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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페미니즘·민주주의 받들다가 진짜 남자 멸종한 시시한 시대

남자다운 남자들이 갈수록 희귀해진다고들 합니다. 시대에 따라 남성들의 역할과 거기 거는 기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근육의 힘을 내세우고, 목소리만 크면 행세하던 행태는 마땅히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용기로 상징되던 남성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남자다움을 역사적·문화적·과학적으로 살피며 그 복원을 주장하는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입니다.

 남자다움에 관하여
하비 맨스필드 지음
이광조 옮김, 이후
484쪽, 2만3000원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눈에 뜨이는 것은 초라한 잡종 뿐/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여권운동가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멋진 잡놈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바드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여성시인 문정희의 시 ‘다시 남자를 위하여’에 대한 화답으로 읽힌다. 문정희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졸개들은 많은데/(…)/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위기네”라고 개탄하는데, 저자는 멸종 직전의 남자·남자다움 회생 처방을 제시한다.

“멋진 잡놈”을 추방한 페미니즘과의 논쟁만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문명사 차원의 문제제기인데, 그게 관전 포인트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홉스·니체·토크빌·헤밍웨이 같은 서구지성사의 큰 이름들을 총동원해 남성다움(manliness)의 가치를 넓고 견고하게 복원하려 한다. 요즘 유행처럼 진화생물학 언저리를 맴도는 방식과 또 다른, 남자론의 확전이다. 출발은 상식적 관찰이다. 왜 요즘 들어 멋진 남성상인 신사가 사라졌는가?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자랑으로 아는, 여성다운 여성 역시 함께 사라졌는가?

용기와 힘으로 상징되는 남자다움이 갈수록 사라지는 데 대한 반동으로 우리는 이른바 ‘초컬릿 복근’에 더 환호하게 된 것 아닐까. [중앙포토]
이 통에 쪼그라든 남성들은 성적 표현에 미숙해졌고, 여성들은 까칠한 성격으로 변했다. 성희롱 등 비열한 행동을 막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남자·남자다움 모두를 추방해버린 모양새다. 저자가 보기에 “광채 나고 완벽한 인간”인 신사는 함부로 으스대지도 않고, 약한 사람이나 여성을 이용해먹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시대는 남자가 여성 같고, 여성이 남자 같은 유니섹스 즉 성 중립의 사회로 변질했다. 남은 건 기계적 남녀평등의 황량함 뿐이다.

그건 “여성들은 남성과 비슷해지거나 또는 남성과 똑같아지는 방식으로 평등해지길 원했기”(19쪽) 때문이다. 실은 그 이전부터 두모스(thumos)가 실종됐다. 두모스는 서양판 호연지기(浩然之氣).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인 고대 그리스어로 혼·기개 혹은 용맹함을 뜻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두모스를 “털을 곤두세운 개의 사나움”(387쪽)으로 표현했다. 단순한 공격충동·지배욕과 달리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는 용기의 남자다움이다.

두모스의 부활을 꾀한 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그는 조금 다른 뜻으로 아니모(animo)란 말을 썼다. 힘 또는 활력을 뜻하는 이 말은 야수적 공격성이자, 요즘의 국가안보 개념과도 상통한다. 물론 저자는 안다. 성적 중립성을 비판하는 전투가 세 불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기 책이 “남자다움에 대한 온건한 방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어쨌거나 “남자다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만 버려졌을 뿐”(432쪽)이라는 문제의식은 음미해 볼만한 얘기다. 그런 남자다움은 언제 어떻게 버려졌을까? 페미니즘의 득세 때문에? 아니다.

그에 따르면 수컷기질의 문화적 거세(去勢)는 뿌리가 깊다. 합리성·전문성을 추구하는 근대사회 자체가 주범이다. 고대사회만해도 특유의 사나움과 남자다움이 사회의 운용원리로 중요했다. 마키아벨리가 아니모란 말을 만든 것도 고대의 부활을 노린 것인데, 안타깝게도 모던사회 등장이후 남자다움은 압살 당했다. 근대의 주역인 부르주아 계층을 보라.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가적인 이성과 침착함이지 남자다움은 아니다. 그들이 코 빠져 지내는 비즈니스란 것도 승리보다는 이익을, 희생 대신 계산을 우선한다.

그런 부르주아 사회를 철학자 니체는 “사랑과 야망이 없는 단조로운 곳”이자 “시시한 풍경”이라며 경멸했다. 이에 힘입어 저자는 회심의 총공격을 감행한다. 어쩌면 민주주의 사상 자체가 문제다. 그는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토크빌의 말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가 장기화되면 시민들은 서로 고만고만해진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근대성과 민주주의 전체를 싸잡아 공격하는 맨스필드의 논리는 때론 위험하다. “남자다움은 전쟁을 선호하고 위험을 즐기며, 영웅을 존경하다. 합리적 통제는 평화를 원하며 위험을 감소시키며, 영웅보다는 역할모델을 선호한다.”(439쪽) 등도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당신이 말하는 남자다움은 시대착오적 전쟁광이나 파시즘 논리와 뭐가 다르냐?”는 역공을 받을까봐 조마조마하다. 너무 그를 몰아세우진 말자. 여성은 여성답고, 남자는 남자다운 것이 그가 생각하는 궁극적 남녀상이다. 정치철학자인 그는 미국 우파 학계의 거물. 칠순의 나이의 그가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이 저술을 낸 것이 2006년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였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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