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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이문열, j에 내주부터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연재

이문열씨가 j에 온다. 다음 주부터 j에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가제)을 연재한다. 발트해 연안의 소국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자란 어머니와 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국적 정체성’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로맨스다. 그러면서도 정체성 혼란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피와 땅이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21세기적 현실을 짚는다.

경기도 이천 자택 서재에서의 이문열씨. 그는 j에 연재할 소설의 내용과 최근 사회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4시간 동안 털어놨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문열 작가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대뜸 “안중근을 다룬 장편 『불멸』을 출간한 2월 이후 무력감에 시달려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소설 연재에 대해 “기대 반, 불안 반”이라고 했다. 『사람의 아들』을 발표한 1979년부터 대략 1990년대 중반까지 이문열씨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문학성과 대중성, 양립하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가 그의 손안에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에게는 ‘시대와의 불화’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다. 호된 홍역을 몇 차례 치른 그는 “이제는 문학에 전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번 소설이 문학으로의 복귀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요즘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장편을 20권 넘게 썼다. 그런데도 새 소설 쓰기가 두렵나.

“내가 요즘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최근 서너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면 이상한 공황상태가 온다. 예전에는 새 글을 쓰며 극복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무력감이 짓누른다.”

● 무력감의 원인이 있을 텐데.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세계 때문이라고나 할까. 나는 우선 월드컵 열기가 이해 안 된다. 2002년 월드컵 때 한 외국인이 묻더라. ‘시청광장에 가면 해상도 높은 대형 스크린이 있느냐’고. 그때만 해도 없을 때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또 묻더라. ‘시청 앞에서 응원하면 월드컵 경기장까지 열기가 전달되느냐’고. 역시 아닐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더라. 한 장소에 몇 십 만 명 혹은 100만 명 이상 모인 경우가 근대사에 흔치 않은데 그때마다 대부분 비상한 결과로 끝이 났다고. 가령 히틀러 시대의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결국 나치로 끝났고, 중국의 문화혁명 때도 수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였다는 거다. 한국에서도 2002년에는 결과가 나왔다. 월드컵 열기가 효선·미선 추모 촛불 집회를 거쳐 결국 대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그런 거 생각하면 이번에는 뭐가 오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어제(29일) 국회에서는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는데.

“정부가 그야말로 혹 떼려다가 혹 붙인 정도도 아니고…. 수정안이 부결된 마당에 세종시에 ‘플러스 알파’를 줘야 한다면 정부가 뭐가 되는 거냐. 이런 결과를 정부의 정치적 무능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혼란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쌍방성’에 대해 집단적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나도 저 사람처럼 똑같이 발언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신뢰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쌍방성을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다수는 일방적인 선전 선동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 쌍방성을 누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데올로기를 가진 소수,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는 소수다. 쌍방성이 제대로 성립하려면 누구든 열 번에 한 번 정도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1000번 글을 올리는 동안 한 번도 올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에서 발신자가 되는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5% 정도다. 이 5%와 나머지 95% 사이에는 목소리를 내는 빈도에서 10대 1이 아니라 100대 1, 1000대 1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쌍방성을 믿기 때문에 나도 거기 끼일 수 있다며 신뢰하는 거다. 흔히 인터넷이 집단지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오히려 집단 최면이다. 심하게 말하면 집단 사기, 집단 선동이다.”

● 해결책은 뭐라 생각하나.

“(발신자들이) 부메랑을 맞게 될 때 정화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흥기와 패퇴는 상당 부분 인터넷 때문이다. 그가 죽은 이유도 인터넷 때문이라고 본다. 신문 시대였다면 그렇게까지 안 됐다고 본다. 부메랑에 맞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문열은 인터넷의 자정작용을 기다려왔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으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인터넷에 적용되는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은 만들어질 때의 상황이 지금과 전혀 다르다. 기껏 몇 명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돼 피해보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지금 인터넷은 3만 명, 30만 명에게 퍼진다. 피해 법익의 크기가 다르고 속도도 다르다. 내 경우 인터넷으로 명예가 훼손됐을 때 매번 고소했다면 19번쯤 됐을 거다. 하지만 변호사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소송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 천안함 사태는 어떻게 보나.

“울적해져 대여섯 번 술을 먹은 이유가 됐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정부 여당이 선거 패인의 큰 원인을 천안함 역주행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독주는 다음 원인이라는 것이다. 막막하더라. 46명이 죽었지만 사실은 북한이 생존자까지 모두 노린 거 아니겠나. 그런 북한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북한에 화 좀 냈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야당을 찍었다? 이해가 안 된다. 미선·효선의 죽음에 대해 극렬한 반미주의자도 처음에 미온적이었던 것은 고의적인 사건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죽음으로 몇 달 동안 수십만 개의 촛불이 탔는데,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쏴서 46명이 죽었는데도 그것에 강력하게 대응한다고 역풍이 불었다고 하니…. 북한이 때리는 대로 맞고 참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데 그런 나라는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아니다. 그런 대한민국은 나라가 아니다.”

