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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 정명훈의 ‘음식 교향곡‘] 우리 가족은 샐러드 챔피언

프랑스 프로방스에 있는 나의 집은 지금 공사 중이다. 큰아들이 집 안에서 채소를 기를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있다. 이미 작은 화분들은 있지만 이번에는 아예 집 안에서 대량생산을 해보려 한다. ‘채소 챔피언’인 우리 가족을 위해서다.

#채소 베스트 3

루콜라 샐러드
나와 아내, 세 아들이 좋아하는 ‘베스트 채소 3’는 루콜라(rucola)와 아티초크(artichoke), 푼타렐라(puntarella)다. 참 재미있는 게, 채소에도 유행이 있다. 요새는 루콜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내가 30년 전쯤 이탈리아에 갔을 땐 별로 먹질 않았다. 이탈리아의 어딜 가도 루콜라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미국에서도 풀처럼 자라는 것을 레스토랑에서 먹을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30년 전쯤 루콜라를 우연히 먹게 됐고, 정말 맛있어서 여기저기 힘들게 구하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티초크는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엉겅퀴과의 식물이라는데, 뾰족한 잎을 먹는 맛이 일품이다. 날것으로 먹어도 되고 샐러드로 만들어도 된다. 프랑스에서는 굉장히 많이 먹는 채소다. 한국에서는 잘 먹을 수 없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다음에 루콜라처럼 유명해질 만한 가능성이 보이는 야채가 푼타렐라다. 상추와 셀러리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긴 건 상추 같은데, 좀 딱딱하고 씹히는 맛이 있는 건 셀러리와 비슷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기에 앤초비 드레싱을 뿌려서 먹는다. 짭짤한 앤초비를 갈아 올리브 기름에 섞고, 레몬을 조금 뿌려도 된다. 이렇게 만들면 우리 가족은 서로 먹느라 다 같이 정신이 없다.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 못 먹고 버리는 부분도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밖에서 채소를 먹으면 나의 샐러드 양을 맞춰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지휘자로 일할 때는 호텔에서 생활했다. 룸 서비스로 식사를 시키면 샐러드가 나오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매번 루콜라와 토마토를 더 달라고 했다. 1년에 석 달을 지내며 샐러드를 먹었더니 나중에는 아예 그 호텔에서 가장 큰 그릇에 샐러드를 담아줬던 일도 있다.

#고기는 삶은 것만

채소와 생선 위주로 먹다 보니 고기도 별로 먹지 않게 됐다. 특히 오븐에다 넣어서 굽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가 먹는 거의 유일한 고기는 스팅코 디 비텔로(Stinco di vitello)다. 송아지의 다리 쪽 고기로 만드는 요리다. 다리뼈가 가운데에 있고 주위로 둥그렇게 살이 붙어 있는데, 이걸 푹 고아서 만든다. 뼈에서 나오는 고소한 맛이 좋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이 요리가 빌 오소 부코(veal osso buco)라는 메뉴로 나온다.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깊은 냄비에 송아지의 다리뼈를 세워서 넣는다. 이때 고기에 칼집을 조금 넣어줘야 시간이 지나면 밑으로 떨어져 국물 속에 잠기게 된다. 냄비 속 국물에는 큼직한 양파를 두 개쯤 다져서 넣는다. 또 마늘 두 세 알갱이와 화이트 와인 4분의 1 컵, 앤초비를 넣는다. 뚜껑을 살짝 열어서 김을 나가게 하고, 물을 계속 부어주는 게 좋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가 먹는 고기다. 하지만 이렇게 삶고 쪄서 먹는 것 말고는 고기를 거의 안 먹는다. 특히 나는 연주 여행 때문에 사 먹는 경우가 많아, 집에서는 꼭 유기농 야채와 생선을 먹는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고기를 많이 먹었다. 하지만 유기농이 유행하기 전부터 ‘오가닉 매니어’였던 아내 덕분에 습관이 바뀌었다.

#환경 음악제를 꿈꾸며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유독 자연을 사랑한다. 바빠 죽겠을 때도 길을 가다 본 들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몇십 년 전 유럽에서 처음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망가지는 데 위기감을 느꼈다. 산과 바다, 하다못해 길거리까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싱싱하고 푸른 채소, 자연 그대로의 맛이 망가질까 걱정했다. 그래서 음악으로 환경 페스티벌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어린 청중에게 환경교육의 메시지를 던지고, 기금을 자연 보존에 쓰는 것이었다. 1995년이었다. 한국에서 2년간 이 페스티벌을 했지만 이내 그만뒀다. 그 당시만 해도 환경 문제에 대해 경고를 하기는 조금 일렀던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채소를 먹어 버릇이 된 것처럼, 그리고 고기를 좋아하던 내가 아내를 만나 ‘샐러드 챔피언’이 된 것처럼, 자연에 대한 마음은 바로 교육과 버릇이 만든다. 그래서 어린 나이부터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할 수 있는 음악회를 시리즈로 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이 음악제를 성사시킬 혜안 있는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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