신과 전문의 융 분석심리학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