● 화제를 좀 바꿔보자. 『사람의 아들』 이후 유례없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지배적인 문화적 노선과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 문단에 나올 때부터 그랬다.”

그가 말하는 지배적인 문화적 노선은 70, 80년대 사회참여적인 문단 분위기를 말한다.

“승승장구했달까, 대중과의 교감이 굳건했을 때는 그게 버팀목이 돼 사회참여 측의 공격이나 비판에 관대했고 오히려 어떨 때는 그들의 비판에 고마움마저 느꼈다. 왜냐하면 강력한 비판자가 있어 감시하는 게 한 작가가 썩는 걸 막아주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도 비교적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관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비판자들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현실의 엄혹함, 80년대 권위주의 정부는 (내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젊은 직장인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싶은 작가 1위로 꼽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시대와의 불화’가 시작된 것 같은데.

“DJ 정권 전만 해도 나를 직접 공격하는 사람은 강준만 정도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일반적인 사람, 불특정 다수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 마당이 인터넷이었다. 과거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이 하던 역할을 인터넷이 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은 시대의 대자보였다. 특히 2000년대 초 내가 쓴 몇몇 신문 칼럼이 결정적이었다. 과거에 나는 그래도 공개적으로 할 말 하기를 주저했는데 당파성까지 드러내며 보수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니까 악의의 감정적 상승작용이 일어난 것 같다. 적대감이 상승하면 적 개념이 확대된다. 예전에는 나하고 직접 치고받은 사람만 적이었다면 나중에는 내 편에서 함께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도 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태껏 가장 많은 소설을 판 한국 소설가다. 얼마나 팔렸느냐고 묻자 이씨는 “100만 부 넘게 팔린 창작소설만 5권”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전체 판매 부수는 밝히지 않았다. 동료 작가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씨가 평역한 『삼국지』는 2008년 기준 1700만 부가 팔렸다.

이씨는 “미래는 종이책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내 기록이 깨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독자들에게 서운함이나 불만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배은망덕한 게 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오히려 중요한 것은 독자와의 관계가 아니다”며 “이 시대가 다음 세상까지 결정하게 되는데 뭔가 불안한 면이 있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라고 했다. 또 “젊은이들과 잘 소통하는 내 또래 작가들을 보면 부럽다”고도 했다.

● 어쨌든 소설의 인기 비결이 있다면.

“독자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게 비결일 수 있겠다. 내 경우 책을 살 때 이 책에서 뭘 얻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교양이나 시대를 보는 안목 같은 거다.”

● 집필을 위한 취재는 어떻게 하나.

“단편은 작품 전체가 한 덩어리 내용으로 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장편은 자료 수집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터넷 시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취재의 수고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안중근 자료를 조사하는데 2∼3년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의 경우 중요 부분 취재에 4개월쯤 걸렸다. 쓰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아무리 긴 소설도 1년을 넘기지 않는다. 현장에는 한 번쯤 가보는 편이다.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감을 잡기 위해서다. 이번 연재소설을 위해 리투아니아에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가보지 못하고 소설을 쓰게 됐다.”

● 요즘 읽는 책은. 책상 위에 명대의 사상가 이탁오 평전이 놓여 있는데.

“이탁오는 명나라 때 진보적 사상가다. 자신의 해석을 곁들여 쓴 ‘비평 삼국지’가 유명하다. 소설이 경(經)과 사(史)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55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강의에 여성의 입장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행동을 했다. 기존 세상, 기득권에 대한 악의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사람이다.”

● 소설 문하생을 기르던 ‘부악문원’은 요즘 어떤가. 2000년대 초 문을 닫은 것으로 아는데.

“올 초부터 소설 지망생이 아닌 기성 작가를 위한 창작 레지던스로 개방하고 있다. 현재 10명 정도가 기거하고 있다.”

● 글 쓰는 일 말고 다른 즐거운 일은.

“그게 별로 없다.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굉장히 각박한 사람 같다. 술 마시는 것 말고 낙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바둑, 낚시도 가끔 했는데 끊은 지 오래됐다.”

● 해외에 소개된 작품은 얼마나 되나.

“15개 언어 18개국에 57권쯤이 번역돼 있다.”

●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의 제정 정신은 인류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기여한 사람을 치하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공로상이다.”

