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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만 그리다 간 이승조, 그가 말하려던 건 뭘까

이승조 ‘핵’, 캔버스에 유채, 173X130㎝, 1968
‘파이프여, 인생을 말하라!’

화가 이승조(1941~90)의 삶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른다. 20여 년 파이프만 그리다 간 그는 ‘파이프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라 했다. 선문답일까. 우리 눈은 그걸 파이프로 알아보지만 화가에겐 세상을 인식하고 삶을 은유하는 하나의 빌미였을 뿐이다.

이승조는 한창 작품에 물이 오를 때 세상을 버린 작가다. 마흔아홉에 지병으로 눈을 감을 당시,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인색했다. 흔히 그렇듯, 비주류였던 그에게 가는 눈길은 많지 않았다.

이제 20년이 흘러 앞서갔던 그의 그림 세계가 부활하면서 화가 이승조를 다시 보고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 고인의 작품을 단 한 점도 흩어지지 않게 소장한 부인 고명자씨 덕이 크다. 전작 도록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유가족은 경기도 안성의 작업실에 그림 도구 등 유품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서울 신문로 ‘일주 & 선화갤러리’(02-2002-7777)에서 9일까지 열리는 이승조 20주기전, 서울 반포동 샘터갤러리(02-514-5122)에서 15일까지 이어지는 ‘기하학적 환영:블랙으로의 회귀’전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승조가 차지했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이승조는 살아서 ‘파이프 통’이라 불렸을 만큼 평생 파이프를 열심히 그렸다. 정작 본인은 “(파이프 통이) 별로 원치도 않고 싫지도 않은 부름”이라 했다. 이미지로만 보면 그가 그린 건 파이프 통이 맞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저 만물의 대명사였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프를 전제하지 않은 채 반복되는 붓질 행위가 만들어낸 착시에 집착했다. 붓질을 같은 곳에 수없이 반복하면서 손의 기능을 극대화시킨 화가는 그 정련되고 친숙한 세계로 눈을 이끌어 우리가 잊고 있었던 내밀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그것이 화가의 의도였다. 화단에서는 그를 국내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기초를 놓은 작가로 부르지만 그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회화 그 자체에 몰입했던 화가였다.

그의 파이프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는 것 같다. 무의식의 흐름 속으로 두둥실 쓸려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신기한 그 체험 속에서 잠시 심신이 멍해지며 이상한 휴식의 시간이 찾아온다. 영원한 절대의 세계에 귀의하려 한 작가의 집념이 느껴진다.

이승조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침묵이 흐르는 참을 수 없는 고요와 직면해 간결하고 죽은 것처럼 고정된 텅 빈 것을 위해 움직이는, 참을 수 없는 행위의 더 보탬을 위하여….”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는 이 진술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숙연해진다. 인간이 죽음과 함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과 글이다. 파이프면 어떻고 파이프가 아니면 어떤가.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정갈해진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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