● 평론가 김윤식씨는 문학의 대가가 될 수 있는 요건으로 일정한 작품 수, 작품의 품격, 요절하지 말 것 등을 꼽은 적이 있다. 스스로 대가라고 생각하나.

“작가치고 스스로 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나. 내가 좀 늙고 삭긴 했지만 아직도 대가를 향해 가는 중이랄까. 대가를 죽은 뒤에도 작품이 기억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회의적이다. 지금은 오래 기억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 존재가 스러진 후에도 나의 파편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 다닌다고 하면 과연 기분이 좋기만 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려면 영혼 불멸이나 세계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문학의 명예욕에 몸이 달아오르다가도 문득 허망한 꿈을 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 그런데도 이번에 소설을 연재하기로 한 이유는.

“소설을 평생의 일로 삼고 하기로 했던 일 중 아직 다하지 못한 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리투아니아 여인’이 그런 작품인가.

“98년에 12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 『변경』이 실은 끝난 게 아니다. 72년 상황까지 다뤘는데 지금 분량만큼 더 써 80년 상황까지 소설 안에 담고 싶다. 지금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가 80년 부근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먼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복수감 때문에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다. 80년대 좌파가 대표적이다. 적의 적은 친구 아닌가. 두 번째는 앞으로 한반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종의 보험 차원에서 온정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일종의 투항주의다. 전쟁이 두려워 친북적인 것 같은데 만일 전쟁이 난다면 그래도 나가 싸우겠다고 대답하는 이들이 있다. 90년대 들어 형성된 좌파가 그런 것 같다. 80년 상황을 다시 들여다봐야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

j 칵테일 >> “혼자 마셨죠”

취재진을 맞은 이문열씨의 첫마디는 “어제 술을 좀 했는데 얼굴이 붓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누구랑 드셨냐”고 물었더니 "혼자 마셨다”고 했다. 이씨는 “요즘 100번 술을 마시면 97번은 혼자 마신다”고 했다. “얼마나 드셨냐”고 물었다. “맥주 500㏄ 8잔 분량을 폭탄주로 만들어 마셨다”고 했다. 작은 양주 반 병을 소비했다고 한다. 이씨는 막걸리도 좋아한다고 했다. “밤 11시 넘어 출출할 때 막걸리 6통 정도를 마시면 기분 좋게 취한다”고 했다.

문인들 상당수가 두주불사형이지만 이씨의 주량은 정평이 나 있다. 문학평론가 정규웅씨에 따르면 이씨는 전형적인 모주꾼이다. 술의 양을 가늠할 수 없는 데다 한번 마시면 끝을 보는 성미라고 한다. 밤새워 글을 쓰느라 받는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술로 푸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10년 전쯤 전성기에는 폭탄주 20잔은 너끈히 마셨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는 “2주일에 세 번 정도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보다 좀 자주 마신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마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선천적인 건강체질인 것 같다. “협심증 증세가 있는 것 말고는 특별히 불편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여인’은 …

90년대 중반부터 구상

원고지 1100쪽 달할 듯


이문열씨는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을 1990년대 중반에 구상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모델 여성을 우연히 만난 게 계기였다. 여성의 할머니는 1940년대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민 1.5세대인 여성의 어머니는 대학에 들어가 민속음악을 공부하던 중 한인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아리랑’에 심취해 있던 차에 축제 때 이를 불렀다가 향수병에 시달리던 아버지를 울린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이 여성은 다국적 정체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씨는 “몸속에 구현된 다국적 특성이 지식이나 실생활의 삶에서 표현되는 방식이 독특했다”라고 말했다. 가령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처음 가는 나라의 낯선 식사 도구 등의 사용법은 귀신같이 알아채는 반면 실생활에 필요치 않은 지식이나 문화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 피와 땅을 통해 확립되는 게 지금까지의 세계였는데 근래 들어 그런 사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그런 다국적 정체성을 갖춘 개인의 경우 사랑의 양상도 땅과 피에 갇혀 있던 종전과는 크게 다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은 이씨가 직접 목격한 모델 여성의 삶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별난 사랑 이야기지만 21세기적 정체성 혼란상을 그릴 예정이다. 이씨는 “소설 설계도로는 200자 원고지 950쪽 분량이지만 실제로는 1100∼1200쪽쯤 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리투아니아

유럽 대륙의 배꼽에 해당하는, 지리적으로 중앙에 위치한 나라다. 동유럽의 발트해 연안에 붙어 있고, 14세기엔 영토를 남쪽의 흑해까지 넓히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수도는 빌뉴스, 인구는 350만 명, 면적은 한반도의 25%다. 파란만장한 현대사에선 소련(40년)→독일(41년)→소련(44년)의 지배를 받다가 1990년 3월 독립을 선언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중에서 가장 낙후됐고 농업의 비중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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